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은 왜 그럴까요

by 김박은경

소설 속, 드라마 속 엄마들은 걱정쟁이, 어째서 쿨해질 수 없을까요. 언제 오냐고 밥 먹었냐고 똑같은 질문을 반복합니다. 바리바리 반찬을 싸가고 집청소를 해주고 시기별 걱정의 소재는 진화합니다. 성인이 되고 늙어도 자식 걱정은 엄마(부모)의 단골 레퍼토리입니다. 화자도 청자도 귀에 딱지가 앉겠어요.


생물학적으로 부모, 특히 엄마들은 자녀의 위험을 감지하는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합니다. 원시 시대부터 자녀의 끼니와 안전은 곧 종족의 번식과 직결되었기 때문이겠지요. 현대 사회에서 연락 두절이나 식사 거름은 생명에 지장이 없지만, 엄마의 뇌는 이를 비상사태로 인식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엄마들은 자녀와 자신을 완전히 분리된 인격체로 보기보다, 자신의 일부가 밖으로 돌아다니고 있다고 느낍니다. 자녀가 배고프면 본인이 허기를 느끼고, 자녀가 외로우면 본인이 아픈 것처럼 느끼는 정서적 동조가 너무 강해서 그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걱정이라는 행동을 취하는 것도 같아요.


걱정은 곧 사랑의 표현입니다. 밥 먹었냐는 말은 사랑한다는 고백이에요. 걱정 좀 그만하라고들 하지만 걱정을 멈추는 것이 자녀에 대한 관심을, 사랑을 끊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죠.


어째서 우리는 똑같은 엄마가 될까요? 혹시 엄마들 탓은 아닌가요. 모델링에 의해 사랑이 걱정이라고 은연중 느끼는 것은 아닐까요. 아님 내가 겪은 험난함이 무거워서 내 아이만은 세상 풍파 겪지 않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요. 경험치의 누적이 걱정의 데이터를 늘리는 것도 같습니다.


엄마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군요. 돈워리, 어차피 잘 올 거야, 늘 그랬잖아. 아이들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귀찮아도 안심의 시그널을 보내라고요. 모임 있다, 늦는다, 몇 시까진 귀가한다. 이런 연락 어려운가요. 그게 공생의 에티튜드 아닌가요.


그 쉬운 게 쉽지 않아서 매체 속 엄마들은 늘 그 모양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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