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피티에게 그와의 사진을 주고 20년 후의 모습으로 그려달라고 했어요. 사진을 받으니 숨이 멎더군요. 미래의 성적표를 받은 것 같았어요. 그에게도 보내주었습니다.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어묵 잔치국수와 군만두를 해 먹고 서둘러 설거지를 하고 저녁 산책을 청했어요. 평소엔 평일에 안 하던 일이지요. 동네 한 바퀴를 크게 돌아요. 대화의 주제는 우리의 20년 후 모습입니다. 놀란 가슴인 채로요. 느리고 무거운 걸음입니다.
정말 지피티 씨의 그림처럼 일까요. 그의 20년 후보다 그의 아버지의 지금 모습이 더 당당하고 탄탄하십니다. 유전자에 기댄다면 그의 20년 후는 훨씬 긍정적일 수도 있어요. 제 경우는 모르겠습니다. 돌아가신 엄마 얼굴로 상상해도 감이 안 와요. 하지만 언니는 지금도 숙녀 같고 소녀 같으니 저 역시 유전자에 기대어 볼 만하지 않을까요.
동네 카페에서 다크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서 걷습니다. 역시 평소에는 안 하던 짓이지요. 달콤하고 쌉쌀했습니다. 아파트 단지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마저 먹습니다. 초록이 짙어진 잎사귀들 위로 환한 가로등 위로 초여름 저녁 하늘이 언뜻 보입니다.
여러분은 지피티 씨에게 미래 사진 그려달라고 하지 마세요.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 심리학 연구 실험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납니다. 일군의 어르신들을 젊은 시절의 분위기로 세팅된 곳에 계시게 하니 몸도 마음도 그때처럼 젊어졌다고요. 혼자서는 해내지 못하던 일상의 일들을 거뜬히 해내시고요. 기분도 기운도 좋아지셨다고요. 보고 듣는 것이, 분위기가 그렇게나 큰 영향을 미친다는 거죠.
돌아와 지피티 씨에게 다시 묻습니다. 처음 제시한 사진을 주고 40년 전 모습을 그려달라고요. 그리고는 크게 웃게 됩니다. 그 모습, 제가 확실히 아는 40년 전과 전혀 다르네요. 그의 화풍, 좀 구리다고나 할까요.
올봄에는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서 커다란 꽃다발 속을 걷는 기분입니다. 10년, 20년 후 모습 같은 건 궁금해할 필요가 없어요. 언제나 지금 이 순간밖에 없으니까요. 도래할 미래는 미래의 것, 형상은 우리의 권한 밖이니까요. 가능한 오늘을 실컷 즐기자는 다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