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테까레의 시간

by 김박은경

주말 내내 글씨를 연습했습니다. 노트 한 권을 다 채웠더군요. 새삼 나의 악필을 실감하며, 글씨를 잘 쓴다는 것이 얼마나 정직하고 어려운 일인지 뼈저리게 느낍니다.


시집을 내며 출판사에서 ‘시인의 자필 엽서’를 제안하셨습니다. 시집 속 한 문장을 골라 적어 내려가는데,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앞섰습니다. 예쁘고 근사해 보이고 싶어 몇 안 되는 글자들을 붙잡고 한참을 씨름했습니다. 명필인 큰오빠에게 부탁하면 예술적인 결과물이 나오겠지만, ‘자필’이 아니기에 이내 마음을 접고 평소 좋아하던 글자체를 따라 연습해 봅니다.


쉽지 않습니다. 온전한 동그라미를 그리고, 세로획을 곧게 내리고, 쌍시옷을 곱게 매만지는 일. 겹받침의 보폭을 맞추는 일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습니다. 디테일에 집착할수록 선은 삐뚤어지고 글자마다 크기와 각도가 어긋납니다. 조금만 더 연습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엽서 구성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는데… 아쉬움이 남지만 마감을 어길 순 없어 눈을 질끈 감고 발송 버튼을 눌렀습니다. 부족한 글씨라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만테까레(Mantecatura)를 생각합니다. 파스타를 만들 때, 불을 끈 상태에서 면과 소스가 잘 어우러지도록 오일과 면수, 버터를 넣고 오랫동안 젓는 과정입니다. 제 글씨에는 그 시간이 부족했어요. 삶에서 만나는 굽이진 고비마다 이 만테까레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나친 열기는 덜어내고, 오직 공을 들여 정성을 쏟는 그 뭉근한 시간 말입니다.


이미 보내버린 자필 파일을 다시 열어봅니다. 삐뚤빼뚤 투박합니다. ‘그냥 원래 내 글씨체로 쓸 걸’ 하는 후회도 듭니다. 어쩔 수 없지요. 매끄러운 곡선 대신 한 자 한 획에 실린 떨림만큼은 선명합니다. 부디 그 떨림을 작가의 정성으로 너그럽게 읽어 주시길 바라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지금 식히고 저어주는 '만테까레'의 시간이 흐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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