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식의 <울지도 못했다> 중 한 편입니다. 제목은 "도요새에 관한 명상"이고요.
가로지르다는 말이 있다면 세로지른다는 말도 있지요. 생과 사, 좌와 우, 기쁨과 슬픔, 믿음과 불신, 위와 아래, 앎과 모름, 있음과 없음, 가고 오고, 자고 깨고, 높고 낮고, 옳고 그르고... 무수한 대칭의 관념들.
대칭의 한쪽 지점이라면 명확합니다. 좋거나 나쁘거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는 건 그렇게 명징하지가 않아서 좋으면서 싫고 나쁘면서 완전히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시인이 말하는 ‘생사가 갈린 이후 잠시 반짝이는 적막’이 그래서 유의미합니다.
확신이라는 위험에 대해 생각해요. 그래서 늘 의심합니다. 그래서 자꾸 질문합니다. 답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을 텐데 최적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흔들림이 힘찬 날갯짓 아닐까요. 생사가 갈리는 위기를 지나면 ‘잠시 반짝이는 적막’이 올 텐데 그때 쉬어가야지요. 그때 숨을 쉬어야지요.
쉰다는 말과 숨을 쉰다는 말이 같은 지점을 통과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