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미도, 달의 꼬리에서 당신의 연안까지(1)

by 김박은경

그날, 돌아올 길이 바쁘다고 골목 초입에서 헤어지고는 내내 바라보고 있었어요. 참았던 담배를 꺼내 불을 찾고 붙이고 들이마시고 내쉬느라 잠시 기우뚱 멈춰 서계신 모습도 보았어요. 아쉬운 마음에 조심히 올라가시라고 큰 소리로 외쳐도 듣지 못하시고 느릿느릿 올라가시는 모습도 보았어요. 어제 미국 대선 뉴스 보다가 그만 밤을 꼬박 새우셨다고요. 그 전날에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외출했다가 덜덜 떨고 오셨다고요. 모처럼 함께 한 식사 자리에서 몹시 피곤해하시고, 입맛이 통 없다고 간신히 드시는 것 같아서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요. 몸은 좀 어떠신지요.


저는 월미도에 다녀왔어요. 이곳에 대한 글을 준비하고 있거든요. 인천, 하면 월미도 아니겠어요? 썰물 때도 갯벌이 드러나지 않아 하루 종일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이고요. 노을 명소로도 유명하지요. 몇 해 전에 당신과 함께 왔었는데 기억하시지요? 그때 월미도에서 회 한상차림을 드시고 배를 타고 영종도에 갔다가 다시 월미도로 돌아와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를 달게 드셨지요. 뱃전으로 날아드는 갈매기들 이야기로 즐거웠고요. 오늘은 북성포구와 월미도와 연안부두를 둘러볼 계획입니다.


1.jpg 월미도 가는 길, 도로 위의 철로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가 생각나는 길

아침 아홉시인데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아요. 안개일까요? 미세먼지일까요? 확인은 하지 않습니다. 짙은 해무라고 믿고 걸어 들어갑니다. 북성포구 쪽으로 길을 건너다가 도로 위의 철로를 보았어요. 차로 다닐 때는 모르고 지나갈 정도로 어렴풋한데요. 도로 바닥의 철로와 철로용 신호장치가 있어요.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 첫 머리에 이 철로가 등장하지요. 소설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시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길은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가루를 흘려보냈다.

집에 가봐야 노루 꾸리만큼 짧다는 겨울 해에 점심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는 대로 책가방만 던져둔 채 떼를 지어 선창을 지나 항만의 북쪽 끝에 있는 제분 공장에 갔다.

-오정희, 『중국인 거리』


안개에 젖어 세상의 소리들이 아득하게 들려요. 어디선가 검은 탄차가 달려올 것만 같아요. 두리번거리지만 화차는 보이지 않습니다. 철로에는 아직도 검은 탄가루가 박혀있는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밀 껌으로 풍선을 만들어 불던 아이들도 보이지 않아요. 침목 사이에 깔린 잔돌을 집어 드는 아이도 없고요. 양갈보가 되겠다는 치옥이도 보이지 않습니다. 머리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제분공장 노무자들도 보이지 않고요. 성당의 종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리 언크리치의 영화 <코코(Coco)>에서는 살아 있는 자들의 땅에서 너를 기억하는 사람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면 세상에서 사라지는 거라고 말하지요.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죽어도 아예 사라지지 않는다는 전언이 어쩐지 위로가 됩니다. 이야기도 마찬가지 같아요.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면 그 속의 시공간은, 등장인물들은, 그들의 마음과 대화는, 수많은 사건들은 영원히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중국인 거리』도 그 속의 나도 치옥이도 이 철로를 걷고 있다고, 저마다의 상황을 이겨내며 성장하고 있다고, 여전히 새로운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안개 속의 북성포구

소설 속 제분공장은 지금도 있습니다. 곰표 밀가루를 만드는 대한제분 공장이지요. 흰 건물 외벽에 거대한 푸른 곰이 머리를 들고 서있어요. 그것도 좋지만 빙벽의 푸른 빛 바탕에 흰 곰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잠시 하면서 옆길로 들어서니 북성포구가 나와요. 북성포구는 배 위에서 열리는 어시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파시(波市)’라고 하지요. 물결 파(波)에 저자 시(市)를 씁니다. 파시는 고기가 한창 잡힐 때에 바다 위에서 열리는 생선 시장을 말합니다.


2.jpg 북성포구 입구에 펼쳐진 그물들

원래 갯마을이었던 곳을 1960~70년대 대한제분 등의 기업이 매립했다고 해요. 하루아침에 바다를 잃은 어민들이 매립지 끝에 고깃배를 풀었다지요. 매일같이 배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고요. 조금일 때는 수위가 안 맞으니 배가 들어오지 못하고요. 들어오더라도 고기만 팔고 연안부두로 간다고 해요. 그곳은 언제나 물이 찰랑찰랑하다고요.


포구의 입구에서부터 길을 뒤덮은 그물의 바다를 만날 수 있어요. 망가진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저렇게 거대한 그물로 무엇을 얼마나 낚을까요. 색색의 그물은 설치미술처럼 보여요. 그물을 손질하는 사람은 행위예술을 하는 것처럼 보여요. 흰 밤처럼 짙어지는 안개도 묻고 답하느라 소란스러운 사람들도 시끄러운 갈매기들도 안 보이고 안 들리는 것 같아요. 오로지 그물코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몇 해 전에도 이런 장면을 보았어요. 저들은 영원처럼 작업하는 것일까요. 흐릿한 대기 속에서 재게 움직이는 저 손길이라니 잠시라도 동작을 멈추면 세상의 작동까지 멈출 것만 같아요.

3.jpg 북성포구 갯벌

휘어진 북성포구 상징물에는 ‘옛똥마당’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곳에는 원래 황해도 피란민들이 많이 살았다고 해요. 나무 작대기를 모아서 하꼬방을 짓고 살았는데요. 바다 옆에 공동화장실을 만들어서 용변을 해결하고, 바닷물이 들어오면 씻겨나가서 아이들이 바다에서 수영을 하면… 그 다음은 상상에 맡길게요. 하꼬방은 ‘상자’를 뜻하는 일본어 ‘하꼬’와 한국어 ‘방’이 더해져서 만들어진 합성어로 판잣집을 말합니다. 무너질 듯 작은 집에서도 사랑은 이어지고, 가난의 냄새가 지독한 중에도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겠지요. 그랬기를 바랍니다.


또 북성포구는 ‘십자수로’라고도 불리는데요. 바닷물이 깊게 드나드는 갯골을 남겨두면서 인근의 갯벌을 매립하다 보니 십자가 모양의 갯골만 남게 되어 그런 별칭을 얻었다고 해요. 물이 들어오기 전의 바다는 상처투성이 바닥이 전부입니다. 입구에서 보았던 거대한 나무토막 산더미는 목재공장의 것인데 크레인 소리가 귀를 압박하지요. 오늘은 잘 보이지 않지만 공장의 연기 기둥들은 구름보다 더 높아보여요. 사람도 배도 물고기도 바다도 다 떠나간 포구는 노인처럼 보입니다. 늙고 기력 없는 모습은 아니고요. 묵묵히 정성을 다해 살아가는 은자(隱者)처럼 보어요. 줄이어 선 점포들은 아침을 열고 있어요. 음식점들도 슬슬 개점 준비를 합니다. 오늘의 물때는 열두시에서 열두시 반 정도일 거라고 해요. 물이 들어오면 배가 들어오고 배가 들어오면 이제 막 죽은 물고기들이 함께 오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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