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를 정하자마자 가슴인지 배인지 뜨거운 돌덩어리 같은 것이 느껴졌다.울지 않으려고 뒤로 달려가는 나무들을 노려보았다. 상점마다 내다 놓은 카네이션들은 붉거나 분홍. 이제 저 꽃을 살 일이 없구나. 작년 그 꽃이 마지막이었구나. 정말로 고아가 되었구나.
멀리서부터 커다란 꽃송이가 보인다. 절 가득 연등이 매달려 있다. 아직 다 달지 못하여 부지런히 다는 모습들. 멈춰 서서 사진 찍는 사람들을 본다. 아름다운 것, 좋은 것을 보면 기억하고 싶고 나누고 싶으니까. 나도 젖어서 흐릿해진 눈으로 몇 컷 찍는다.
노스님이 천천히 걸어가신다. 장삼 위에 걸치신 붉은 가사는 접어두었던 모양대로 고운 선이 그어져 있다. 그 뒤로 붉은 여드름이 목까지 이어진 스님이 걸어가신다. 그 뒤로 젊고 어리고 늙은 사람들, 휠체어에 앉은 채 기도하는 분 뒤에는 똑 닮은 사람이 서있다. 외출하기 힘드신 저 어머니는 오늘을 기다리셨겠지. 날이 예뻐서 소풍처럼 즐거우시겠다.
죽음이 너무 짧게 느껴진다. 엄마는 아버지가 오래오래 경을 외우고 기도하시고, 식구들이 모여 사십구재도 올렸는데. 요즘은 그런 거 안 한다고, 사는 거 바쁘고 힘들어서 제대로 올리는 집 없다고 하는 말에 변명을 삼은 것도 같다. 문자드려야지 하는데 안 계시다. 청소하러 가야지 하는데 안 계시다. 뭘 사다드릴까 하는데 안 계시다.
그러나 일하다가 갑자기 모나카, 대봉 사진, 롤 케이크, 파운드케이크, 맥모닝 세트, 간장게장, 크리스피 도넛, 담배, 동치미, 동해 바다, 대만, 만두, 동태 전, 해물 스파게티, 오징어튀김 같은 것들을 볼 때, 늙은 아버지 팔짱을 끼고 가는 여자를 볼 때, 젊은 아빠 손을 잡고 웃는 여자아이를 볼 때 자꾸 운다. 아무도 모르게 운다. 아직 맘 놓고 울지 못했다. 제대로 슬퍼하지 못한 것 같다. 이런 생각하면 가시는 분이 편히 못 가신다고 하던데. 나는 참 형편없는 사람이라서…
정성스레 보내드린 엄마는 좋은 곳에 가셨을까. 그렇게 못한 아버지는 다른 곳에 가셨을까. 그렇다면 두 분은 만나지 못했을까. 죽음 다음에는 그런 일도 없을까. 완전한 무만 남는 걸까, 생각하는 순간 작은 새가 한 마리, 맞은편에 또 한 마리 처음 들어보는 고운 노래를 한다. 그 건너편에는 까마귀가 한 마리, 그 위로는 낮달이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