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와 직접 만나기 전 그가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었다. C와 여러 번 만나고 연락도 자주 주고받았지만,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없었던지라 ‘이제는 괜찮은 건가?’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며칠 전에 몸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우울증 약을 타러 병원에 갔는데…”
아직 병원을 계속 다니고 있다는 C의 말에 놀라며, 궁금했으나 차마 먼저 묻지 못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C는 간략하게 자신의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대학 졸업 직후 공기업 취업 준비를 했는데 오랜 기간 준비를 하다 보니 우울함이 점점 커졌다. 하지만 이것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한 탓에 계속 심해졌고,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어서야 알아차리고 병원에 갔다. 그러나 취준생 신분이다 보니 비용이 부담되어 깊은 상담보단 약 위주의 치료를 하고 있고, 올해로 4년째가 되었다고 했다.
“공기업 인턴도 여러 번 하고, 병원도 계속 다녔지만 우울증이 나아진 않더라고. 물론 상담 등을 통해서 근본적인 이유를 제대로 파악해야 하는데 금액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계속 나를 자책하기만 했지…”
“그래? 나도 우울증이 심할 때가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나 자신이나 타인, 상황을 탓하기보단 ‘다음에 잘하지 뭐!’ ‘어떻게든 해보자.’ 하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아.”
“오. 너는 회복탄력성이 있는 편이구나?”
“회복탄력성이 뭔데?”
나는 처음 듣는 단어라 C에게 물어보았다. 본인처럼 좋지 않은 생각들로 매몰되지 않고, 내가 말한 것처럼 긍정적인 힘으로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내는 게 회복탄력성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회복탄력성이 없는 편이라 우울증이 잘 나아지기 않았는데, 내 사업을 시작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어.”
스스로가 하고 싶은 걸 계속하고 있는 데다가, 계속 바쁘다 보니 우울한 것도 잊고 있었다고 C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무리해서 일하다가 몸이 많이 힘들어지다 보니 증세가 심해진 것 같다고 추가로 설명했다. 친구와의 대화는 이렇게 마무리 됐으나 나는 이 내용에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의 성향에 대해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나는 긍정적이자 낙관적이며 부정적인 생각 자체를 못 견뎌하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긍정적인 거랑 낙천적인 거랑 비슷한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 둘은 다른 단어이다. 낙천적이란 단어는 우리가 아는 말 그대로의 뜻으로 상황을 좋게 여긴다는 말이지만, 긍정적이란 단어는 좋은 식으로 생각하는 게 아닌, 있는 사실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아무튼 나는 사람이나 상황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으로 파악하려고 하며, 그걸 나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석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나에게 좋지 않은 일이 닥쳤을 때 나는 이 상황에 대해 ‘오. 어떤 좋은 일이 일어나려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라는 낙천적인 생각이 저절로 든다. 반대로 좋은 일이 일어나면 ‘여태껏 나한테 일어났던 좋지 않은 이렇게 일들이 보상을 받는구나! 아주 좋군!’하고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이렇듯 나쁜 생각들이나 나쁜 말들은 내 속에 들어오지 않고 팅 하고 튕겨 나가버린다.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냐?’ 싶겠지만 처음부터 이렇진 않았다. 본래 성향도 있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방법을 스스로 강화하고 단련한 덕분에 이렇게 단단해질 수 있었다.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이러한 제동장치가 있기에 일정 이하로 기분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듯싶다. 그리고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일 때 바로 회복하려는 성질이 있어 조금이라도 극복하려고 애쓴다. 이전 회사를 다닐 때 영화를 자주 보는 행위도 이것에 속했고, 그 외에 규칙적인 일상생활 유지라던가 걷기, 청소, 수면 등을 통해 내 기분을 회복시키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이런 회복탄력성이 조금 더 단단해짐을 느낀다. 어떻게 하면 내가 행복할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행동까지 하게 되었다.
이전에는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나의 시간을 영화나 잠 등에게 맡겼다면, 지금은 이걸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들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사용한다. 도망치는 것에서 해결하는 것으로, 개인의 방식에서 단체적인 방식으로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좋게 해석하는 나의 성향이 시너지를 낸 덕에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차근차근 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하루사용설명서](김홍신)에 이런 글귀가 있다. ‘몸이 넘어지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마음이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것은 걸핏하면 넘어지고 자빠지고 주저앉는 변덕스러운 특질이 있다. 때문에 잘 달래서 일어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나는 이전엔 감정의 둔화로서 방어막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내 장점들을 강점으로 이끌어 회복탄력성이 더 강해지고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내부나 외부의 일로 마음이 넘어졌을 때 스스로를 다시 일으킬 버팀목들을 많이 만들어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