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자의로 시작한 부업
회사에서의 일이 많이 줄었을 때 일어난 일이다.
일에 여유가 생기니 시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생겼다. 누군가는 이러한 상황에 “프리덤!”이라고 환호할 수 있겠지만, 일을 통해 성취감을 얻는 나에게 있어선 이 여유 있음에 오히려 공허함이 더 커져갔다. 내가 사회 구성으로서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달까.
그래서 일하느라 바빠 잠깐 멈췄던 블로그도 다시 하고 모임도 다양하게 참여했으나 이러한 감정을 완전히 떨칠 수 없었다. 무엇을 해도 무기력한 감정을 느끼는, 아무것도 재미없는 소위 인생 노잼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러던 중 10년 전 연락이 끊겼던 친구 C의 소식을 알게 되었다. C는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던 상황이었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다가 제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홍보하던 걸 우연히 발견했는데, 아는 체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바로 메시지를 남기고 싶었지만 그간의 공백이 너무 길어 망설임이 컸던 것이었다.
하지만 인연을 다시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컸고, 결국 간단하게 글을 남겼다. 다행히 답변은 호의적이었다. 이 이후 SNS을 통해 C의 소식을 간간이 접하게 되었고 사업이 잘 되어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식까지 알게 되었다. 그런데 마침 오픈 당일 그 주변을 지나갈 일정이 생겼다.
‘직접 찾아가 보고 싶은데 괜찮으려나? 가려면 먼저 연락을 해야 할 텐데 어쩌지? 갈까? 말까?’
사실 당일까지도 고민을 했던 터라 미리 얘길 하지 못했다. 그러나 친구는 예상치 못한 나의 방문에도 정말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그날 연락을 못했던 기간인 10년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현재 내 직업으로도 연관이 있어 얘기할 거리가 더 풍성해 어색함 없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게다가 학생 때 엄청 친했던 터라 직장에서 만난 인연보다 심적으로도 편했다. 이후 공백의 간극을 메우고 싶어 자주 찾아가기도 하고, 함께 친했던 D도 포함하여 꾸준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C는 직원 없이 일했던 터라 꽤 많은 업무를 혼자서 감당하고 있었다. 제품 기획부터 시작하여 디자인, 수정, 관리 등 제작에 관한 전반적인 일을 비롯해서, 회계, 마케팅, 매장 관리, 고객 응대 등 모든 걸 도맡아서 했다. 사실상 사원, 주임, 대리, 과장, 팀장, 사장 대표 등등의 일을 혼자서 다 하고 있었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관리해 본 내 입장에선 부족한 부분이 보였지만 시간이 없어 못하는 게 보여 필요성이 있는 부분만 간간이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니 대견하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오래전 부모님이 사업을 하는 걸 지켜보고, 여러 회사를 다녀봐서 한 사업을 운영한다는 게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래서 1인 기업 사장이라는 건 그보다 더 큰 시간과 노동이 필요한지 짐작하기도 힘들었다.
그 노고를 이해하기에 C의 매장에 갈 때마다 가능한 도움을 주었다. 마침 연휴가 긴 기간이 있어 포장이라도 도와주려 미리 약속 잡고 방문했다.
“와 진짜 사람 많다.”
황금연휴라 그런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꽤 있어 고객 응대 및 판매 등으로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이윽고 잠시 소강상태가 왔을 때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C가 흥미로운 말을 했다.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 결국 앱을 통해서 알바를 구했는데 뭔가 많이 찜찜하다고 했다.
“왜? 무슨 일인데?”
“일감을 받아 간지 며칠 지나서 메시지를 한 번 남겼는데 답장이 없어.”
친구의 말에 의하면 알바가 해야 하는 일은 간단한 업무여서 오래 걸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제품을 받아 간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는데도 별다른 연락이 없다고 했다.
“왜지? 물건이 뭔데? 알바 수당이 적나? 바로 연락해봐!”
궁금증이 일어 좀 더 캐물었다. 수당은 너무 좋아서 지원한 사람이 많았다고 했고, 알바가 해야 하는 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니 정말 간단했다.
“그렇지? 어렵지 않지? 그래도 혹시 몰라서 기한을 넉넉하게 잡았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까 좀 답답하네.”
“그러니까. 다른 것들은 다 괜찮은데, 물건이 상대방한테 있어서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불안하다.”
그렇지 않아도 생면부지 타인에게 매장을 맡길 수 없어 몇 주간 쉬는 날 없이 혼자 직접 매장 운영을 했던 친구였다. 그런데 처음으로 쓴 알바부터 문제가 생기다니……. 안타까웠다. 아무튼 C는 연휴 이후에 알바에게 한 번 더 연락을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렇게 알바를 구할 정도면 이미 혼자 운영하는 거 한계에 다다른 거 아니야?”
“아무……래도 그렇지?”
“그러면 차라리 날 시켜! 수당도 너무 많다. 1/4로 줄이고. 그 알바보다 훨씬 빠르게 할 수 있고 연락도 바로바로 잘 되고. 이 정도면 남도다 내가 훨씬 낫지 않겠어?”
“오 진짜? 안 그래도 일거리가 더 있어서……. 그래주면 좋지.”
C는 바로 일감과 그걸 작업할 수 있는 도구들을 챙겨주었다. 이후 수당까지 정하고 꼼꼼하게 계약서까지 챙기는 모습에 사장다운 면모가 보여 멋있다고 생각했다. 저녁시간이 되어 고객이 뜸해지자 C와 함께 매장에서 식사를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걱정이 생각났는지 C가 물었다.
"일 도와줘서 고맙긴 한데 넌 본업이 있잖아. 병행할 수 있겠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 딱 좋아. 내가 회사에서 하는 일 대부분이 앉아서 머리 쓰는 거잖아. 그래서 가끔 별생각 없이 몸 움직이는 일을 하면 기분전환이 돼."
"진짜? 그러면 더 부탁해도 괜찮나?"
"왜? 무슨 일인데?"
"너한테 부탁한 일 이외에 더 해야 할 게 있어서. 지금 시간이 없어서 못하는 것들이 있는데 이렇게 주말에 가끔씩 와서 도와주면 좋을 것 같은데."
"오 완전 좋은데?"
방문 일정을 2주당 1일로 정하고 시급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눈 후 일감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실 부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체력이 좋지 못한 편이라 정기적인 알바를 해볼 생각 자체가 없었는데 주변에서 일거리 요청이 종종 있었다. 한참 유튜브와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됐을 때 관련 일을 배운 터라, 그쪽과 관련된 지인들의 의뢰가 간간이 있었다. 하지만 온라인 업무는 들이는 시간 대비 수당이 적었고, 의뢰자와의 물리적으로 거리도 먼 탓에 소통의 어려움이 있어 흐지부지된 적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의뢰자들이 나와 비슷한 성향이어서 서로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탓도 있었지만. 아무튼 그런 이유로 근무 시간과 수당이 명확한 오프라인 부업이 심리적으로 편했다.
매장까지의 거리는 멀었지만, 방문하는 횟수가 적어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소통이 편리한 C와 함께 근무하는 덕에 불편한 상황은 없을 듯싶었다. 이전까지도 매장에 여러 번 방문해서 머물러봤으니 예상치 못한 사건들이 잘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판단도 섰다.
아무튼 그건 앞으로의 일이고 당장은 주어진 일을 처리해야 하므로 바로 다음날부터 친구가 준 일에 착수했다. 앱으로 구한 알바와 비교하여 좋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겠다 판단해, 다음날 낮부터 일을 한 후 저녁에 C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되어 작업을 완료하여 C의 신뢰를 얻었다.
알바는 연휴 이후의 연락에서 마감 날짜를 잘 못 알았다고, 다음날 가져다준다고 했으나 또다시 답장이 없었다. 게다가 전화까지 받지 않아 C가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더니 그제야 부랴부랴 완성된 일감을 가지고 왔다. C는 이 소동으로 완전한 타인을 알바로 쓰는 것에 완전히 마음을 닫았다.
그 이후 매장에서 친구를 도와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그중 작은 기계로 물건을 다듬는 샌딩 작업도 했는데 C가 하는 것보다 속도가 떨어져서 걱정했더니 우문현답이 돌아왔다.
"나도 처음엔 너랑 비슷했는걸. 걱정하지 마. 초보자는 당연히 숙련도가 낮으니까 속도가 나지 않을 수밖에 없는 거고, 나야 지금까지 샌딩 한 게 몇 백 개가 넘었을 텐데 당연히 너랑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그리고 내가 작업할 시간이 부족해서 너한테 맡기는 거잖아. 그 정도는 감안하고 있지."
"크으으 역시 젊은 사장님은 다르구만!"
나는 C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래도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도움을 주고 싶어 배운 지식들을 공유해 주었다. 예를 들어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공장 일 속도 테스트를 시킨 적이 있었는데, 여기서도 일반인이 얼마나 작업할 수 있는지 일하는 속도 체크하는 방법 같은 걸 얘기했다. 그리고 매일 매장을 신경 쓰느라 피곤한 C를 위해 먹을 것 등도 자주 사 갔다.
그 즈음 회사 일도 바빠지고 개인적인 일까지 겹쳐 정신이 많이 없었다. 그래도 좋은 친구인 C와 일 때문이라도 자주 만나다 보니 반대로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크게 두 번 정도 아프긴 했지만 연차를 다 소진해야 하는 연말이어서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C의 매장에선 구매 고객이 많이 줄어들어 운영이 어려워졌다. 결국 근무 날짜를 월 1회로 변경했다가 당분간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출근 전날 말하게 되어 미안해하는 C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네가 살아남는 게 더 중요하지. 나는 내 본업이 있으니까 걱정 말고 너의 본업을 챙기도록 해!"
일이 많아 사람을 채용하고, 채용한 인원의 급여를 감당하기 위해 사장과 직원 모두 힘든 시기를 겪는 것을 이미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몸소 체득했기에, 친구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했다. 오래오래 살아남아 사업을 번창하여 나를 채용하라는 농담도 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체력의 한계를 조금씩 느끼고 있었고, 새로운 관심사가 생겨 사는 게 조금은 덜 지루하던 참이었다. 그렇게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타이밍이 찾아왔다.
다행히 시간이 흘러 C의 상황이 조금씩 좋아졌고 나도 조금씩 몸이 회복되었다. 그 즈음 C는 플리마켓 준비를 했다. C의 제품은 가정의 달에 어울리는 물건이었고, 작년 가정의 달에 플리마켓에 참여했을 때 판매가 많이 되어 올해도 참여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플리마켓 하면 도와줄 수 있어?"
"물론이지!"
친구의 물음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대답했다. 그다음 플리마켓 장소를 물색했는데 작년에 참여했던 장소의 공고가 나오지 않아, 결국엔 다른 지역을 선택하기로 했다. 짐 옮기기 어렵지 않도록 매장과 가까운 장소에 유동인구도 많고, 원하는 날짜에가 포함된 곳으로 골라 참여 신청을 했다. 친구 D도 함께 플리마켓을 돕기로 결정했다.
이 이후 전반적인 준비는 C 혼자 다 했으나 가격, 이벤트, 홍보 문구 등 플리마켓의 가판대를 꾸밀 홍보물들은 내가 다 만들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친구가 만들어달라고 요청해서 만든 것이 아니었다. 플리마켓 공고가 나온 직후 이런 걸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여태까지 도움을 주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탓일까. 내가 활약할 수 있는 기회가 오자 이런저런 아이디어들이 떠올랐다. 물론 이전 회사에서 오프라인 매장용 다양한 홍보물을 만들었던 게 몸에 배어 있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구상했던 것들을 실제 이미지로 만들어서 C와 D에게 보여주자 둘 다 너무 좋아해서 뿌듯했다.
‘그래! 이게 바로 내 영역이지!’
친구들의 칭찬으로 혼자 신이 나서 이것저것 기획하고 만들어냈다. 뭐랄까. C가 걱정되고, 위태로워 보여 나서고 싶었지만 상대방이 싫어할까 봐 나서지 않았는데, 이게 계기가 되어 폭발한 듯싶다.
“사장님? 바쁘신 줄 알지만 이것도 해야 할 것 같습니다만?”
일거리가 너무 많아 정신없는 C에게도 이것저것 하라고 얘기해서 ‘채찍피티’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스스로 불러일으킨 업무에 몸은 바빴지만, 이전보다 더 능동적 인간이 된 것 같아 뿌듯했다. D 또한 C의 업무 중에서 집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등 여러모로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 플리마켓 당일이 되었다.
행사 당일 모두 매장에 일찍 모이기로 했다. 차가 없었던 터라, 판매할 제품 및 전시 물품들을 교통수단을 이용하여 매장에서 행사장까지 직접 가지고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C는 행사장에서 물품 배치 후 매장을 오픈하러 가야 했기에 모이는 시간을 조금 일찍 잡았다.
나는 C가 전날까지 매장에서 근무하고 플리마켓 준비를 하느라 짐 정리를 다 하지 못했을 거라 생각해, 예정 시간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
“자 여기. 넉넉하게 출력했으니까 필요한 만큼 써.”
내가 만들고, 출력하고, 코팅까지 한 홍보물들을 C에게 주며 말했다. C는 고맙다고 하며 필요한 것들을 챙겼다. 이후 둘이서 함께 가져갈 짐들을 정리했는데 예상보다 빨리해서 D가 도착하기도 전에 끝나버렸다.
“이대로 기다리기엔 시간 아까운데. 차라리 우린 지금 출발하고 D한테 행사장으로 오라고 할까?”
“그게 좋겠다.”
C의 제안에 동의를 하고 D에게 연락을 했는데 거의 다 왔다고 답변이 왔다. 곧 D가 도착했고 이후 함께 플리마켓 장소로 출발했다.
이후 행사장에 도착해 물품들을 정리하고 D와 함께 판매를 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느꼈다. 나는 절대 판매직과 맞지 않다는 것을.
‘내 본업이나 열심히 하자.’
잘 하고 싶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자존감이 떨어져 우울해졌지만 애써 이렇게 생각했다.
플리마켓은 우천으로 인해 일정의 절반만 진행하고 끝나버렸다. C와 함께 짐을 챙기고 돌아오는 길에 이와 관련하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나는 며칠 전부터 플리마켓 매출 대한 걱정으로 잠을 설칠 정도로 불안해했었다.
“네가 이걸 위해서 시간이나 비용을 얼마나 많이 투자했을지 감도 잡히지 않으니까 더 걱정이 되더라고. 그래서 그 불안을 떨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했었는데……. 정말 아쉽다.”
“아유 잘 안되어도, 살아 돌아와서 내년에도 팔 테니 괜찮아. 작년에도 재고 남은 게 있었는데 결국엔 다 팔았거든. 걱정 말아.”
이 이후 C는 사업 확장 등으로 바빴고 나는 도와줄 수 있을 때를 대비해 평온한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활동량이 많지도 못하면서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 때문에 이것저것 하고 있지만 말이다.
1년이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C가 노력했던 것을 지켜봤지만 역시 사업이란 건, 그중에서도 사장이란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친구도 얼떨결에 사장이 되고 오프라인 매장을 열게 됐지, 한 사업을 꾸려나가기 위해 A부터 Z까지의 일을 도맡아서 해야 하는 걸 알았다면 시작할 엄두를 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이 사업하는 것을 오랜 기간 보고, 가끔 도우면서 창업은 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행동들을 봤을 때 ‘역시나 나는 못하겠구나.’라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능동형 인간의 끝판왕이 아닐까 싶다. 제품 제작부터 시작해서 홍보, 판매, 영업 등등 모든 것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직접 움직여야 하니까. 물론 도와줄 프로그램이나 인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지불할 비용을 마련하고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려야 하니 말이다. 직장인처럼 수익이 일정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 아이디어도 끊임없이 쏟아내야 하는 등 사업이 끝날 때까지 쉴 틈이 없으니. 할 수 있는 분야과 그렇지 못한 분야가 확실한 나에겐 창업은 하기 너무 어려운 영역이 아닌가 싶다.
그래도 능동적으로 사업을 하는 친구 옆에 있다 보니 다양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작게는 어디서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는지에서부터, 크게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사업을 바라보는 사장의 시야라던가 비수기를 견뎌내는 비결 등을 말이다. 평생 직장생활만 한 나로서는 짐작할 수조차 없는 것들을 간접적으로나마 배웠다.
그 외에도 C와 함께하면서 ‘내 사고(思考)가 많이 바뀌긴 했구나.’ ‘내가 멋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잘 습득했구나.’라고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챕터2에서 나의 능동적인 모습이 간간이 있었지만, 상황에 떠밀려 선택을 한 것도 있기에 내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일화에선 필요한 순간에, 꾸준하게 내가 능동적으로 나선 거라 스스로 뿌듯해서 지인들에게 열심히 이야기했다. 물론 친구니까 이러한 말들을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쨌건 나 자신이 이렇게 되었다고 자신감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나 다 가능한 것이 아닌, 바뀌려는 마음가짐과 행동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만. 그 작은 씨앗 하나라도 간직하고 있다면 결국에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작은 물방울들이 바위를 뚫듯이, 처음엔 미미하고 변화가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뀐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