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인에게

by 김박은경

그 시인을 L이라고 부르겠다. 메일이 왔다. 고등학생이고 시를 좋아하고 쓰다 보니 지역에서 상을 받게 되었고 시집을 내게 되었다는 소식. 놀랍고 대견하고 부럽고 기쁘고 이쁜 일이다. 일면식은 없다. 남학생인지 여학생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재능을 그렇게나 일찍 발견하다니, 얼마나 열심히 썼을까. 하루 종일 시 생각만 했겠지. 길지 않은 삶의 순간들을 돌아보며 시로 엮어냈겠지. 그 푸릇한 눈 속에서 늙은 세상이 새롭게 피어났겠지. 아무리 공부가 많아도 시 생각을 멈출 수 없었겠지. 그렇게 특출한 재능을 갖고 있으니 걸음걸음 일취월장하겠지.


축하와 응원을 많이 받았을 테니 다른 말을 해주고 싶다. 천재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어느 인터뷰에서 제대로 된 음악가라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매일매일 산을 넘어봐야 한다고. 이런 산도 저런 산도. 그러므로 하루 종일 연습해도 하루가 부족하다는. 그에게 인터뷰어가 그렇게 산을 넘는 행복감이 있냐고 묻자 임윤찬은 대답했다. “거의 없어요. 한 번도.”


L이 시에 사로잡혔으니 시도 L을 사로잡을 거다. 시 없이는 사는 것 같지 않을 거다. 시가 잘 되면 잘 되는 대로 안 되면 안 되는 대로 기쁨과 슬픔이 따라다닐 거다. 마음에 드는 창작을 했을 때의 고점과 그걸 찾아내지 못할 때의 저점이 그를 들었다 놨다 할 거다. 그러다 어느 날에는 내가 왜 쓰고 있나, 쓰지 말까, 내게 재능이 있는 거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수도 있다.


여기서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빅매직> 속 일화도 전해주고 싶다. 리처드 포드의 독서 낭송회에서의 일이다. 한 중년 남자가 인생을 살면서 내내 소설을 써 왔다고, 그렇게 수십 년 동안 노력했지만 단 한 편도 정식으로 출간하지 못했다고, 어떤 충고라도 해 주실 수 있는지, 버티라는 말만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포드는 대답한다. “선생님. 이제 글쓰기를 그만두라고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이유는 글쓰기가 아무런 기쁨이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고통만 주고 있다고, 차라리 여행도 하고 새로운 취미도 가져 보라고, 하지만 글쓰기만은 더 이상 하지 말라고, 글쓰기 때문에 불행을 겪고 있다는 게 명백하다고. 하지만 만약 그렇게 글쓰기에서 멀어지고 한두 해 정도 지났을 때 당신 삶에서 글쓰기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한다면, 한때 글쓰기가 그랬듯 마음을 온통 사로잡거나 뜨겁게 감동시키거나 창조적인 영감을 주는 그 어떤 것도 찾아내지 못했다면, 그렇다면 정말 그저 인내하고 끝까지 해 보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고.


용감하고 열정적인 L시인, 다시 한번 축하합니다. 응원하고 기도할게요. 함께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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