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이민자들의 영상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유튜브 MBC “포토에세이 사람- 에네켄, 그 후 100년의 삶”이라는 프로에서, 멕시코 이민 1세대 중 최고령자인 고흥룡 씨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2002년 방송 당시 100세 생일을 앞두고 계셨어요. 그의 타국살이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작됩니다. 1905년 4월 4일 어머니를 포함한 1033명의 한인들이 인천 제물포항에 모였습니다. 멕시칸 드림을 안고 영국 국적의 배에 몸을 싣고 40여 일 만에 프로그레소 항에 도착합니다. 그는 마야 문명과 에스파냐 문명이 모여 있는 유카탄 반도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에네켄 농장에서 만난 멕시코인 아내는 5년 전에 세상을 떠났는데 그를 위해 김치며 고추장을 직접 만들었다지요. 어머니가 가르쳐준 대로 멕시코 사람처럼 보이는 딸이 김치를 담급니다. 고흥룡 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한국 사람이에요. 내가 여기서 났지만(태어났지만) 말이에요. 내 부모가 한인이기 때문에 한인이지, 내가.”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고국이라니 아득히 그립고 서러워집니다.
김영하는 그의 다른 책 『여행의 이유』에서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여기서의 멀미는 “눈으로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이 다를 때 오는 불일치 때문에 발생”한다고요. 다시 말해 멀미는 “뇌의 예측과 눈앞의 현실이 다를 때 일어난다”고요. 살던 땅을 떠나는 일이야말로 가장 거대한 멀미와 같을 거예요. 평생 사라지지 않는 멀미라니, 밤도 낮도 어지러울 것 같습니다.
이국의 땅에 남은 사람들의 최후에 대해 생각합니다. 모두들 살던 곳을 떠났으니까요. 하던 말과 살던 집을 떠났으니까요. 다 버리고 다 지우고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는 것, 용감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용감함은 절체절명의 이면 같습니다.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사람은 굳이 멀리 가지 않을 테니까요. 개항 전에 조선 땅으로 왔던 청나라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이어진 각국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여기서 버티지 못하여 멀리 하와이로 멕시코로 떠난 사람들을 상상합니다. 유일한 친척을 찾아 한국으로 온 중국 여인 파이란을 생각합니다. 그녀의 친척은 다시 캐나다로 떠났다지요. 동해 바닷가 마을에서 잠시 살던 그녀는 유골함에 담겨 다시 서해로 옵니다. 다시 또 다시의 멀미가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 걸까요.
영화 《파이란》으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강재 씨에게도 파이란에게도 쉽지 않은 삶입니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따스해 보이는 포스터를 배신하듯 비극적으로 끝나는 영화의 엔딩이 당연으로 여겨집니다. 두 번 볼 것 같지 않다고 했던 이 영화를 결국 네 번 보았어요. 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재 씨는 파이란의 유해를 안고 동해 바닷가에 앉아 있습니다. 흰 바위, 흰 셔츠, 흰 갈매기, 흰 보자기, 흰 편지. 흰 등대 그리고 붉은 등대, 붉은 그물, 붉은 깃대, 붉은 얼굴과 붉은 손입니다. 그녀가 남긴 편지는 두 장입니다. 단정하고 슬프고 눈부신 고백입니다. 그가 웁니다.
파이란의 편지를 당신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잊어버리지 않도록 보고 있는 사이에 강재 씨 좋아하게 됐습니다.
좋아하게 되자 힘들게 됐습니다.
혼자라는 게 너무나 힘들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
강재 씨 당신에게 줄 수 있는 거 아무것도 없어서 죄송합니다.
세상 어느 누구보다 사랑하는 강재 씨 안녕.”
<참고자료>
김순겸, 『자랑스런 내고장 인천이야기』, 미추홀출판사 (2011)
김영하, 『검은 꽃』, 문학동네 (2014)
김영하, 『여행의 이유』, 문학동네 (2019)
파이란(Failan, 2001. 4)
네이버 블로그 [꿈꾸는 삶]
MBC 포토에세이 사람- “에네켄, 그 후 100년의 삶” (2002년)
http://www.incheon.go.kr 인천광역시 [사진으로 보는 역사]
http://www.incheonilbo.com 인천일보 [사진에 비친 인천 100년] (2016.7.15.~2017.7.12)
http://www.incheonilbo.com 인천일보 [문명의 바다 생명의 바다 황해] 31 (“이방인, 1908년 인천 제물포항을 만나다” 2020.5.20)
http://www.kyeongin.com 경인일보 [오래된 것들의 귀환] (2019.3.8)
https://www.kbmaeil.com 경북매일 “1905년 대한제국에서 일어난 멕시코 이민사기 사건의 전말” (2019.6.3)
*이 글은 <학산문학> 2020 가을호에 발표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