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동시놀이터>

신인 1회 추천작 -'책을 읽다가 책 속으로' 외 1편

by 김박은경

책을 읽다가 책 속으로

김 박 은 경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로

정말로 빠졌다니까

거기서는

사자도 납작하고

강아지도 납작하고

앵무새도 납작하고

자동차도 납작하고

비행기도 납작하고

텔레비전도 납작하지

오고가는 사람들의

납작한 머리 위로

납작한 말풍선이

둥둥 떠다녀

나만 동그래서

다들 놀라서 쳐다봐

왜 동그랗냐고 물어봐

말풍선이 많아져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말풍선에 매달려

책이 두둥실,

날아가고 있어

그 책에 매달려

나도 두둥실

날아가고 있어

저 아래서

엄마는 손을 흔들며

나를 부르시지

엘리베이터 연극


“이 개 물어요?”

“아니 안 물어.”

커다란 개가

물지도 않는구나

“이 개 안 물지요?”

“아니 물어, 조심해!”

작은 개가

물 수도 있구나

개가 왕왕 짖으면

개 주인은

“죄송합니다…”

말하며 작아지고

사람들은 벽에 찰싹 붙어

개가 안 보이는 척한다

개는

코를 킁킁 대면서

으르르 소릴 내면서

짖을까 말까

물까 말까

고민하는 척한다




"즐겁게, 패기 있게, 열심히 써 나가길"

한 상 순 (시인)

2025년 상반기 <푸른 동시놀이터> 신인 추천에 모두 일곱 분의 동시 57편이 응모되었습니다. 그중 여섯 분의 동시가 1편 이상 추천되어 즐거운 동시놀이터가 되었습니다.

화훼농원에 가면 다양한 꽃들과 나무들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어떤 꽃을 살까, 어떤 나무를 고를까 행복한 고민을 하게 됩니다. 본인의 취향도 있겠지만 먼저 낯선 작물에 눈길이 갑니다. 그 아름다움에 감동하게 되면 꽃향기를 맡아 보고 나무의 잎을 만져 보고 줄기도 튼실한지 눈여겨보다 기쁘게 사들고 옵니다. 오는 내내 발걸음도 흥겹습니다.

이번 심사가 그랬습니다. <푸른 동시놀이터>라는 화훼농장에 내놓은 작품을 꽃과 나무를 고르듯 재미, 감동, 독창성, 새로움 등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중간 생략)


9편의 작품으로 처음 응모한 김박은경 님은 참신하고 새롭게 쓰려고 하는 의욕이 엿보였습니다. 먼저 「요란한 아이스크림」은 좋아하는 아이와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의 심리 묘사와 어법이 재미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연애감정을 다룬 시가 기존에 많다는 점이 살짝 아쉬웠습니다. 「명탐정은 기다린다」는 담쟁이 잎은 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상태를 보고 착안한 작품입니다. 낡은 소재여도 기법에 새로움을 모색하면 좋은 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다른 시에 비해 잘 다듬어져 있고 명탐정을 등장시킨 기법이 새롭고 재미있지만, 기존 동시에 숱하게 등장한 제재의 평범성이 한계를 드러냅니다. 끝 연을 유머러스하게 처리한 기법도 칭찬할 만하지만 시가 길어지다 보니 군더더기가 눈에 띕니다.

「엘리베이터 연극」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흔히 겪는 상황을 ‘연극’으로 본 게 좋았습니다. 시가 덜 다듬어지긴 했지만 생생하고 흥미로운 정황을 잘 묘사했습니다. 주로 사람을 만나게 되는 엘리베이터 안에 예기치 않게 애완견을 등장시켜, 주인과 달리 타인은 개의 특성을 모르기 때문에 무서운 척을 할 수 도 있다는 심리를 잘 묘사했습니다. 더욱이 개까지도 연극을 해서 짖을까 말까 고민한다고 표현한 점이 웃음을 자아내고 고개를 끄덕이게 했습니다.

「책을 읽다가 책 속으로」는 처음부터 재미있게 시작되고 곧바로 판타지로 빠져들지만 한낱 공상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생생한 이미지가 잘 받쳐 주고 있어 공감이 갑니다. 또한 시적 개성이 잘 드러나 있어 기존의 시들과 뚜렷한 차별성이 있습니다. 「엘레베이터 연극」, 「책을 읽다가 책 속으로」 2편을 1회 추천작으로 올리며, 다음에 꼭 발전된 작품으로 반갑게 다시 만나길 기원합니다.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첫 응모자가 2편, 기존 응모자들의 작품 중 한 분을 제외하곤 모두 1편씩 추천되었습니다. 작품을 고르면서 계속 든 생각은 좋은 동시 쓰는 일이 참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동시를 쓰기에는 신인 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입니다. 도전하는 자세로 응모하는 시기이니 만큼 더욱 즐겁게, 패기 있게, 열심히 쓰시기 바랍니다. 기성 시인이 되고 나면 그 즐거움이 어쩔 수 없이 감소하기 때문에, 멀리 오래 가려면 이 시기에 열정을 한껏 키워 둬야 합니다.

또 동시를 개성 있게 쓰라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남들과 확, 다른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조금씩 다를 뿐이지요. 그래서 애써 남달라 보이겠다는 강박은 갖지 않았으면 합니다. 다양성은 필요하지만 조금씩만 달라도 나름대로 가치가 있을 것 입니다. 만약 많이 다르다면 좀 더 귀한 대접을 받겠지요. 하지만 같은 꽃이어도 모양이 다 다르듯 ‘조금 다르게 써야지, 남들하고 구분은 되어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시를 쓴다면 즐거운 작업이 될 것입니다. 이는 심사를 하면서 나에게도 스스로 이르는 이야기임을 밝힙니다. 이 즐거운 작업으로 계속 여러분을 만나고 싶습니다.

심사위원 –한상순(시인), 신형건(시인, 비평가)


​(블로그 <푸른동시놀이터> 250701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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