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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은경 Dec 26. 2023

휠체어 팝니다. 십만 원


집 앞 사거리 교차로에 휠체어 한 대가 놓여있었다.

"휠체어 팝니다 십만 원"

빛나는 바퀴에  단단한 손잡이에 흠집 없는 새것이었다. 햇살 아래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 서둘러 지나다가 멈추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휠체어에서 일어나 걸어간 자가 있을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을까…


헤밍웨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친구들과의 자리. 여섯 단어로 냅킨에 쓴 소설. 세상에서 제일 짧은 그것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누가 그것을 파는 걸까. 아기를 기다리는 사람, 아기 신발이 넘치도록 많은 사람, 아기 신발 사이즈를 몰랐던 사람…


산책로에 버려진 아이보리색 운동화 한 켤레도 기억났다. 마침 나의 것과 같은 브랜드였다. 누가 이른 아침에 맨발로 사라진 걸까. 그때는 여름이었는데…


무심한 보행자들 곁으로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흔한 기적이, 어마한 기적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도 같다. 크고 작은 일이 있었지만 이렇게 한 해가 간다. 무사하여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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