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되는 글쓰기

-시의 빈틈과 산문의 밀도

by 김박은경

시를 읽는 일은 짝사랑을 닮았다. 어떤 시는 단숨에 숨이 멎을 만큼 황홀하지만, 어떤 시는 도무지 해독되지 않는 난수표처럼 차갑게 군다. 난해함의 벽에 부딪혀 괴롭게 책장을 덮으면서도, 우리는 왜 그 문장들 주변을 기어이 서성이게 되는 걸까.


너무 투명한 시는 금세 싫증이 나고, 너무 고립된 시는 독자가 들어설 문조차 내어주지 않는다. 매혹적인 시는 그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서 있다. 독자를 놓칠 만큼 앞서가지도, 신비감을 잃을 만큼 친절하지도 않은 그 지점. 여기서의 '매혹'이란 철저히 사적 영역이다. 어제의 난해함이 오늘의 깊이로 다가오고, 누군가의 '뻔함'이 누군가에게는 '안식'이 되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시는 기어이 숨어버리는 쪽을 택할 때 비로소 그 세계가 확장된다는 점이다. 시인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빈틈 사이를 뒹굴며 기분 좋게 낙하하는 경험, 그것이 시만이 가진 독특한 마력이다. 산문은 정직하다. 숨을 구석이 없다. 화려한 수사 뒤로 숨기보다 민낯을 온전히 드러내고 정면으로 승부하는 문장이 독자를 압도한다. 시가 '빈틈'의 예술이라면, 산문은 '밀도'의 예술인 셈이다.


시 같은 산문, 산문 같은 시를 만날 때 우리의 감각은 무한한 탄력을 받는다. 결국 살아남는 글은 독자에게 '해석의 권력'을 넘겨주면서도, 작가의 '진실한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글이다. 우리는 여전히 그 마법 같은 한 줄을 기다리며 페이지를 넘긴다.


매혹적인 시와 산문을 쓰는 법은 무엇일까. 시는 빈틈을 의도하라고, 낯설게 하라고들 한다. 산문은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본질로 직진하라고, 문장의 길이와 전체의 길이를 고민하라고(단문과 복문의 혼재) 한다.


시와 산문 모두 첫 문장의 압도감이 요구되며 제목 또한 큰 영향을 미친다. 가장 개인적인 경험이 가장 보편적인 공감을 얻는다. 나만의 특수한 감각을 정교한 언어로 내놓을 때 그 글은 비로소 살아남는 글이 된다.


(말이 쉽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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