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시계

by 김박은경

아버지의 유품을 하나씩 꺼냅니다. 탁상시계, 멋진 망원경, 붉은 스위스 로고가 박힌 만능칼, 작은 목탁, 손때 묻은 불경 수첩. 그리고 제가 드렸던 사인본 책들도요. 시계 이야기를 먼저 해볼게요.


아버지께서 “글자가 잘 안 보인다”라고 하신 말씀이 마음에 남아, 한참을 찾아 고른 탁상시계였습니다. 주문을 마치고 배송이 완료되었다기에 들렀는데, 그 자리에 물건이 없더군요. 분실이었습니다.


판매사에 문의하고, 택배기사님과 통화도 해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어요. 작고 눈에 잘 띄지 않는 택배였고, 아버지께서도 바로 들여놓지 않으셔서 누군가 가져갔을 거라 짐작했습니다.


옆집일까, 윗집일까. 속상하고 화도 났습니다. 혹시 이전에도 아버지의 물건을 누군가 슬쩍 가져간 건 아닐까, 괜한 의심까지 들었지요.


며칠이 지나고, 우편함 속에서 시계를 발견했습니다. 박스는 없고, 비닐에 둘둘 싸인 채로요. 아마도 자기 집 택배인 줄 알고 가져갔다가, 뒤늦게 알아차리고 슬그머니 돌려놓은 걸 겁니다. 무사히 돌아와 줘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시계는 아직도 아주 새것입니다. 아버지는 시계를 오래 보지도 못하고 입원하셨으니까요. 지금은 우리 집 거실 한편에 놓여 있습니다. 아침저녁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그 시계를 봅니다. 지금이 몇 시인지, 내 삶은 몇 시쯤 와 있는지 되묻게 됩니다. 흰 테두리, 회색 바탕, 검은 숫자들이 일 분마다 조용히 움직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나 사이의 어떤 시간이 계속 흐르고 있는 것처럼요.


시간은 모든 걸 이깁니다. 모든 것이 지나가고, 사라지고, 끝나버린 뒤에도 시간은 홀로 남아 있으니까요. 그래서 ‘시간 있니?’라는 물음만큼 거대한 질문도 없는 것 같습니다. 시간은 있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늘 없으니까요. 시간이 앞으로도 있을 거라 믿고는 싶지만 그렇지 않으니까요.


아버지에게 없는 시간이 아직 제게는 있습니다. 언제까지일지 모르지만 소중히 살아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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