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_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

by 서다비

지금의 회사를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었다. 아니 정정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못 내는 사람이었다.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져도 ‘뭐야 왜 저러는 거야?’ 하고 무던하게 넘어가기 일쑤였는데 그게 진짜 아무 영향이 없던 게 아니었다. 속으로 쌓여가고 있던 거였다. 내 감정과 생각을 예민하게 알지 못해 속에서 곪아가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결국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을 때가 되어서야 알아차리고 폭발했다.


그런 식의 분출이 이성적일 리가 없었다. 그때의 나는 극단적으로 바뀌었고 눈물을 왕창 쏟아내면서 크게 화를 냈다. 하지만 이런 비이성적인 행동과 말이 좋은 결과가 나올 리 만무했다. 그래도 주변의 좋은 사람들 덕에 내 감정과 감정을 예민하게 알아차리는 법을 배웠고 점차 깨닫는 간격이 짧아졌다.


이것을 알게 된 이후엔 제때 화를 낼 수 있게 되었는데, 문제는 그 분노가 너무 강하게 느껴져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간혹 있었다.


‘왜 그렇게 일 처리를 답답하게 하는 거지? 일부러 그러는 거야 뭐야?’


내 또래나 나보다 어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이런 주제에 대해 말을 하면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들불처럼 꺼질 줄 모르고 계속 이어졌다. 때로는 상대방에게서 내가 예상한 것 이상의 감정이 나와 당황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내 ‘역시 다들 비슷하군.’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오래 일하면서 그들은 나보다 더 한 일이 있음에도 분노는커녕 한숨 한 번 쉬고 넘어가는 걸 많이 보았다.


한 번은 실장이 너무 전화를 받지 않아 화가 난 적이 있었다.


“왜 그러는 거예요. 도대체?”


“그 정도면 양반이죠. 하루에 실장님 전화 5번 이상 했는데도 안 받은 적 있었어요. 회신도 안 하는 건 기본이고요.”


“그런 일이 진짜 있었어요? 아니, 그런 일이 있었다는 건 처음 듣는데. 화도 안 나요?”


놀라 물으니 경리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이미 그런 일들을 하도 많이 겪어서 이젠 해탈한 거죠, 뭐. 화 내봤자 나아지는 게 없으니 포기했다고 해야 할까?”


또래들이 늘 말하는 해탈이 아닌 진짜 득도한 게 보였다. (또래들은 막상 분노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오면 다시 화내는 데 반면 이분들은 화를 내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런 나이가 많은 분들을 닮아 조금은 분노를 누그러뜨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점도 명확하게 있었는데, 좋은 방법을 제시해도 잘 변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회사에서 같은 서류를 반복해서 요청할 때가 있었다. 두 번째까지는 별말 없이 자료를 전달했다. ‘설마 또 그러겠어?’ 싶었는데 세 번째로 요청하는 말을 듣자 순간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해졌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으려 얕게 숨을 푹 내쉬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에 드린 자료 그대로 사용하시면 되는데요?"


하지만 "그냥 줘."라는 답변이 오자 화가 났다. '왜 시간 낭비를 시키는 걸까?'


불평만 한다고 상황이 해결될 리 만무했다. 이런 일을 타개할 방법을 바로 모색했는데 다행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회사에선 모두가 확인할 수 있는 공유 폴더가 있는데, 그곳에 ‘서류 모음’이라는 폴더를 만들고 내가 가지고 있는 파일들을 그곳에 전부 업로드했다.


"공유 폴더에 제가 가진 서류들 다 올려놨으니 필요하시면 이곳에서 다운로드하시면 돼요. 대리님도 가지고 계신 자료 중에 여기 없는 것들 업로드해 주세요."


다른 직원들에게도 이 소식을 알렸고 덕분에 이와 비슷한 요청을 받지 않았다.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00이랑 00자료 나한테 전달해줘.”


“공유 폴더에서 다운로드하시면 돼요.”


“그냥 나한테 바로 줘.”


“……네.”


그래도 내가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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