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할머니의 젊은 시절 사진입니다. 아주머니할머니, 숙녀할머니, 소녀할머니, 어린이할머니, 아기할머니를 거슬러서 올라가다 보면 부재의 허공에 가 닿겠지요.
둥글고 흰 지지대에 장미넝쿨이 드리운 저 집은 둘째 큰아버지의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찍으셨을 겁니다. 어머님 곱게 단장하시고, 의자를 내오고 빛과 그늘을 살피며 앉으시기를 청했겠지요. 어머니, 찍습니다. 웃으세요. 자, 하나둘 셋! 어머니도 다정한 아들을 보며 아주 행복하셨을 겁니다. 좋아 보여요. 저 사진은 영정사진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1983년 6월 17일, 할머니의 장례식 사진입니다. 장례식장에 모인 자손들이 아주 많습니다. 슬픔을 나누는 일이란, 어쩌면 그런 걸까요. 한 사람이 떠난 자리를, 여러 사람이 감싸안는 일. 슬픔은 나눌 수 있는 걸까요? 기쁨을 나눈다는 말은 있는데,
슬픔도 나누는 것이라면 그건 나뉠수록 덜 아픈 것일까요, 아니면 더 깊어지는 것일까요?
장례식장 영정 앞, 저 흰 보자기를 기억합니다. 그 안에는 할머니의 옷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싸서 안고 간 사람은 엄마였지요. 더운 여름, 엄마는 그 보따리를 품에 안고 거리에서 큰 소리로 울었습니다. 엄마 뒤를 따라 걷던 시장길, 대로, 건널목이 떠오릅니다. 그 보따리가 저기 있었네요.
그리고 또 다른 사진들. 할머니의 사십구재입니다.
신촌 봉원사쯤이었겠지요. 햇볕이 무자비하던 날, 스님들도 머리에 수건을 얹고 계십니다. 할머니의 위패를 모신 가마가 지나갑니다. 염불 소리 속에서 가문의 며느리들은 작은 상에 경문을 얹고
조용히 따라 걷습니다.
더위가 수그러들 때쯤 우리는 저수지로 드라이브를 갔습니다.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조금은 웃었습니다. 엄마는 파마가 풀린 단발머리에 하늘색 바탕에 검은 도트가 찍힌 원피스를 입고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흰 셔츠에 양복바지, 저는 갈색 원피스를 입었고요. 엄마와 제 옷은 모두 아버지가 영국에서 사 오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날 아버지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슬픔의 골이 까마득히 깊어서 그저 손만 꼭 잡았던 기억이 납니다.
선명하게 남은 건 그날의 감정들 그리고 사진 속 순간들뿐입니다. 그것들만 사실인 것 같아요. 어떤 시간은 실제보다 훨씬 오래된 것 같고, 어떤 시간은 지금 막 지나간 것처럼 느껴집니다. 사진과 기록이 없다면, 진실을 오해하는 건 너무 쉬운 일이겠지요.
할머니 장례식 사진과 아버지 장례식 사진을 함께 꺼내봅니다. 두 분이 사진 속에서 나란히 계십니다. 그런데 엄마의 장례식 사진은 없습니다. 아버지에게도 없고, 제게도 없습니다. 아무도 사진을 찍지 않았던 걸까요. 아니면 그 순간은 차마 찍을 수 없었던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