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의 낡고 허름한 자취방에서 집주인이 발견한 것은 먼지 쌓인 잡동사니. 그것은 60여 년의 세월 동안 홀로 써 내려간 15,000페이지(13,145)의 원고와, 기이할 정도로 아름답고 거대한 300여 점의 삽화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헨리 다거(Hanry Darger).
그는 1892년 4월 12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습니다. (1892.04.12~1973.04.13) 4세 때 어머니는 여동생을 낳다 세상을 떠났고 여동생은 입양되었습니다. 양복장이였던 아버지는 9세 때 그를 가톨릭 학교에 맡겼습니다. 남들과 조금 다른 행동 탓에 '지진아 보호 시설'에 격리되었던 그가 고향 시카고에 돌아온 것은 17세 때, 아버지가 타계했음을 뒤늦게 알고 시설에서 거듭 탈출을 시도하다 겨우 성공한 세 번째에서였습니다. 먼 거리를 노숙해 가며 고향의 대모를 찾아갔고 그녀의 주선으로 한 가톨릭 병원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기 시작, 20대 잠깐의 육군 복무와 생의 마지막 약 10년간 사회보장요양원에서 생활한 것을 제외하고 평생을 그 직업으로 살았습니다. (경비원이었다는 글도 있고, 청소와 설거지 포대 감기 등의 저임금 노동자였다는 글도 있습니다)
낮에는 노동자로, 밤에는 자신만의 제국의 통치자로 살던 헨리 다거.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소외된 영혼은, 밤마다 타자기 앞에 앉아 <비현실의 왕국>이라는 거대한 도피처를 건설했습니다. 타자기로 친 것이 7권(총 15,145페이지), 육필 원고로는 8권에 이르는 작품을 남깁니다. 소설의 삽화로 인물을 직접 그리거나 콜라주한 뒤 수채화로 완성한 드로잉들은 300여 점에 달하고요. 눈 밝은 집주인이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대로 쓰레기 취급을 받았겠지요.
기시 마사히코는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에서 말합니다. '헨리 다거의 작품이 우리의 감정을 흔들어 대고 온 세계의 경탄을 자아낸 이유는 양성구유나 아동학대라는 모티브 때문만은 아니다. 도리어 그의 작품이 죽기 직전에 발견될 때까지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것은 하마터면 영원히 이 세계에서 사라져 버릴 참이었다. 믿을 수 없는 우연한 일이 몇 겹으로 겹쳐서 그것은 이 세계에 남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도착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단 한 명의 독자도 상상하지 못한 채 숱한 밤을 지새우며 써 내려간 그의 일생을 생각합니다. 그것은 목적 없는 욕망이었고, 구원 없는 기도였을지 모릅니다. 때론 스스로를 행복하게 했겠지만, 때론 지독한 허무로 그를 할퀴었을 고독한 작업이었겠지요.
그에 대해 뭐라도 쓰고 싶었는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뭐가 되었거나 끈질기게 잡고 늘어지는 삶의 방식? 스스로를 견인해 가는 내적인 힘? 불우한 성장과정에서 비롯되었을 정신병적 기질? 비목적적인 지향? 끝내 놓아 버리는 엔딩? 우연히 발견되고 회자되며 주목받는 행운? 아웃사이더로 살아간 불운한 천재성?
우리는 그의 삶에서 자신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만의 비밀스러운 우주를 가꾸고 있는 내 안의 헨리 다거를 말입니다. 그는 철저한 고독 속에서 떠났지만, 그가 남긴 조각들은 이제 우리에게 도착해 "포기하지 말고 너만의 세계를 계속하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