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가 오면 깜짝 놀란다.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며 받으니 언니가 웃는다. 오 년 전 앓고 이겨낸 암에서 이제 완전 졸업이라는 소식이었다. 근래 들은 가장 기쁜 소식이다. 애쓴 언니가 너무 고마워서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 언니. 작지만 큰 언니, 약하지만 강한 언니. 정말 정말 고마워요.
릴레이로 이어지던 일이 마무리되었다.
싱크대 막힘은 일박 이 일에 걸친 대공사 끝에 해결되었다. 비용도 수고도 적지 않게 들었다. 주방 싱크대 배수는 현관 쪽 욕실로 이어지고 그게 다시 아파트 중앙 배수구로 이어진다고 한다. 십 년도 더 전에 싱크대 배수구 청소하다가 여행용 칫솔을 떨어뜨린 일이 있었는데 그게 문제였을까. 다시 꺼낼 수가 없었고, 별 문제없었는데 그 위로 작은 것들이 달라붙다가 뭉쳐졌을까. 싱크대 밑이 물바다가 되고, 수리 과정에서 심부름을 하다가 두 무릎에 멍까지 들었는데. 열심히 작업해 주시는 분들을 보며 존경스러웠다. 그런 일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꼭 필요한 일들, 듣고 보고 만지면서 해야 하는 일들. 시간이 만들어주었을 신기한 노하우까지. 비용을 청구하셨을 때, 흥정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받으셔야 할 것 같았다. 이제 싱크대도 바깥 욕실도 물이 콸콸 잘 빠져나간다. 속이 다 시원하다.
연이어 세탁기가 탈수되다가 멈췄다. 이미 두 번이나 고친 세탁기여서 수리 비용이 구매 비용보다 더 들게 생겼다. 새 세탁기를 기다리는 동안 빨래방에 갈 것인가, 세탁 코스까지만 돌리고 손으로 탈수를 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후자 쪽을 택했다. 있는 손 없는 손을 모아 함께 꽉꽉 짜서 말린 옷은 실외에서 일차 말리고 실내로 들여와서 마저 말렸다. 그리고 드디어 세탁기가 도착했다. 15킬로에서 19킬로로 업그레이드.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밀린 빨래를 척척 해주었다. 다 널어서 거의 마르는 중이다. 이 세탁기는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샀다. 아빠, 고맙습니다. 잘 쓸게요.
감기몸살은 거의 나은 것 같다. 약 먹고 뜨끈하게 자고 일어나니 땀까지 흘리고 있다. 감기 걸렸다고 아프다고 징징거리지 않는 어른이 되었다. 시간이 가면 나을 테니 약 먹고 잠을 챙겨서 자고 일주일 정도만 버티면 된다. 엄살 부리지 말고 할 일을 하는 내가 마음에 든다.
따스한 물을 마시며 소파 아래 기대앉아서 하늘을 본다. 이 집에서 가장 사랑하는 자리다. 오늘은 구름이 가득하다. 구름은 내가 움직일 땐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내가 가만히 있으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남동 방향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구름들. 희고 검은 구름 덩어리 사이로 금빛 안감이 번뜩인다. 그 사이로 해가 나왔다가 들어간다. 그 사이로 피라미처럼 작은 비행기가 반짝, 하고 지나간다. 이런 장면은 아주 구체적인 행복이다.
행복이란 문제 해결의 다른 말인 것 같다. 기쁘고 즐겁고 신나는 게 행복이 아니라 신경 쓸 일이 없어지는 것, 그게 정말 행복인 것 같다. 지금 아주 행복하다.
그리고 문제가 있는 게 문제는 아닐 것도 같다. better than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게 낫다. 싱크대가 막히고 다른 집 누수로 이어졌으면 어쩔 뻔했어, 이 정도라 다행이지 뭐야. 세탁기가 통째로 안 돌면 어쩔 뻔했어, 세탁이라도 되니 이 날씨에 빨랫감 이고 지고 다니는 고생은 면했지 뭐야, 하는 식으로.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가능한 긍정을 찾아내는 것, 그런 것이 삶의 묘책인 듯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