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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반은 슬픔

by 김박은경

“침엽수는 고집이 세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침엽수의 나무줄기는 한눈팔지 않고 하늘을 향해 쑥쑥 자란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침엽수는 항상 중력의 반대방향으로 자라려고 한다. 모든 침엽수는 일사불란하게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종종 강한 돌풍이 불어닥쳐도 침엽수가 쓰러지지 않는 것도 이런 꼿꼿함 때문이다. 침엽수는 흙으로부터 나가떨어지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기 때문에 강풍의 직격탄을 맞아 틈이 생긴 부분만 땅에서 살짝 들어 올려져 있다.” (페터 볼레벤, 『나무 다시 보기를 권함』 중)


읽으며 그를 생각했다. 그는 한 그루의 침엽수, 맞다. 연푸른 셔츠는 풀을 먹인 듯 빳빳하다. 스스로 다렸을 것이다. 넥타이는 붉은색과 황금색이 소용돌이치는 무늬다. 커프스 버튼을 찾아서 끼우기를 부탁하신다. 버튼 구멍에 끼우는 방식의 커프스 버튼을 써본 적 없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 양복은 푸른빛, 맞춤으로 제작되어 그의 품에 아주 잘 맞는다. 바짓단은 말할 것도 없이 칼날이다. 양복 자킷 앞 포켓에는 커프스를 꽂았다. 금빛이 섞인 넝쿨식물무늬. 신발장에 놓아둔 검정 구두를 꺼내 신으신다. 소파에 앉아 조심히. 구두는 광이 반들반들하게 나 있다. 머리를 다시 한번 빗고, 걸음을 옮긴다.


그의 일생은 규칙 속에서 반복되었다. 열정적으로 책임을 다하는 삶, 퇴직 후에도 몇 가지의 일을 했고 이제 모든 일에서 물러났지만 평생의 습관은 그대로이다. 그의 일과는 종일의 운동과 선물 받은 마사지기계와 식사. 그래서 구순이 넘은 그의 몸은 청년 같다. 근육은 하나도 빠지지 않았고 청년들보다 더 단단하다. 빛이 나고 아름답다.


침엽수처럼 꼿꼿하게 선 채 그는 일생을 버틴다. 홀로 지내는 삶, 하루 종일 말할 일도 없는 삶. 먹고 운동하고 자고 다시 먹고 운동하고 자는 삶. 이미 잘 들리지 않고 잘 보이지 않게 되었지만 그런 기색을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모든 일상이 원활한 줄 알 정도로.


오래전 출근하고 빈집에 오셔서 어지러운 장롱 서랍까지 정리하시고 야단치시던 기억, 창피하고 화가 나서 대들던 일도 있다. 자신의 방식으로 타인을 조율한다는 게, 엉망으로 어지러운 일상을 들켰다는 게 몹시 속상했는데… 그분의 입장에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무질서였겠지.


그날도 잘 보이지 않아 방치하셨을 거실 바닥의 끈적거림, 무언가 굴러가고 버려진 소파와 침대 밑을 쓸고 닦으며 울컥했다. 잘 보였다 해도 다리를 구부리고 머리를 숙이며 치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절반은 슬픔, 절반은 안쓰러움. 돌아오는 마음은 오래전 장롱처럼 어지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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