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1982, 나의 2025

by 김박은경
아버지의 1982년 영국 사진과 뒷면의 설명입니다


아버지는 낯선 영국의 공원을 걷고, 나는 이곳 한국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들여다봅니다. 똑같이 6월이네요. 시간은 다르고, 계절은 비슷하고, 장소는 다르지만 무언가가 서로를 향해 손을 뻗습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생생합니다. 단단한 턱선, 살짝 웃는 입꼬리, 묵직한 어깨. 그 시절 그는 젊었고, 낯선 곳에서 삶을 살아냈고, 그 삶의 조각들이 사진으로 남았습니다.


나는 지금 오래된 필름 속에서 자라난 새순 같습니다. 새순은 반드시 옛 것 속에 있다가, 옛 것 속에서 손을 내밉니다. 잊힌 것 같았던 그 시간 속에서 한 장의 사진이, 한 줄의 손글씨가 살아 숨을 내쉽니다. 생명이란 늘 그렇게 가장 늙은 것에서 가장 어린것이 돋아나는 방식으로, 잊힌 것에서 다시 떠오르는 방식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죽는다는 것이 정말 끝일까요. 사라진다는 것이 정말 사라지는 걸까요. 순간들이 이토록 또렷하게 살아 있는 걸 보면, 불멸과 영원이라는 말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지금 아버지가 바라보는 방식으로 세상을 봅니다. 이미 그렇게 살아왔어요. 모든 순간 사라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내가 아주 조용히, 하지만 분명히 맞닿습니다.


2025 저의 인천거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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