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와 반전과 솔직의 맛

by 김박은경


"죽을 지경으로 입원을 했단 말이에요. 그래, 다들 봉투를 들고 문병을 오는데 내 동창 녀석은 글쎄 난초화분을 들고 오더라고요…"

(무슨 말씀을 하실까. 어서 퇴원을 해서 난초화분의 꽃을 피우라는 친구의 마음에 크게 감동받으셨을까? 식물의 생명력을 나누라는 말에 푸른 숨을 쉬게 되셨나?)

"내 이 녀석을 몇 년이나 안 보고 살았어요. 내 마누라가 간병한다고 힘들어하는데, 돈 얼마라도 줬으면 국밥이라도 사 먹지 않았겠어요? 난초화분이 뭐냔 말이죠."


객석에서 푸하하하, 폭소가 터졌다. 최고의 연설이었다. 이유라면 우선 반전의 맛이 있었다, 솔직했다, 유머러스했다. 선생님의 시와 글과 말씀들이 왜 전국민적으로 사랑을 받는지 알 것 같았다.


지난 주말, 문예지 송년회 자리였다. 평생을 들여 책을 만들어온 발행인에게 주는 축사의 일부였다. 백 호를 넘겨가는 자리, 정말 필요한 건 구체적인 도움이라는 것이다. 응원금이라도 주려한다는 말씀이셨다. 책을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돈도 많이 들고, 욕도 많이 먹고, 흑자는 거의 불가능한데 그 힘든 일을 왜 하냐는 말씀에는 사랑과 응원의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말도 글도 이렇게 하는 거구나. 선생님은 그런 스피치를 미리 구상하신 걸까. 평생의 삶이 즉석에서 빚어낸 걸까.

(그런데 문병에 화분은 정말 최악인가. 나도 꽃바구니를 들고 간 일이 있었는데, 두고두고 욕했을까.)


p.s. 나태주선생님의 축사를 기억에 의존해 옮겼습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루만져주는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