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새운 기분, 눈은 뻑뻑하고 기분은 몽롱하다. 에너지드링크 때문. 편의점의 청소년들이 너도나도 사들기에 물었다.
"그거 먹으면 좋아요?"
"잠이 안 와요!"
그래서 사들고 와서 민망함에 텀블러에 옮겨 담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가 어제 종일 홀짝홀짝 마셨다. 일요일마다 꼭 하려던 작업을 끝마치자 다짐하는데, 책상에 앉아 삼십 분이 지나면 졸음이 쏟아지기 때문이다. 스터디카페도 카페도 소용없었다. 커피 안 마신 지 한 달이 넘어가니 마실 거라고는 물과 차인데, 아무리 마셔도 즉시 졸렸고. 잠 깬다고 땅콩이라도 먹다가는 씹으며 누워버릴 기세였기 때문이다.
그게 이토록 강력하다니. 자정을 넘기도록 정신이 명료하여 스피드를 내며 작업할 수 있었다. 더 하고 싶은 걸 출근을 위해 누웠으나, 말똥말똥 겁나도록 잠이 안 오는 부작용이, 아니 당연한 결과가 있었다.
이러니 아이들이 그걸 안 마실 수 있겠나. 옆의 아이들이, 나랑 내신으로 싸우는 적들이 저마다 각성하고 밤을 새우는데 나만 흐리멍덩한 채 늘어져 있을 수 있겠나. 찬물 세수도 해봤겠지. 꼬집어도 봤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조는 스스로에 열패감만 느끼겠지. 편의점은 방방곡곡 흔하니 들어가서 사서 마시는 거다.
부모님은 잔소리를 하겠지. 몸에 안 좋다, 좀 자고 나서 공부하는 게 낫지 않겠니, 중독될라 등등. 그러나 걱정스러운 잔소리 메들리가 졸고 자는 아이에 대한 실망감보다 낫다고 느끼고 있을지도 모른다.
에너지드링크는 각성제다. 커피 한 잔에 비해 카페인이 많은 것도 아니라고들 한다. 커피도 일종의 각성제다. 다들 여러 잔 마시며 하루를 보낸다. 잠 깨려고, 식후에, 심심해서, 마실 게 없어서 마시고 또 마신다. 먹다 남으면 버리고 새로 타고 또 산다. 향이 좋아서 음미하는 커피 애호가가 물론 존재하지만, 카페인 중독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염소가 붉은 커피 원두 먹는 걸 보고 호기심에 맛보았다는 사람들은 유레카를 외쳤겠지. 정신 들고 활력 넘치고 잠 안 자도 멀쩡한 음료라니 시간을 증폭시키는 신종 보약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고종께서 드시던 커피도 단순한 호사 취미를 넘어섰을 거다. 정신 차리고 이 나라를 살려보자, 다짐이 있었을 수도.
안다. 에너지드링크에 함유된 카페인은 커피 콜라 녹차에도 있는 것. 각성제라 불리지 않고 일반 식품으로 분류된다는 것도. 각성의 효과는 있지만 의약품 수준은 아니기에 청소년 판매 금지를 걸기 어렵다는 것도.
청소년 유해 물질로 규제하려면 강한 중독성, 위법성, 즉각적 신체 위해 같은 것이 명백해야 하는데 에너지 드링크는 그 기준을 넘지 못한다. 물론 어린이 청소년 섭취 주의, 과다 섭취 경고 문구, 학교에서는 반입이나 섭취를 제한하기도 한다. 하지만 커피는 되는데, 박ㅇㅇ는 되고 비ㅇㅇㅇ은 되고 구ㅇㅇ은 되는데 몬ㅇㅇ만 안 된다고 할 수 있나? 법은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에너지 드링크 금지를 왜 하냐, 병든 닭처럼 졸고 게임에만 눈을 번쩍 뜨는 꼴을 보느니 차라리 학교 급식에 넣어서 애들 정신 바짝 차리게 하자는 의견에 깜짝 놀랐다. 성장기의 아이들은 수면리듬이 완전하지 않고, 뇌의 충동 기능도 발달 중이다. 여기에 카페인을 쏟아부으면 잠은 깨겠지만 피로는 누적되어 더욱더 강한 자극을 찾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졸리면 마신다,라는 인식이 고착된다. 졸리다는 건 쉬라는 신호인데 버티는 습관은 성인이 되어도 이어질 거다. 카페인 없이는 생활이 불가능한 어른이 될 거다.
에너지드링크가 커피보다 문제인 까닭은 짧은 시간에 고용량의 카페인이라는 점, 당분 섭취, 자극적 마케팅이 문제다. 집중력, 각성의 이미지는 청소년들에게 직격탄이다. 커피와는 용도 자체가 다르다는 게 핵심이다. 이러다가 에너지드링크를 물처럼 마시게 되는 거 아닌가 몰라.
각성 상태로 순간을 음미하기란 불가능한 것. 미세하게 온도가 달라지는 봄날, 새로 피는 연노랑 꽃들, 발밑의 제비꽃, 흐드러진 조팝 이팝 꽃무리 다 몽롱할 거다. 현실이 꿈같을 거다. 지상에서 10센티쯤 둥둥 떠다닐 거다. 그래서 나는 두 번 다시 그걸 안 마실 건가? 글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