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그리다-miss-望 : 평화전망대와 망향대
1) 평화전망대
우리나라에는 북녘과 닿은 곳에 전망대가 많이 있습니다만 ‘통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전망대는 이곳 강화와 철원에만 있다고 합니다. 철원의 평화전망대는 분단의 현실을 느끼게 하지만 강화의 평화전망대는 철책이 시야를 막지 않아서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바라볼 수 있습니다. 통일을 염원하는 리본이며 두고 온 북의 가족을 그리워하는 글을 읽으며 ‘통일이라는 이름이 형식이라면 평화라는 이름은 내용’이라는 최보길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최보길, 『강화도의 기억을 걷다』, 살림터)
전망대로 들어가기 전 망향단에는 이 노래가 흐릅니다.
“누구의 주재런가 맑고 고운 산/ 그리운 만이천 봉 말은 없어도/ 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며/ 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1절)/ 비로봉 그 봉우리 예대로 있나/ 흰구름 솔바람도 무심히 가나/ 발 아래 산해만리 보이지 마라/ 우리 다 맺힌 슬픔 풀릴 때까지(2절)/ (후렴)
수수만년 아름다운 산/ 못 가본 지 그 몇 해/ 오늘에야 찾을 날 왔나 금강산은 부른다”
이 노래는 강화 출신 고(故) 한창억 시인의 시에 강화 태생 작곡가 최영섭 선생이 곡을 붙여 탄생했습니다. 1972년에는 남북적십자회담이 진행되며 국민 가곡으로 사랑을 받았고요.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한창일 때는 ‘통일 주제가’라는 별칭을 얻기도 합니다. 또한 북한에 간 남측 에술단이 공연 때 부르기로 했는데 원래 가사가 적절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수정하여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2) 망향대
망향대는 한국전쟁 중 황해도 연백군 연안읍에서 피난 온 주민들의 애향모임이 중심이 되어 준공되었다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망향대에서 건너보면 연안읍의 진산인 비봉산과 남산, 남대지 등 연백평야가 눈앞에 보입니다. 소리를 지르면 들릴 것 같고요. 물이 빠지면 걸어서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설명에 따르면 우측으로 개성공단과 임진각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북한 주민의 생활모습, 선전용 위장마을, 개성 공단탑, 송악산 등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날이 맑을 때면 연백평야까지 보이고요. 날이 좋을 때면 사람들의 움직임까지 다 보인다는데 제가 간 날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격강천리(隔江千里)”라면 강물을 사이에 둔 것같이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왕래가 드물어 천 리나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이 멀리 느껴짐을 비유적으로 이루는 말인데요. 이곳에 서면 비유가 아니라 완벽한 현실이 됩니다.
푸른 한반도 지도가 걸려 있고요. 기원과 바람들을 적어 둔 초록리본이 나뭇가지마다 흔들리고요. 한국전쟁의 사진 옆에는 북한의 모습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북한은 오래 전 보았던 자료사진들이었습니다. 그곳도 이제 많이 변했겠지요. 그래도 그곳의 사람들은 우리들과 다르지 않겠지요. 망향대 구석 울창한 수풀 사이로 작은 봉분이 보입니다. 누군가 고향이 몹시 그리워서 반드시 그곳에 묻어달라는 유언이 있었겠지요. 그 몸은 이곳에서 나무가 되고 혼은 저곳에서 날아다니고 있을까요.
강화도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이어질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고 기대되는 곳이었습니다.
P.S. <스토리워크>
강화도의 원도심만 돌기로 작정한다면 만들어진 스토리워크를 따라 걸어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강화읍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를 직접 걸으며 느끼는 도보 여행 코스인데요. 총 길이 2.6킬로미터에 90분 정도가 소요됩니다.
1970년대 초까지 한국 방직산업을 이끌었던 직물 공장들과 독립운동가와 문필가, 믿음을 지키며 순교한 교회와 성당 등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찾기 어려운 작은 지점들도 있었어요. 거주민들도 잘 모르는 장소도 있었고요.
코스는 다음과 같아요.
심도직물터 ->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 강화 3.1 독립만세 기념비 -> 노동사목 표지석 -> 700년 은행나무 -> 이화견직 담장길 스토리보드 -> 조양방직 -> 강화중앙교회 -> 합일초등학교 독립운동길 스토리보드 -> 소창체험관
이야기의 끝
강화도는 몇 차례의 방문과 정성스러운 조사로 파악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는 길을 잃을 수도 있겠어요. 미리 관심을 갖고 자료를 찾아 읽어본 후에 가는 게 훨씬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코로나 탓에 아직도 입장이 불가한 곳들이 많은데요. 마스크 없이 몇 번이고 드나들 수 있는 건강한 시간이 어서 돌아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이곳은 무한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무한에 형태 같은 게 있을 리 없지만 그런 느낌에 가까워요. 아무리 들어가도 더 들어갈 곳이 나오니까요. 아무리 나와도 다 나올 수가 없으니까요. 어쩌면 부근리 고인돌과 닮아 있습니다. 입구와 출구가 부재하니까요. 하여 강화도는 제게 있어서 알면 알수록 알 수 없는 무궁무진의 미지입니다. 당신의 강화는 어떠한가요? 그 이야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참고 서적>
최보길, 『강화도의 기억을 걷다』, 살림터, 2014
이동연, 『강화도, 미래신화의 원형』, 푸른세상, 2003
이경수, 『강화도, 근대를 품다』, 민속원, 2020
김락기, 정학수 외, 『교동도(전란과 긴장, 대립의 역사』, 글누림, 2018
함민복, 이광식 외 15명, 『강화도 지오그래피』, 작가정신, 2018
이경민, 『제국의 렌즈』, 산책자, 2010
한국고전여성문학회, 『신작로에 선 조선 여성』, 소명출판, 2020
『강화역사 이야기』, 강화문화원, 2012 (비매품)
『내 고장 인천의 지명유래』, 미추홀출판사 향토사 출판팀, 2013
한국생활사박물관 편찬위원회, 『한국생활사박물관 2, 고조선생활관』, 사계절, 2006
조경희, 『조경희 수필집』, 선우미디어, 2005
이규보, 『봄 술이나 한잔하세』, 태학사, 2009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창비, 1995
함민복,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시공사, 2021
함민복,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 창비, 2013
권혁희, 『조선에서 온 사진엽서』, 민음사, 2005
경인일보 특별취재팀, 『인천 고택 세월의 문을 열다』, 도서출판 다인아트, 2017
EBS역사채널, 『역사e』, 북하우스,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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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인천>, June. 2021 “조미전쟁 150주년, 수자기 펄럭이다”
<굿모닝인천>, May. 2020 “부처님은 왜 처음 인천으로 오셨을까”
<굿모닝인천>, Nov. 2020 “훈맹정음, 송암 박두성“
<굿모닝인천>, Jul. 2019 “인천, 세계 활자의 시대를 열다”
<경인일보> 2016. 05. 16 “현장르포-20년 만에 다시 만난 강화 교동 부군당굿”
<인천투데이> 2021. 01. 04 “인천 섬 기행-정족산사고와 삼랑성”
<천지일보> 2018. 10. 26 “쉼표, 현존하는 한국 最古사찰 ’전등사‘에서 느끼는 가을 풍류”
<인천in> 2020. 12. 06 “국립한글박물관이 송도 국립세게문자박물관 운영 맡는다”
<동아일보> 2021. 05. 12 “고려 무신정권의 최고 문인 이규보는 왜 ‘동명왕편’을 썼을까?”
<국민일보> 2017. 02. 17 “삶의 망망대해 떠돌던 조각배 구원을 받다”
<인터넷강화뉴스> 2019. 12. 13 “살아서 한 필, 죽어서 한 필... 강화 소창 이야기”
* 이 글은 <학산문학> 2021 가을호, 겨울호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