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례상자

by 김박은경

그날, 입관하시던 모습을 찍어둘 걸 그랬다. 그 얼굴은 낯설고도 아름다웠는데. 아프지도, 힘들지도, 찡그리지도 않으셨는데. 입을 살짝 벌린 모습은 고단해서 잠든 아이 같았는데. 나는 속삭이듯 말했다. 예뻐라… 참 예쁘시네. 뺨을 쓰다듬고, 뺨에 뺨을 대보았다.


오래전, 퇴근하신 아버지가 꽁꽁 언 뺨을 들이대시며 웃던 날이 떠올랐다. 그날처럼, 그 뺨은 아주 차가웠다. "왜 이렇게 차가우셔…" 중얼거리듯 말하자 누군가 대답했다. "더 차갑게 모시는 병원도 있어요."

그때 들은 말도 생각났다. “수의에 눈물을 묻히면 무거워져서 영혼이 떠나지 못한다." 그날, 아버지의 영혼은 그 자리에 있었을까. 올라가지 못하신 채 너무 울지 말라고 하시면서 그 틈에 계셨을까. 누운 자신의 모습을 보며 함께 우셨을까. 어색한 화장에, 뻣뻣한 수의가 불편해서 담배 생각이 간절하셨을까.


영정사진도 원하던 건 아니었다. "멋지게 찍어둬.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써야지." 우린 종종 웃으며 말하지만 그날이 오면 다급하기만 하다. 휴대폰 앨범을 뒤적여 사진을 고르고, 보정하고 확대하고 배경을 지우고 검은 액자에 넣는 일은 슬픔에 젖을 틈도 없이 바쁘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언제나 의외일 것 같다.


죽음상자 혹은 장례상자 같은 걸 미리 준비하는 건 어떨까. 장롱 안에 바느질고리 챙겨두듯, 집집마다 구급상자 두듯 그 안에는 업데이트된 유언장, 남길 말, 버려줬으면 하는 물건들, 비밀번호와 영정사진 몇 장. 장례식에 부르고 싶은 사람들의 이름, 절대 부르지 말았으면 하는 사람들의 이름. 그리고 원하는 장례의 방식까지 적어두면 좋겠다. 바람대로 되기는 어렵겠지만.


장례지도사는 조용히 당부했다. "나가시면 손을 잘 씻으세요."


아버지 얼굴을 쓰다듬던 손을 비누로 오래 씻었다. 그 손은 아버지의 것과는 다르게 따뜻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급사가 로망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