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급사가 로망이라니

by 김박은경

셰익스피어의 극 『햄릿』에서 노래하며 무덤을 파는 묘지기의 유쾌함에 대해 김진영은 말했다. "죽음에 반사된 생명력의 발현일 것"이라고. 이제 곧 침묵할 테니 지금 실컷 말하고, 이제 곧 몸을 눕힐 테니 지금 열심히 움직이자고, 살아서는 썩지 말아야 한다고.*


지난 계절, 갑자기 세상을 떠난 분이 있다. 그 소식을 들은 L은 크게 울다가 슬퍼하다가 말했다.

“사실 제일 좋은 방식 아니겠어? 너무 늦지 않은 나이에, 병도 없이, 쓰러지고 하루 만에 가셨잖아.”

나는 대답을 못 했다. L은 혼잣말을 이어갔다.

"깔끔하지. 남은 사람들이 좋은 것만 기억하잖아. 오래 아프고 돈 들고, 망가지는 모습까지 다 봐야 하는 건 좀 그렇잖아. 급사가 내 로망이야.”

웃긴 말인데 웃지 못했다. 살 수 있는 날까지는 살아보려고 애쓰는 게 결국 살아 있는 사람의 몫 같아서.


김진영은 또 이렇게 썼다. "현대인에게 죽음은 무섭고, 아름답지 않고, 수치스럽다. 그래서 심각하게 아프다는 사실을 감추고, 병자를 격리하고, 망자에 대한 격한 감정을 절제한다. 죽음은 편재하지만, 막상 그것은 저기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숨겨져 있다.”


누군가 죽으면 그 사람의 나이가 궁금해진다. 기준은 나 자신이다. 나보다 오래 살았으면 오래 산 거고, 나보다 조금 살았으면 조금 산 거라고 믿어버린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또 살아간다. 딱히 다른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슬픈 사람도, 도망치고 싶은 사람도, 미칠 것 같은 사람도 마음이 하자는 대로 그대로 하지 않는다. 견디고, 어떻게든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낸다.


아버지가 계신 곳 주변, 여기저기 카네이션이 보인다. 묘지는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장소. 그곳에서는 울 수 있고, 미워할 수 있고, 용서를 빌 수 있고,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 있는 동안 미처 못다 한 말들을 비로소 꺼낼 수 있다. 다행이다.


* 250422 김진영, 묘지의 노래, 조선일보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 못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