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무궁무진, 강화도 25

by 김박은경

23. 팔다-sell-賣 : 대룡시장

대룡시장에 가보았습니다. 이곳은 국내 대표적인 실향민 장터입니다. 한국전쟁 때 교동도에는 황해도 연안지역에서 3만여 명의 피란민이 내려왔다고 해요.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교동도에 머물며 기다렸지만 분단의 현실이 그들을 실향민으로 만들었지요. 교동도 주민들의 생활권은 황해도 연백군이었고요. 교동도에서 연백군은 배를 타면 10분이 채 걸리지 않고 썰물 때는 헤엄을 쳐서 갈 수 있을 정도로 코 닿을 거리라고요. 상당수는 교동도를 떠났지만 고향을 가까이 두고 살고 싶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일굽니다.


땅이 없는 실향민들은 생계를 위해 상업을 선택합니다. 그렇게 시작된 장마당이 대룡시장입니다. 40곳 남짓한 점포들은 대부분 한국전쟁 이후에 세워진 것이라고 해요. 강화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곳이기에 대룡시장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멈춘 곳이라고들 하지요.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중앙신발, 거북당... 새마을운동 당시 나라에서 지원받은 건축 자재들로 지었다는 집과 가게들을 지나면 역대 대통령들이 함께 선거전에 나선 듯 선거포스터들이 사이좋게 붙어 있습니다. 누군가는 1950년대라고 하고, 누군가는 1960년대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1970년대라고 하네요. 가능한 모든 시간들이 뒤섞이고 쌓여 있습니다.


23-1.jpg (대룡시장 교동은혜농장)

교동 심상소학교 2학년생들의 단체사진도 보았습니다. 10월 2일에 찍었군요. 선생님의 옷은 군복처럼 보입니다. 한복을 입은 네 명의 여인들 사진도 보았어요. 초봄이거나 늦가을 쯤 되었겠어요. 화문석 작업을 하는 중에 찍은 것일까요? 아무 설명도 없는 여인들과 눈이 마주칩니다. 조금 서늘한 날씨 같아요. 어깨를 움츠리고 있네요. 누군가의 딸,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였겠지요. 손끝이 거칠고 매서울 것 같습니다. 상상을 하면 음성이 들리고 바람소리가 들리고 새소리도 들립니다.


23-2.jpg (교동도 대룡시장 입구)
23-4.jpg (교동도 대룡시장에 걸린 옛 사진 중 하나)

이른 아침인데 시계방 안에 누군가 있습니다. 1939년 강화군 교동면에서 태어난 황세환은 교동에서 시계 수리업과 도장업을 합니다. 시계 수리 기술을 배우기 위해 외지에 나가있던 20대 후반의 5년을 제외하고는 줄곧 고향을 지켰다고 합니다. 가방에 시계 수리 도구를 들고 다니며 주민들의 시계를 수리하면서 신용을 쌓았고요. 1969년 대룡시장 한쪽에 시계수리 점포를 차립니다. 2016년 4월 세상을 떠난 그는 자신의 시계방에서 여전히 시계를 수리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이 보면 마음이 좋을 것도 같고 힘들 것도 같네요. 시계는 7시 18분, 10시 47분. 멈춘 시계 바늘이 돌아가는 환영을 봅니다. 너무 빨리 돌아가서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도 같습니다.


23-5.jpg (대룡시장 황세환 시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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