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
사랑하는 둘째에게
내가 너와 지내면서 너를 다르게 보고 있다는 것에 놀라고 있단다. 특히 요즘은 더 놀라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널 이쁘다고 했을 때 시큰둥하게 반응하고 그냥 평범한 얼굴인데 인사치레로 해 주는 말에 놀라지 말자고 하면서 늘 너의 미모칭찬을 대충 흘려 넘었었지.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너를 볼 때마다 귀엽고 보면 볼수록 호감 가는 너를 보면서 사람들이 왜 이쁘다고 말하는지 알겠더라. 또, 늘 이뻐 보여서 그저 웃어줄 때가 많아지고 있지.
어느 날인가 아빠가 많이 감동받은 날이 있단다.
우리가 협소한 구조이지만 방을 잘 바꾸면 될 것 같아서 각자 방을 전격적으로 바꾼 날이었단다. 아빠가 혼자 의욕적으로 가구들을 옮기고 있는데 네가 들어오더라.
학교 다녀왔다는 얘기와 함께 눈앞에 앉아서
"아빠. 근데.. 있잖아요.."라고 하길래
다른 때 같으면
"아빠. 바빠. 나중에 들어줄게." 했는데 그날따라
"응.. 뭔데?"라고 땀을 흘리면서도 귀를 열고 듣기 시작했더니 네가 학교에서 친구와의 고민을 줄줄이 얘기하더라. 그 얘기를 듣고 있는데 그 상황 속에서 마음 아팠을 네가 생각나면서 마음이 아프더라. 마음이 짠해지면서 묵직한 가구를 옮기면서도 계속 들어주고 있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단다. 예전 같으면
"그런 일 있으면 ~~ 그래야지!! 그러면 되냐?"라면서 아빠 생각대로 말참견하고 해법이라고 가르치려 들었을 텐데. 네가 너무 마음 아팠을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듣기만 했었단다. 말을 다 듣고 나니까 약속시간이 되어 밖에 나간다고 하면서 서두르길래 더 이상 들어줄 수도 도와줄 수도 없었지. 그런데, 너의 말을 듣고는 상당히 당황했단다.
"아빠. 고마워요. 제 고민을 들어줘서요."
"엉?"
"아닌데. 내가 고마운데.. 나에게 너의 고민을 말해줘서."
"고마워요. 아빠."
다시 한번 고맙다고 말하면서 가구를 옮기느라 땀이 흠뻑 젖은 아빠에게 다가오길래 땀에 젖었으니 곁에 오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너는 그러지 않더라고. 그러더니 내게 볼뽀뽀를 해주고는 안아주고 나가는 거야.
"으응.. 고맙다. 잘 다녀와"
라고 말해주고 옮기던 가구를 마저 옮기고 헉헉거리는데 마음은 감사가 넘쳤단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고 들어주는 아빠였다는 것을 알았단다. 이제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 해주는 말을 들어주는 아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아는 계기였단다.
고맙다.
아빠에게 그런 기회를 줘서.
사랑해.
아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으로
아빠를 사랑해 줘서.
딸이 내게 준 것은 진정한 사랑입니다.
진짜로 행복해하고 감사해하는 것이 진짜 사랑이었습니다. 사춘기라고 건드리면 큰일 난다고 조심하려고만 했었는데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아빠 의견을 넣지 않고 오직 듣기만 했더니 오히려 진짜 사랑을 받았습니다.
여전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아직도 아이들은 저의 눈치를 봅니다. 아빠가 기분 좋으면 뭐든지 좋지만 아빠가 피곤하거니 기분이 좋지 않으면 여차하면 벼락이 칠 것 같아서 엄마에게 아빠 기분을 점검한다고 합니다. 그랬던 아이들이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발전입니다.
저와 비슷한 성격이라서 걱정했던 딸입니다.
뭐든지 호기심 가지고 늘 하고 싶어 하는 딸을 보며 저와 같은 스타일이라고 은근히 걱정하는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저와 비슷한 것은 많이 사라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딸의 말을 들어줬을 뿐인데 볼뽀뽀도 받으면서 사랑을 나눠 받았습니다. 이런 날이 있네요. 더 열심히 쓰면서 더 좋은 날을 만드는 아빠 되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하지만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편지를 쓸 수 있어서 감사하기도 합니다.
이런 일상을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늘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가능한 일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unsplash의 seijan salimo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