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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은경 씨

by 김박은경

나의 글을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글을 쓰지 않는다고 나무라는 사람도 없는데 우리는(저는) 글을 씁니다. 써야 한다고, 써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지 않을 때조차(글을 쓰지 않을 때 더욱) 글 생각을 합니다. 이건 중독의 일종일까요. 도피의 일종일까요. 구원에의 기대일까요.


애거사 크리스티는 말했어요. “쓰고 싶지 않을 때도 글을 써라.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별로인 글만 쓰게 될 때도.” 그 작가는 아마도 그렇게 하면 쓰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 글이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지만, 조금씩 좋아질 수도 있다고요. 불행히도 나빠질 수도 있지만 그런 건 그냥 내버려 두고(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더욱 쓰면 된다고요.


그냥 쓰는 것만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별로 맛도 없는데 먹다가 한 봉지 다 먹어버리는 스낵 같고, 틈만 나면 불을 붙이는 애연가의 담배 같습니다. 먹고 있지만 영양도 기쁨도 없어요. 피우고 있지만 습관이 되어버려서 큰 위로가 안 될 겁니다. 안 먹으면 심심하고, 안 피우면 허전하겠지요. 금단 현상이 있을 겁니다.


그래도 쓰고 싶다면, 정말로 쓰기를 원한다면 다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듯 자기 글에도 시간과 에너지와 진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까닭은 제 자세에 뭔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쓰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있지 전념해서 열중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핑계는 많지요. 피곤해, 졸려, 배고파, 밥 해야지...


타이머를 눌러보았어요. 아주 가끔 잘 될 때를 제외하고는 산만해요. 한 삼십 분 정도 쓰면 주의력이 떨어져요. 도파민이 팡팡 나오는 것을 (은근슬쩍) 찾아요. 커피를 마시고 싶고 책도 읽고 싶고 어학 공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화분에 물도 줘야 하고 요가도 해야 하고 밥도 해야 하고 등등 핑계는 셀 수 없이 많아요. 살짝 눈길만 돌려도 글로부터 튕겨져 나가요. 그래 놓고는 쓰고 싶었다고 매달리는 건 어불성설이죠.


올해도 쓰실 거죠. 매일 쓰실 거죠. 저도 그렇습니다. 왜냐고요? 이유는 모릅니다, 없습니다. 이유 없이도 잘하고 싶다면 뭔가 있는 거라고 믿으면서요. 시간과 에너지와 진심을 다해서 정성을 들여서 사랑을 담아서 뭐든 나의 가장 좋은 것을 내주면서 쓰려고요. 그러면 좋은 글이 나올까요. 그건 알 수 없습니다. 나올 수도 나오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무라카미도 그럴 때가 있었다잖아요. “괜찮아요, 무라카미 씨. 다들 원고료 받아가면서 차차 좋아집니다.”


그 말을 준비해 두려고요. "괜찮아요, 은경 씨. 원고료를 받아가면서(혹은 받지 못하면서) 차차 좋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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