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미쓰홍』과 『아너』

30년의 시간은 여성 인물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by 김박은경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언더커버 미쓰홍』과 『아너』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한 캐릭터의 변화가 아니라 ‘여성성의 이동’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하 미쓰홍은 “1990년대 세기말, 30대 엘리트 증권감독관 홍금보가 수상한 자금의 흐름이 포착된 증권사에 20살 말단 사원으로 위장취업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레트로 오피스 코미디”이라는 설명입니다. 아너는 “거대한 스캔들이 되어 돌아온 과거에 정면 돌파로 맞서는 세 여성 변호사의 뜨거운 미스터리 추적극. 그리하여 지금이다.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을 시간”이라는 설명입니다. 미쓰홍 드라마에서의 IMF는 1997년이었으니 두 드라마의 시차는 약 30년입니다. 두 드라마 모두 여성이 주축이고, 단독자가 아니라 연대하는 여성성의 힘을 보여줍니다.


미쓰홍의 여성은 유능합니다.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고, 남성 못지않은 판단력과 실행력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어디까지나 조직과 국가, 혹은 관계를 지키기 위한 방향으로 쓰입니다. 강하지만, 그 강함은 체제를 흔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체제 안에서 인정받기 위한 조건이 됩니다. 1990년대가 요구한 여성성은 “남성과 동등해질 수 있는 능력”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기존 질서에 진입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흐름과 맞닿아 있습니다. 여성도 기회를 얻으면 남성과 똑같이 해낼 수 있다는 믿음. 그러나 그 전제는 기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데 있지요. 여성은 그 구조 속에서 ‘예외적으로 성공한 개인’으로 호명됩니다. 강인하지만 조화롭고, 유능하지만 감정은 절제하는 인물. 하여 미쓰홍은 관계의 균형을 깨지 않는 방식으로 행동합니다.


아너의 여성은 다릅니다. 그는 단지 유능한 인물이 아니라 질문하는 인물입니다. 가족의 기대, 조직의 명령, 사회적 관습이 부당하다고 느껴질 때, 감내하기보다 문제 삼지요. 여기서 ‘명예(honor)’는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존엄에 가깝습니다. 인정받기 위해 침묵하지 않고, 관계 유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 않습니다. 이 변화는 탈가부장제 담론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여성 인물은 더 이상 체제 안에서 성공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구조 자체가 공정한지, 권력이 어떻게 배분되는지, 왜 특정 역할이 여성에게 반복적으로 요구되는지를 묻습니다. 1990년대의 여성성이 ‘적응’의 전략이었다면, 2020년대의 여성성은 ‘재구성’의 전략에 가깝습니다.


감정의 위치 변화도 주목할 만합니다. 과거 드라마 속 전문성은 감정 억제와 연결되었습니다. 눈물은 약함의 표지였고, 분노는 통제의 대상이었으니까요. 최근 서사에서 감정은 정치적 의미를 획득합니다. 상처와 분노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경험으로 읽힙니다. “사적인 것은 정치적이다”라는 오래된 페미니즘의 문장이 비로소 대중 서사 속에서 힘을 얻은 셈입니다.


오늘날의 드라마가 완전히 가부장제를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상업적 서사는 여전히 갈등을 개인의 성장 이야기로 봉합하곤 하니까요.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여성 인물이 ‘잘 해내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묻고, 거부하고, 때로는 질서를 불편하게 만드니까요.


30년 전의 여성들이 인정받기 위해 강해졌다면 오늘의 여성은 스스로 정의하기 위해 질문합니다. 이 차이는 작지 않습니다. 그것은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의 변화이자, 여성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이기 때문이지요. 드라마 속 인물의 변모는 곧 우리 사회의 변화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그 거울은 여성성을 더 이상 ‘적응의 기술’로만 설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드라마를 재미있다, 없다라는 도식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30년 이상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미쓰홍 속 주인공들이 지금 나의 곁에 혹은 내 얼굴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아너의 주인공 같은 여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여성들의 내면에는 시대를 뛰어넘거나 넘지 못하는 무언가가 또 존재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이겨내고 어느 순간에는 지기도 하겠지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하다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가기도 하고요. 지금 나의 여성성은 어떠한가, 아니 여성성이라는 말은 빼고 지금 나는 어느 쪽인가,라고 묻는 게 맞겠습니다.

각 사진은 드라마 홈페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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