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24

by 김박은경

22. 남다-remain-留 : 교동읍성

교동읍성은 조선 인조7년(1629) 교동에 경기수영을 설치할 때 돌로 쌓았다고 합니다. 읍성은 군이나 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 행정적 기능을 함께 하는 성입니다. 세 개의 문을 내고 문루를 세웠는데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랑루, 북문은 공북루라 했답니다. 문루란 바깥문 위에 지은 다락집을 의미하고요. 동문과 북문은 언제인지 모르게 사라졌고, 남문은 1921년 폭풍우로 문루 부분이 무너진 것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릅니다.


교동읍성은 조선시대 서해 방어의 중심 공간이었다고 합니다. 현재 대부분이 훼손되어 사라졌지만 남문은 이렇게 남아 있습니다.


22-1.jpg (복원공사 전 교동읍성 남문의 모습. 출처는 김락기 외 『교동도』, 글누림)
22-2.jpg (복원공사를 끝낸 교동읍성 남문)
22-3.jpg (교동읍성 남문 옆으로 이어지는 성곽)

성문 옆으로는 무너진 돌담 더미가 더욱 무너지는 중이었어요. 그 위로 찌그러진 음료수 캔도 있고요. 깨진 사이다 병도 있고요. 과자 봉지도 있었습니다. 그 모두가 시간의 더께 위에 차곡차곡 무너지고 있었어요. 흐드러지게 핀 금계국 사이로 나비와 벌들만 분주히 날아다니는 오후였습니다. 그 곁을 폐가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교동도 인구는 3,000명 정도, 작은 섬이지요. 민통선 지역이라 검문을 거쳐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북한과의 거리가 2.6킬로미터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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