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집 계약이 끝났습니다. 서울에 가도 이제 그 집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작고 어두운 집, 늘 켜져 있던 텔레비전 소리, 구석 벽에 차곡차곡 쌓아두신 신문, 담배 냄새, 시간이 물든 벽지. 그 속엔 언제나 적재적소에 놓인 도구들, 잊지 않으려고 혹은 조심하려고 적어두신 메모들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세탁실로 나가는 통유리문에 붙인 “유리”라는 견출지 하나. 그게 없었더라면 몇 번이고 박치기를 했을 겁니다. 대문에는 신문 슬쩍 가져가시는 이웃에게 전하는 정중한 당부의 문장도 있었는데요. 그것도 다 사라질 겁니다.
아버지가 글씨를 쓰실 때는 숨을 죽이고 보게 됩니다. 급한 순간에도 함부로 쓰는 법 없이 한 글자 한 글자, 오와 열을 맞추어 마치 마음을 꾹꾹 눌러 적는 듯하셨거든요. 세뱃돈 봉투에 적어두신 아이들 이름은 굳세고 다정한 기도 같았습니다.
이곳에 아버지 이야기를 남깁니다. 김광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 박남숙이라는 이름의 엄마, 두 사람이 엮어낸 가족들 사진도 몇 장 넣어서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개인사일 뿐이지만 이곳은 영원이라면서요. 죽어도 죽지 못하는 공간이라면서요. 아버지의 몸이 사라지고 물건들이 사라지고 집이 사라지고 제가 사라져도 그분들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믿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