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자고 하는 짓

by 김박은경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는 부상과 실패로 몇 년째 방에 틀어박힌 미지와 그녀의 할머니가 나옵니다.


“나 너무 초라하고 지겨워. 나한테 남은 날이 너무 길어서... 난 아무것도 못하겠어. 할머니, 나 너무 쓰레기 같아.”

“무슨 쓰레기? 사자 피해 도망치면 쓰레기야? 소라게가 잡아먹힐까 봐 숨으면 겁쟁이야? 다 살려고 싸우는 거잖아. 미지도 살려고 숨은 거야. 아무리 모양 빠지고 추저분해 보여도,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 거야.” 이 한마디에, 문득 마음이 젖습니다. 용서와 이해가 스며듭니다. 그래요, 우리는 다 살려고 그러는 거니까요.


최선을 다하지만 실패하고, 기대했던 만큼 실망하고, 기댈 곳 없어서 무너지고, 어느 날엔 오래 가라앉아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면 수면 위까지는 너무 멀고… 하지만 숨은 쉬어야 하니까요. 어쩌면, 생각보다 그 위는 멀지 않을 수도 있어요. 몸을 일으키고, 등을 펴고, 두 손을 조금씩 올려보고, 환한 쪽을 향해 발끝을 튕겨보는 순간이 와요.


너 왜 그래, 그렇게밖에 못해? 형편없네. 혀를 차는 사람들이 있겠지요. 무시하고, 깔보고, 못 본 척하는 냉담도 있겠지요.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누군가에게 폐가 되는 일도 있겠지요.


그래도 그래도,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 살려고 하는 그 모든 시도는 최대한의 용기와 다르지 않으니까요. 그러니 제발 주제도 모르면서 왜 그러냐고 비난하지 말아 주세요. 주제도 모르는 모든 행위는, 사실은 그 주제를 조금이나마 알고 싶어서 몸을 던져보는, 애타는 시도일지도 모르니까요.


고정욱 작가의 말을 떠올립니다. "우리는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합니다. '들이대' 그래도 안 되면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야 해요. '아니면말고'"


어디든 들이대 보고, 안 되면 잠깐 숨고, 또다시 걸어보고 그렇게 사는 겁니다. 살자고 하는 짓은,

그 자체로 다 용감한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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