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처럼 쓰는 삶에 대하여

by 김박은경

윤덕원(브로콜리너마저)은 그의 저서 <열심히 대충 쓰는 사람>에서 고백합니다. 글이 써지지 않는 괴로운 밤이면 '수제비'를 떠올린다고요. 거창한 만두피처럼 속재료를 꽉 싸맬 필요도 없이, 그저 손에 잡히는 반죽을 툭-툭- 떼어 육수에 던져 넣는 마음. 평생을 '덜 솔직한' 노래로 채웠으니, 글만큼은 투박하더라도 '더 솔직하게' 던져보겠다는 다짐입니다.


하지만 삶이 어디 그리 만만한가요. 수제비 한 그릇 끓여내는 일도 지난한 공정이 필요합니다. 밀가루와 물, 계란 한 알, 그리고 고소한 참기름 한 방울. 손에 하얀 가루를 묻혀가며 치대다 보면 어느덧 말랑하고 보들보들한 '형체'가 잡히기 시작하는데요.


내공이 얕은 제게 수제비는 '간단한' 음식이 아닙니다. 멸치와 다시마로 깊게 우린 육수가 있어야 하고, 그 속엔 감자, 호박, 당근, 파, 마늘 같은 조연들이 제 몫을 다해야 합니다. 곁들일 열무김치나 알싸한 청양고추까지 챙기다 보면, 설거지통은 이미 산더미처럼 불어있기 일쑤죠. 글쓰기도, 인생도 이와 닮았습니다. 초반의 가벼운 마음만으로는 한 그릇의 근사한 결과를 내기 어려운 법이니까요.


우리는 종종 오늘 하루 뭐 특별한 거 없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부를 들여다보면 모든 하루는 일생처럼 길고 밀도가 높습니다. 기억하지 못할 뿐, 우리가 읽어내지 못한 행간 속에 수많은 사건이 숨어 있죠.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쓰는 이가 이미 여러 차례 마음속으로 되뇌며 읽어내기 때문입니다. 작가는 노래합니다. 붙들고 있던 것이 사라질까 봐 다듬고 또 다듬느라 정작 꺼내야 할 속마음은 꺼내지도 못한 채 방황하던 시절을요.


"마음속에 간직했던 생각들을 / 꺼내지도 못한 채로 / 아무것도 쓰지 못한 사람이 되어 / 헤매고 있었죠."(같은 제목의 노래 가사 일부)


작가는 선언합니다. "열심히 조금 대충 쓰는 사람이 될래요"라고요. 이 역설적인 문장 속에 하나의 정답이 숨어 있습니다. 너무 잘하려고 어깨에 힘을 주면 반죽은 딱딱해지고 글은 막혀버립니다. 그럴 땐 차라리 조금 대충, 그러나 멈추지 않고 열심히 떼어 넣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사는 게 지루해지거나, 세상 모든 것에 투덜대고 싶을 때, 혹은 영영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아 막막할 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볼까 합니다. 오늘 하루는 서툰 수제비 한 그릇처럼, 열심히 조금 대충 살자고 말이죠. 우선 그렇게 시작하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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