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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Dec 22. 2023

재미있는 삶


아침 전철에서 보는 사람들은 모자나 목도리,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 머리카락도 얼굴도 보이지 않으니 나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알 것 같다. 다리의 움직임, 허리의 각도 같은 것으로 짐작이 가능하다. 일부러 허리를 세우고 힘차게 걸어본다. 이 정도 추위쯤이야 끄떡없다는 듯.       

전철에 앉아 다들 졸거나 휴대폰을 보는데 안경을 벗고 책을 보는 사람이 있다. 무려 영어책이다. 어리지 않고 젊지도 않은 남자는 구부정하게 앉아 영어책을 펴고 작게 소리 내어 읽고 있다. 얼마나 재미있기에 내릴 역을 놓칠뻔하며 서둘러 내리는 그의 눈에는 빛나는 것이 스쳐갔다. 소년 같다.


날씨도, 시간도, 장소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재미’인가 보다. 재미가 있어서 열심히 하게 되는 것일까, 하다 보면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일까.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것을 감지하고 선택하는 것일까. 무엇을 하건 나만의 재미를 찾아내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뭘 할 때 제일 재미있지? 당신은 뭘 할 때 제일 재미있나. 먹고사는 일에서 재미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면 불행하다. 불행까지는 아니어도 행복하지는 않을 거다.      


오늘이 22일인지, 21일인지 몇 번이나 물었다.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의 반복. 오늘 춥네요, 너무 춥지요, 의미 없는 인사로 시작하는 아침. 하지만 하루 중 잠시라도 아니 조금이라도 흥미진진한 일, 나만의 재미있는 무언가를 갖고 있다면 행복해질 수 있다. 짧은 시간의 몰입된 감정이 하루를 힘차게 견인한다.  

  

“누군가가 꽃을 가져다주길 기다리는 대신, 여러분 자신의 정원을 가꾸고 여러분 자신의 영혼을 장식하세요.” 소설가 보르헤스가 말했다. 나의 꽃, 나의 정원, 나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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