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텔카스텐으로 글쓰기

by 김박은경

글쓰기의 엔진을 돌리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마음이다.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쓰게 마련이다. 여기서 독일 사회학자 숀케 아렌스의 <제텔카스텐(Zettelkasten·메모 상자)>을 소개하고 싶다.


루만은 평생 58권의 저서와 350편의 논문을 쏟아낸 저술의 괴물이었다. 비결은 단순했다. 9시부터 5시까지 공무원으로 일하고 돌아와, 자신이 좋아하는 철학과 사회학을 파고들며 떠오르는 생각을 쪽지(Zettel)에 적어 상자(Kasten)에 던져 넣은 것이다. 남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책 한 권을 쥐어짜 낼 때, 루만은 상자 속 메모들을 연결하며 집필 분량을 압도하는 통찰을 길어 올렸다.


숀케 아렌스는 메모를 '숨쉬기'에 비유한다. 너무나 필수적이라 간과하기 쉽지만, 일상의 호흡법을 조금만 바꿔도 결과는 판이해진다고. 스마트하게 메모하는 사람들은 백지의 공포를 마주할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그 단언은 매혹적이다.


물론 메모의 산더미에 갇히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저장 방식이 아니라 안테나를 세우는 마음이다. 무엇을 메모할까. 이 메모를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며 '메모에 대해 메모하는' 그 끈질긴 마음이야말로 글쓰기의 근간이다.


필자 역시 휴대폰 메모장부터 '나와의 카톡', 신문 스크랩까지 동원한다. 사진도 물론. 하지만 명심할 점이 있다. 메모는 수집이 절반, 활용이 절반이다. 언젠가 쓰겠지, 하는 미련은 망각의 지름길이다. 쇠는 "뜨거울 때 바로 내리쳐야" 제 모양이 나온다.


나만의 마감일을 정해두고 일단 마침표를 찍자. 붙들고만 있으면 첫 발상의 빛은 희미해지고 배는 산으로 간다. 완벽한 문장을 기다리며 빈 화면을 응시할 시간에, 지금 당장 손 안의 메모 한 줄을 문장으로 바꾸자. 쓰면 삶은 길어진다.


고민하지 말고, 지금 쓰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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