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은 묻습니다. "요즘도 시 쓰니?" 쓰지 "책은?" 냈지 "아, 사서 읽어야 하는데"라는 말. 그 말 뒤에 붙은 멋쩍은 침묵을 나는 압니다. 친구들은 아마 사지 않을 것이고, 읽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시집을 보내지 않습니다. 시인들과는 주고받는 일이 이어지지만 '시 몰라라 친구'들을 괴롭히고 싶진 않아서요. 시간도 없는데 읽고 싶은 거 읽어야지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할 자유가 있으니까요. 읽지 않을 사람에게 시집을 건네는 건, 선물을 가장한 부채 같습니다.
시를 써서 돈을 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료가 센 곳도 있지만 고료 없이 진행하자는 곳도 있습니다. 책으로 퉁치자는 곳이요. 시는 쌓여 있고, 공짜로 드릴 수도 있겠지만 정중히 사절합니다. 그건 시에 들인 마음과 시간을 무시하는 처사이니까요.
시만 써서 먹고사는 시인은 없을 겁니다. 파생되는 일, 곁 일로 돈을 벌어주어야 시를 쓸 수 있어요. 그렇다고 시를 쓰기 위해 곁일을 하는가?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쓰고 돈 되는 일을 할 뿐이죠. 들이쉬고 내쉬는 숨처럼 공생하는 방식입니다. 시는 시대로 일은 일대로 두 바퀴 네 바퀴가 되어 달리게 해 줍니다.
비효율적인 시와 효율적인 일의 조합. 쓰지 않으면 사는 거 같지 않고 돈을 벌지 않으면 쓰는 일이 힘겨워져요. 둘 중 그래도 뭐가 중하냐 묻는다면 쓰는 일은 심장에 가깝고 돈 버는 일은 수족에 가깝습니다. 써야 삶이 생생해지지만 어쨌든 둘 다 있어야 삶이 굴러갑니다. 둘 다를 가져서 감사합니다.
누구나 먹고사는 일 말고 뭔가가 있어야 해요. 바느질도 그림도 도기 굽기도 붓글씨도 뜨개질도 산책도 요리도 여행도 블로그도 유튜브도 인스타그램도 좋아요. 뭐든 비효율적 매혹을 삶의 방에 들여야 합니다. 도저히 그럴 여유가 없을 때도 있지요. 그래도 (그럴 때일수록) 조금만 허락해 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