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과 파이란과 검은 꽃과 당신과 다시 (4)

by 김박은경

차이나타운에서 월미도 방향으로 차로 7분 남짓 달리면 한국이민사박물관이 나옵니다. 1902년 하와이에서부터 시작해서 멕시코, 쿠바, 러시아, 중국, 일본, 사할린 등으로 이민 간 사람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물포에서 출항한 이민자들은 하와이에서는 사탕수수 농장으로, 멕시코에서는 에네켄 농장으로 갑니다. 하와이 이민자들 중에는 남자의 수가 많아서 결혼하기가 어려웠다지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남녀가 사진만 보고 결혼하기에 이르는데요. 그 시절의 사진도 요즘처럼 가감이 이루어졌을 것 같아요. 좋은 것은 더하고 아닌 것은 제하여 신부들마다 흰 피부에 붉은 뺨을 가진 미색으로 거듭났을 것 같습니다. 한 장의 사진을 보며 그 사람의 음성과 성격과 몸과, 함께 만들어갈 운명을 상상했겠지요.


박물관에는 ‘배우자를 찾아 여러 섬으로 흩어지기 직전에 찍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1913년, 열 명의 신부들이에요. 올림머리에 치마저고리를 입었어요. 아마도 가장 좋은 옷이었겠지요. 고향을 떠날 때 집에서 새로 해주신 옷이었을 것 같아요. 용기를 내서 낯선 미래를 향해 떠난 그녀들의 결의와 떨림이 느껴집니다. 이미 섬에 도착했으니 퇴로는 끊겼어요. 불안 대신 설렘에 축복을 보냅니다. 열 명의 그녀들이 몇 명의 후손을 낳았을까요. 후손의 후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하와이로 떠난 갤릭호 승선자들의 사진도 있었어요. 남자들은 모두 단발에 양복 차림이고요.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젊은 엄마도 보입니다. 낡은 트렁크들과 흑백 사진이 담긴 액자가 있어요. 손톱 만하게 보이는 사람들 중 한둘은 어디선가 마주쳤을 것만 같습니다.


15.JPG 이민사박물관 속 신부들의 모습

박물관을 다녀와서 김영하의 소설 『검은 꽃』을 읽었어요. 대한제국 시대의 이민자들 이야기라 어쩐지 신산하여 미루어두었는데 요번에는 실감을 더해가며 밤새 읽었습니다. 소설은 1905년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간 실존인물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합니다. 에네켄(henequén)은 용설란과의 식물로, 섬유질을 뽑을 수 있어서 선박용 밧줄이나 해먹 같은 생활용품을 만든다고 합니다. 이민사박물관의 자료에 의하면 멕시코 이민은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이민 중개인이 불법으로 진행한 것이어서 제대로 급여도 받지 못하고 노예 아니 짐승 같은 생활을 했답니다. 더구나 멕시코의 경우 이민이 단 한 차례만 진행되었기에 한인들은 현지인과 결혼을 하면서 민족적 정체성을 잃어갔다고요. 1910년에 계약기간이 끝나지만 조선은 사라지고 멕시코는 내란과 혁명으로 어지럽습니다.


제목인 ‘검은 꽃’의 의미가 궁금했는데 작가의 설명을 찾았습니다. EKNews의 기사 “한국 작가 김영하의 『검은 꽃』으로 함부르크와 만나다”에 따르면 검은 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꽃이라는 거죠. 검은색은 모든 색이 섞여야지만 가능한 유일한 색으로 남녀노소, 계층, 문화, 인종을 뛰어넘는 그 무엇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꽃이라는 것은 유토피아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김영하는 그들이 그림자를 잃어버린 거라고, 방랑이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검은 꽃』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물풀들로 흐느적거리는 늪에 고개를 처박은 이정의 눈앞엔 너무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오래 전에 잊었다고 생각한 제물포의 풍경이었다. 사라진 것은 없었다. 피리 부는 내시와 도망중인 신부, 옹니박이 박수무당, 노루피 냄새의 소녀, 가난한 황족과 굶주린 제대 군인, 혁명가의 이발사까지, 모든 이들이 환한 얼굴로 제물포 언덕의 일본식 건물 앞에 모여 이정을 기다리고 있었다.” (p11 『검은 꽃』)

맞아요. 이민자들은 제물포항에서 출발했습니다. 1876년 강화도 조약에 의해 부산, 원산에 이어 제물포항이라는 이름으로 1883년에 개항했습니다. 항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이었답니다. 배가 항구까지 들어오지 못해서 월미섬에서 내려 4킬로미터 이상 나룻배를 이용해 제물포항에 들어왔고요. 개항 이듬해에 부두공사를 시작해서 항구로 출발했는데 집하장과 간단한 승강장을 갖춘 형태였다고 해요. 일본을 비롯한 서양과의 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선박들의 출입이 늘어나고 물동량도 늘어나면서 항만시설의 확충이 시급하게 되는데요. 인천 앞바다는 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가 커서 항구를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연안부두와 월미도를 연결하는 둑을 쌓고 밀물이나 썰물에도 갑문을 통해 언제든 통행이 가능하도록 설계하였습니다. 인천에 와서 제물포항은 찾지 마세요. 제물포역은 있지만 제물포항은 없으니까요. 제물포항은 인천항의 본래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이 사진 좀 보세요. 1908년 헝가리 군의관 보조끼 데죠(Dr. Bozóky Dezső)가 촬영한 제물포항입니다. 흰 옷을 입은 조선인들의 모습을 주로 찍었는데, 낯선 장면들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 흑백사진에 채색 유리 슬라이드를 얹는 후속 작업을 진행했다고요. 선명한 사진은 현실처럼 느껴지는데요. 사진 속의 주인공은 세 명의 사내입니다. 두 사람은 갓을 쓰고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까지 입었어요. 걸어가다 돌아보는 사내는 단발에 흰 저고리와 푸른 빛 바지, 짚신을 신었습니다. 흙길 저쪽으로 인력거가 달려옵니다. 왼쪽 이층 건물에 걸린 상호는 “疊啇”입니다. ‘거듭 첩 혹은 겹쳐질 첩’에 ‘장사 상 혹은 밑동 적’자를 썼습니다. 그 아래에는 “宕井店”이라고 쓰여 있고요. “犬”이라고 적힌 깃발도 보이네요. 무엇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습니다. 오른쪽 집들은 짚으로 지붕을 했고 왼쪽 집들은 일본식 몸체에 슬레이트 지붕인 것 같아요. 벽에는 붉은 벽보가 붙어있고요. 등신대의 사람 같은데 확실치는 않습니다. 저 거리가 몹시 궁금합니다. 거의 들어갈 듯이 들여다보고 있어요.


16.jpg 1908년 제물포항, 출처는 인천일보 2020. 5. 29


헝가리 군의관은 제물포항의 첫 인상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배에서 바라본 푸른 산 앞에 놓인 제물포는 그럴싸해 보였다. 집집마다 수천 개의 전등으로 빛을 내고 있었고 산속에는 웅장한 유럽풍의 성곽, 그리고 시골집들의 큰 유리창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개항도시의 발전상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항만은 활기와 생기가 넘쳤다. 근육질의 한국인들이 등에 특이한 모양의 짐 나르는 도구를 고정해 광택이 나는 기둥, 철 레일, 자루를 나르고 있었다.” 근육질의 한국인들의 등에 고정한 도구라니, 지게였을까요. 지게에 싣고 간 자재들로 차이나타운의 어떤 건물이 지어졌을까요. 하루 일을 마친 사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손에는 고등어나 육고기 같은 것이 들려있었겠지요. 아이들과 아내가 반가이 맞았겠지요. 웃음소리 말소리 밥 냄새가 가득했겠지요. 분명한 행복의 순간입니다. 그나저나 푸른 바지의 저 사내, 돌아보는 눈매가 만만치 않네요.


다시 김영하의 『검은 꽃』으로 갑시다. 박수가 묵서가(墨西歌)로 가는 배에서 이질로 죽은 자의 살을 풀어주는 장면입니다. 묵서가는 멕시코의 음역어이고요. 굿이 벌어지자 독일 선원들은 선교에서 내려다보고, 주방의 일본 선원들은 키우던 수탉 한 마리를 던져줍니다. “박수가 제 흥에 못 이겨 입으로 닭의 목을 물어뜯더니 마침내 칼로 닭의 목을 잘라 들었다. 피가 소매를 적셔 겨드랑이로 흘렀다. 오매 오매 우리 어메, 뜨신 밥도 아니주고 손목 한 번 안 잡아주고 못된 어메 우리 어메, 자식 이리 보내놓고 잘 사시나 내 보겠소. 아니 아니 잘못했고, 잘못했고, 우리 어메, 잘 사시오, 우리 어메, 오래오래 잘 사시오. 내 몫까지 다 잡숫고 오래오래 잘 사시오. 아이고 춥소, 아이고 춥소. 더 살래도 추워서 더 못 살겠소. 배가 고파 나왔더니 몹쓸 병에 내가 죽네. 머리를 잘린 닭의 몸뚱이가 바닥에서 퍼덕거리다가 시체의 배 위로 걸어올라가더니 아래로 고꾸라져 버둥거렸다. 제물도 장단도 없는 굿이라 오래 가지는 않았다. 독일 선원들이 밝혀놓은 가스등이 위에서 이 모든 장면을 희미하게 내려비추고 있어 장면은 실제보다 더욱 잔혹하게 보였다.” (p65 『검은 꽃』)


‘잘 사시오, 잘 사시오, 아이고 춥소, 아이고 춥소’ 하는 부분이 눈에 밟힙니다. 이상과 현실 같아서요. 다들 잘 사는 게 가장 큰 바람이니까요. 잘 살고 싶지만 현실은 춥게만 느껴지는 바닷바람이라는 겁니다. 검고 차가운 망망대해라는 거죠. 역경과 고난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것 같아요. 박수의 살풀이가 끝난 후 고래잡이 어부들이 시체를 싼 포대를 태평양을 향해 내던집니다. 바다는 늘 모든 것을 삼키고 받아 안습니다. 그런 죽음들이 있었겠지요. 그런 죽음들이 많았겠지요. 한 마디 말도 남기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가버리는 일은 말할 수 없는 슬픔일 것 같습니다. 누군가는 그가 세상에 없는 줄도 모르고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기원할 텐데요. 헤어지는 줄도 모르고 헤어지는 일, 끝난 줄도 모르고 기다리는 일. 우리의 삶에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대로 그림자를 잃어버렸다면 이미 죽음 아니던가요. 제 나라를 떠나는 일이란 죽음과도 같은 결단이겠지요. 평생 부여잡고 있던 낱낱을 모두 잃으니 죽음과도 같다는 의미겠지요. 새로운 곳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 사라진 그림자가 조금씩 생겨나기도 할까요. 새 그림자는 검지 않고 크지 않고, 매우 희미하고 작은 것이 아닐까요. 그것이 우리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찾아내고 지켜야 하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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