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냥마을 소녀들, 고양이를 부탁해(3)

-인천 배다리 우각로

by 김박은경

6. 미림극장

미림극장은 1957년 11월 인천 동구 송현동에 천막극장을 세워 무성영화를 상영하면서 시작됩니다. 한때 대형복합영화관에 밀려 상영을 중단했다가 2013년에 ‘추억극장 미림’으로 새롭게 개관하였고요. 현재는 ‘인천미림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고전영화, 한일영화교류전, 독립영화, 예술영화 상영 및 문화예술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과거 인천 동구는 부두노동자, 동구 일대에 형성된 중공업 공장 노동자, 방직공장과 밀가루공장과 성냥공장 등이 많았습니다. 그들이 열심히 일을 하고 월급을 타면 영화를 보러가는 게 낙이었다고 해요. 영화 필름이 낡아서 영화를 보다가 중간에 필름이 끊어지는 일도 생기고요. 빗금이 그어진 영상도 많았지만 우우 비난 소리와 함께 다시 영화 속으로 빠져 들어갔겠지요. 미림극장의 3층에는 역사유물 전시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추억의 영화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어요. 아, 미림은 ‘美林’ 아름다운 숲을 의미합니다.


13 미림극장.jpg 미림극장

7. 동일방직 인천공장

이곳의 전신은 일본의 동양방적입니다. 만석동 부지에 3만 평 공장을 세우고 1934년부터 가동했는데요.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불황으로 일본에서의 조업 단축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은 원료 수급과 저임금이 아주 좋은 조건이었다고 합니다. 1937년 동양방적 인천공장 노동자는 1,837명, 많을 때는 3천 명이 넘을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1934년 동아일보 기사에 따르면 동양방적 인천공장 여공의 임금이 12시간 노동에 20전, 당시 일반물가 수준이 서양비누 한 장에 2~3전에 기숙사 세 차례의 식대가 15전이니 하루 식대를 제하고 나면 여공의 임금은 남는 게 없네요. 높은 벽돌담에 갇혀 기숙사 생활을 하는 그 맞은편에는 공장에 다니던 일본인들이 자유로이 살던 주택가가 있었다고 합니다.


14 동일방직 담장.jpg 동일방직 담장

동일방직은 1955년 일본의 동양방적공사를 불하받아 세운 방직회사입니다. 방적과 방직, 실만 뽑다가 직물을 짜게 되었다는 뜻이지요. 고용노동자 1,300명 중 1,200명 이상이 여성 노동자였다고 합니다. 1966년 동일방직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 1978년 문교부로부터 부설 여자중학교 설립 인가, 1981년 문교부로부터 동일여자상업학교 인가, 화선레나운회사 주식을 인수하여 동일레나운으로 상호를 변경합니다.


만석동 동일방직 인천공장 안에는 공장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을 듯한 한옥 형태의 건축물이 있습니다. 동일방직 의무실인데요. 195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이 건물은 신입사원 교육실과 의무실로 쓰였다가 현재는 비어있는 상태입니다. 단층 목조건물로 우리나라 전통양식, 서양식, 일본식이 복합되어 있는 독특한 구조라고요. 지붕선과 기와, 창살문양 등은 한옥양식이지만 지붕틀과 기둥 형태·배치, 주출입구 포치(porch), 복도 등 건물의 내부구조는 일본 건축양식이라고요. 또한 건물의 높은 층고는 서양식 건축물을 떠올리게 하는데요. 의무실 안에는 오래된 인체해부도나 1994년 보건사회부에서 제작한 ‘국민건강생활지침’ 액자 등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합니다. 출입은 불가하여 사진으로 찾아보았어요.


15 동일방직 의무실.jpg 동일방직 의무실, 출처 경인일보

동일방직 여성노동자들은 1966년부터 가톨릭노동청년회, 인천산업선교회 등의 협력으로 노동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았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1970년대 우리나라 최초의 노조 여성지부장을 탄생시킨 여성 노동운동의 출발지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와중에 탄압과 폭력이 자행되었고 1978년에는 여성 노동운동사의 상징적인 사건인 ‘똥물투척사건’이 일어나기도 했고요. 동일방직은 당시 여성이 대부분이었던 회사 노조의 민주화운동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강경애가 동아일보에 연재한 소설 『인간문제』에 나온 대동방적공장은 동양방적을 모델로 삼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공장은 설비를 이전하여 면사 및 직물상품의 물류창고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담장에 가려진 넓은 공장, 커다란 입구와 경비실, 그 안이 궁금해서 발돋움을 하고 오래오래 들여다보았습니다.


8. 삼화제분 인천공장

삼화제분 인천공장의 역사는 1917년 일본인 사업가 사이토 큐타로가 인천 만석동에 설립한 사이토 정미소에서 시작됩니다. 정미업으로 돈을 번 사이토는 1921년 용산에 풍국제분을 설립, 1935년에 인천의 사이토정미소를 합병하여 풍국제분 인천공장으로 운영합니다. 광복 후 적산기업으로 운영되던 풍국제분 인천공장을 1957년 삼화제분이 인수하여 밀가루를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는데요. 지금까지도 원래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는 보기 드문 근대산업유산으로 꼽힙니다. 일본 강점기 동구 최대의 건물이었고, 6·25 때 피난민 수용소로 사용되기도 했답니다.


풍국제분 시절, 장마철이면 공장이 있던 동네 가득 술 냄새가 났다고 합니다. 야적장에 쌓아둔 원맥들이 비에 젖어 불어나고 상하면서 막걸리 냄새가 나는 거죠. 공장 야적장에는 밀이 많이 쌓여 있어서 일을 하다보면 하역인부들이나 청소아줌마들이 바짓단 속에 밀이며 밀가루를 빼돌리기도 했고요. 이렇게 흘러나온 밀가루로 끼니를 때웠답니다. 명절이나 창립기념일이면 보너스로 밀가루 전표가 지급되었는데 그게 돈이나 마찬가지여서 온 동네가 잔칫집 분위기였답니다.


정미소에서 일하는 여공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일렬로 길게 늘어선 작업대에 앉아 일을 했습니다. 쌀알과 겉껍질이 벗겨지지 않은 뉘, 작은 돌멩이 등을 골라내는 일이었고요. 노동집약적인 정미업은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어서 여성들이 주로 했다고 합니다. 하루 11~13시간 일을 해야 하는데, 여공이 2,000여 명이나 되었고요. 출퇴근 시간이면 머리에 흰 수건을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도시락을 들고 공장으로 가는 여공들이 가득했다지요.


1924년 사이토합명회사 인천지점에 근무하는 여성들이 파업을 일으킵니다. 냉대와 능욕 속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감독을 교체하고 급여를 올려달라는 요구사항이 기사화되기도 했는데요. 기사에 따르면 7~8세 어린 아이부터 30~40에 가까운 여자까지 일을 하러 나왔는데, 하루 종일 일을 해도 하루 30~40전에 불과한 삯전을 받았다고 합니다.


16 삼화제분 여동들.jpg 삼화제분 여공들, 출처 인천광역시 ‘사진으로 보는 역사’
17 삼화제분 건물.jpg 삼화제분 건물

붉은 벽돌담 건물은 지금도 위풍당당합니다. 커다란 트럭이 쉬지 않고 드나들고 있어요. 직접 들어가서 그 돌담을 만져보고 싶었지만 입장은 불가능했습니다.


9.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수도국산의 원래 이름은 만수산 혹은 송림산이었습니다. 바닷가의 소나무 숲이 있는 작은 언덕이었고요. 개항 이후 증가한 인구와 선박으로 물을 확보해야 하는 상황에서 일제 통감부의 강압에 의해 1906년 인천과 노량진을 잇는 상수도 공사가 시작됩니다. 그때 이곳에 수돗물을 담아두는 배수지를 설치하면서 수도국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이 달동네에는 6·25전쟁으로 고향을 잃은 피난민들도 몰려들고요. 60~70년대에는 산업화와 함께 전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모여드는 사람들로 산꼭대기까지 작은 집들이 들어찹니다. 5만5천여 평 규모의 수도국산 비탈에 3천여 가구가 모여 살게 되었는데 이 박물관은 2000년대 후반 재개발로 사라지는 달동네를 보존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현재 박물관 앞에 거의 산처럼 높은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는데요.


박물관에서는 지나간 시간들을 다시 살아볼 수 있습니다. 주택가를 따라 걷다가 그 시절의 집을 들여다볼 수도 있고 들어가서 앉아 볼 수 있는 방도 있습니다. 추억의 물건을 파는 상점도 있고, 그 시절의 문구류, 가전제품, 옷장과 이부자리, 부엌도 재현되어 있습니다. 이마를 마주하고 밥을 먹는 마네킹들도요. 낡은 집의 벽에 차곡차곡 개어 놓은 이부자리 위, 나란한 베개에는 어김없이 번영과 장수의 의미를 새겨둔 글자들이 선명했습니다.


18 수도국산박물관 옥상 쉼터에 설치된 공공미술프로젝트.jpg 수도국산박물관 옥상 쉼터에 설치된 공공미술프로젝트



배다리에서 여러 소녀들을 만났습니다. 처음 생긴 학교의 첫 번째 학생이 된 소녀를, 푸른 눈의 선생님에게 세상을 배우는 소녀를, 성냥공장에서 일하는 소녀를, 머리고 얼굴이고 허옇게 실 먼지가 들러붙은 소녀를, 흰 수건을 쓰고 눈이 빠져라 쌀알 속 뉘를 골라내는 소녀를, 미림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는 소녀를, 떠나기 위해 고양이를 부탁하는 소녀를 만났습니다.


19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jpg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오늘 글의 맨 처음, 우각로의 푸른 벽에서 만난 소녀들은 아무래도 <고양이를 부탁해> 속 주인공들 같습니다. 두렵고 떨리지만 찬란해 보이니까요. 희망과 절망이, 확신과 불신이 뒤섞이는 시절이니까요. 영화 속 소녀들은 모두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소녀들의 작은 베개에 따스하고 환한 바람을 담은 글자들을 정성껏 수놓아주고 싶은 밤입니다.


우각로는 일견 자그마하게 보이는 장소들 속에 장대한 시간과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우각로도 좋고 배다리도 좋고 다양한 스토리텔링의 방식으로 오래오래 생생하게 보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곳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들을 상영하는 영화제는 어떨까요. 이곳을 모티프로 한 휴대폰 촬영 영화제 같은 것을 열면 어떨까요. 지나간 시간 속의 소녀들에게 편지를 써서 보내는 행사는 어떨까요. 소녀에서 엄마로 할머니로 살아가신 분들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는 것은 어떨까요. 일하는 여성의 삶을 이처럼 리얼하게 보여주는 곳도 없을 것 같습니다. 배다리 백일장 같은 걸 열어도 좋겠어요. 수상자에게는 배다리서점 상품권 같은 것을 만들어서 증정하면 더욱 뜻깊을 것 같습니다. (이미 진행된 아이디어도 있을 것 같네요.) 좋은 날에 좋은 분들과 꼭 다녀오시길 권해드립니다.


<참고자료>

<인천일보>, “성냥공장 ‘인촌’파업...인천 여성노동운동 불씨 지펴”, 2013. 12. 27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인쇄물

인천광역시, <인천의 건축문화유산>, (발행연도 미기재본)

<중도일보>, 인천시, “‘한국 최초 인천 최고 100선’...창영초등학교 가치 재창조”, 2017. 04. 05

<인천일보>, “여선교사 합숙소의사라진 ‘공간적 아우라’”, 2014. 07. 10

TBS 시민의 방송, “선교사의 안식처-인천 구 여선교사합숙소”, 2018. 02. 5

경인방송 90.7, “일본 탄압에 지워진 인천 구 여선교사합숙소...70년 만에 이름 되찾는다”, 2019. 02. 28

<경인일보> [인천 고택기행 46] 동일방직 의무실, 2016.12.01.

화도진문화원, 『노동자의 길』, 2021. 09. 24

인천광역시 공식블로그, “인천 3·1운동의 발상지, ‘인천창영초등학교’ 답사기”, 2020. 03. 03

경인일보, “‘지붕없는 박물관’...개교 100년 넘는 인천의 ‘장수 학교’들”, 2022.01.14.

조선일보, “간서치 이덕무의 죽음-책 팔아 잔뜩 밥해 먹고 자랑하고 나니 서글퍼졌소”, 2022. 03. 02

『작가들』, “작가들, 도시공간 속을 거닐다-시와 산문으로 보는 배다리”, 2007. 가을호



*이 글은 <학산문학>2022년 여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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