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 편해진다.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식물들은 자신이 뿌리 내린 환경에서 흡수할 수 있는 물과 영양분의 양에 맞춰 성장한다. 무리하게 더 많은 자원을 요구하거나 자신의 능력을 넘어서는 성장을 시도하지 않는다. 햇빛이 부족하면 그에 맞춰 잎의 크기와 방향을 조절하고 물이 부족하면 뿌리를 더 깊이 내려 효율적으로 수분을 흡수한다.” -김종욱. <숲에서 인생을 배우다>
작가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다르게 생각해 본다. 우리가 나무를 오해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고. 햇살 아래 고요한 나무들이,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나무들이, 한겨울 텅 빈 나무들이, 죽어버린 것 같은 나무들이 한계를 인정하고 편해진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닐 수도 있다고. 바라보고 있는 그 순간조차 한계를 받아들이지 못하여 괴로워하고 불행한 마음일 수도 있다고. 이윽고 다다른 고요의 지경 같지만 사실 절체절명의 순간일 수도 있다고.
한계를 인정하면 슬퍼진다. 우울해진다. 살기 싫어진다. 그만두고 싶어진다. 이 정도밖에 못 하냐고 소리치며 싸우고 싶어진다. 만취하고 싶어진다. 내 한계를 누가 한정 짓느냐고 묻고 싶어진다. 아니라고, 그럴 리 없다고 중얼거리다가 지쳐서는 무릎을 안고 앉아서 이게 한계라면 어쩌지, 여기 까지라면, 포기하는 게 낫다면 어쩌지.
그만두는 건 의외로 쉽다. 간단하다. 편하다.
책에는 무드셀라 나무가 소개된다. 5,000년을 살아온 나무. 미국 시에라네바다산맥 화이트마운틴 일대에 있다는 그 나무는 죽은 나무 같다. 해발 3천 미터가 넘는 고산지대에 살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아주 느린 성장에 있어서 100년에 고작 3센티 자란다. 그래서 작고 비틀어진 모습인데 마치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핏기 없이 하얗게 질린 것 같다.
5,000살 나무는 한계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백 년에 3센티씩 자라고 있는 것 아닐까.
사는 게 무의미하고 시시하다면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한계 속에 안주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안전지대를 벗어나려는 시도들은 당연한 실패를 가져올 텐데 그 과정의 불만과 실망과 스트레스야말로 우리를 단련시킨다고 믿고 싶다.
“날 수 없다면 뛰어라. 뛸 수 없다면 걸어라. 걸을 수 없다면 기어라. 무엇을 하든 계속 앞으로 나아가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의 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