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빨
사랑하는 막내에게
오늘은 너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편지를 쓴단다.
늘 할 말이 많은 아빠가 오늘도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하니까 긴장하면서
'또 혼나는가?'싶은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은 그런 말이 아니고 '사과'란다.
너랑 지내면서 늘 너의 마음을 알아주는 게 쉽지가 않아. 아빠의 마음 센서가 아직은 무딘 가봐.
초4인 네가 오랜만에 이가 흔들린다면서 내게 온 날이 있었지!!
"아빠! 이가 흔들려요."
"으응. 아직 많이 안 흔들리는데 빨리 빼고 싶으면 병원에 지금 가고, 아니면 많이 흔들어! 아빠가 빼줄게"
그렇게 말하고 아빠는 하던 일을 다시 하니까 너는 엄마에게 가더라. 엄마는 너의 이를 살펴봐주면서 천천히 흔들어보자라고 격려하는 걸 보면서 아빠와 참 달라서 다행이기도 했어. 그리고 다음날 너는 학교에 갔고 아빠는 출근하면서 막내 이가 심하게 흔들리면 치과에 가서 얼른 뽑아주자고 엄마와 대화를 했었지. 예상대로 학교에서 이를 수시로 흔들었는지 당장 뽑을 정도가 되었다고 해서 너의 수업이 끝나는 대로 치과가라고 했는데 잠시 후 가족톡방에 "이를 뽑았어요."라고 사진이 올라오길래 "수고했어!"라고 답만 했어. 아빠 일은 집중해서 해야 할 때가 많아서 그걸로 끝이었어. 칭찬과 격려나 추가 글을 올려주지 못하고 퇴근했지.
퇴근길이라서 기분 좋게 가고 있는데 문득 전화가 하고 싶어서 했더니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거야. 아빠는 엄마를 우선시하다 보니 엄마가 아프면 모든 것을 엄마 상황에 집중하는 편이라서 마음이 급해졌단다. 어떤 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엄마에게만 집중했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너네는 알아서 너희 할 일해라!"라고 말하고는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방에 누워있는 엄마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지. 그러고 있는데 네가 아빠한테 오더라.
"이 뽑았어요." 라면서 빠진 이를 담은 통을 자랑하는데 "으응..."이라며 무심하게 대답해 주고 다시 엄마를 챙기기 바빴지. 그 와중에 열이 많이 나서 누워있는 엄마가 안쓰러웠는지 "막내가 이를 뽑았는데 잘 참았어요. 격려해 주세요."라고 수시로 말하는데도 "나중에요." 라며 엄마의 컨디션을 확인하고 갈 수 있는 병원 찾기만 하고 있었지.
"열이 나고 떨면서 아픈 당신이 우선이에요."라고 엄마에게 말하고
"엄마가 아프니까 조금 있다가 말하자! 밥 챙겨 먹고 있어!"라고 너에게 말했지.
진지하고 극도로 차분한 어조로 너에게 지금 상황에 대해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게 대응해 주도록 어쩌면 강요한지도 모르겠어. 아빠가 극도로 차분하게 말하니까 상황이 차가워서인지 이내 얌전히 각방에 들어가서 있더라. 모든 상황이 진정이 되고 엄마가 병원에서 검진결과가 심각하지 않다는 것을 듣고 나서야 드는 생각이 있었어.
'막내가 서운했겠다. 이를 잘 뽑고 온 것에 대해 칭찬받고 싶었는데...'라고 생각난 것이야. 너는 얼마나 기다렸을까? 언니, 오빠처럼 집에서 장난하듯이 이를 뽑고 자랑하며 격려하고 칭찬해 주면 온 가족잔치처럼 이 뽑기 놀이하는 것을 원했을 텐데 말이야. 아빠에게 "이가 흔들려요!"라고 말하고 "저도 뽑아주세요!"라고 한 것일 텐데 말이야. 너무 흔들거려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치과 가서 뽑고 나서는 뽑은 순간을 잘 견딘 것을 칭찬해 달라고 뽑은 이를 담은 통을 들고 달려왔는데 아빠는 갑자기 아픈 엄마를 챙기느라 너를 밀어냈었구나.. 참 아빠 못났다. 그렇지?
종종 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데 이번에는 정말 미안하더라. 엄마가 열이 많이 나서 아프고 덜덜 떨고 있어서 큰일 난 줄 알고 챙기다 보니 막내인 너를 무심하게 밀어냈어. 상황을 해결하고 나니까 '울지 않고 이를 뺀 대견한 막내'가 눈에 보이는 것이야..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단다. 얼마나 아빠가 한심했는지 몰라. 병원 가는 길에도 엄마가 계속 말하더라. "이그! 남편. 막내를 칭찬해 줘야지요. 저리 가라 하면 어떡해요. 아프지만 내가 더 미안하고 민망했어요."
그 말에 아빠는 고개를 숙이고 미안함을 느껴서 너무너무 미안하더라. 나중에 집에 와서 "아빠가 아까 미안해! 이 잘 뽑았네. 기특해!"라고 뒤늦게 말해줬는데도 "고마워요. 아빠!"라고 말하는 너를 보면서 아빠는 점점 작아지는 것을 느꼈어. 부족하게 대해줬는데도 아름답게 받아주는 네가 너무 이쁘더라. 고마워.
미안해.
언니, 오빠처럼 집에서 장난치며 이 뽑아달라는 것을 못해줘서 미안!!
치과 가서 이를 잘 뽑고 와서 칭찬해 달라고 온 너를 무심히 밀어내서 미안!!
자꾸 너의 작은 마음을 이해 못 해주는 아빠라서 미안!!
큰사람인데 행복을 모르는 아빠에게 작은 네가 작은 행복을 매일 건네주려고
다가오는데 무심하게 밀어내서 미안!!
미안해.
더 노력하겠다고 하는데 자꾸 너를 속상하게 하고 실망하게 하네.
많이 노력할게.
어른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몰아세우고 혼내는 것보다
그럴 수도 있지. 너니까.
너는 그래도 된단다. 너니까.
라며 사랑하고 사랑해 줄게. 고맙고 사랑해.
우리 집 막내이지만 너는 나의 작은 보석이야.
사랑해. 고마워.
막내는 여전히 막내인데 벌써 큰 아이 취급합니다.
저는 그렇게 아이를 대하고 있었습니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고 자기 마음을 알아달라는 막내의 마음을, 막내의 나이를, 막내 그 자체를 아직도 이해해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중2, 초6 아들과 딸이 자기 멋대로 생각하지만 제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고 기특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상황을 파악하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조심하는 것이고 막내는 아직 어려서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것을 이해 못 했습니다. 늘 막내에게 하는 입버릇이 있습니다.
"너는 이 상황을 모르겠니?" 알 수 없는 나이인데 그걸 모르고 혼내기만 하고 기다려주기만 요구한 저를 반성했습니다.
나이에 맞지 않다고 혼냈습니다.
언니가 초 4일 때는 이렇지 않았다면서 혼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정말 많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는 말처럼 사람마다 다른 것이었습니다. 막내는 언니가 지나간 초4의 나이를 지나가고 있지만 막내는 막내였습니다. 어리광 피우고 상황을 때로는 모르고 달리고 소리 지르고 울고 싶은 것을 몰랐습니다. 하고 싶은 것과 사고 싶은 것이 많고 상황이 어쨌든, 엄마 아빠의 재정이 어쨌든, 언니 오빠가 상황 때문에 가지지 못한 것이라도 '나는 갖고 싶어요!'라고 떼를 쓰고 싶은 막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막내를 이해해주지 못한 아빠를 반성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런 것을 이해해 주는 아내가 있어서 천만다행입니다.
막내는 재밌는 아이입니다.
언니같이 되고 싶어서 언니 발사이즈에 비슷하게 신발을 사다 보니 커서 질질 끌고 다닙니다. 뒤축이 늘 닳아서 새 신발을 사야 하고요. 언니가 호기심으로 산 화장품을 늘 몰래 발라서 혼나고 언니에게 주먹으로 맞기도 합니다. 언니가 사는 슬라임은 모조리 사고 싶어 합니다. 오빠가 좋아서 오빠 등교시간에 같이 나가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면서 "잘 가라!" 그 한마디 듣고 싶어서 늘 오빠랑 같이 문 앞을 나섭니다. 파마머리가 하고 싶다고 늘 머리를 꼬아 달라고 합니다. 몇 시간 묶고 있다가 풀면 라면가락처럼 꼬불꼬불한 머리가 되는 것을 파마머리 같다며 샬랄라~하며 좋아합니다. 하고 싶은 것은 언니, 오빠 때문에 하나도 못한다고 늘 불평합니다. 그런 막내에게 늘 불평한다고 혼냈습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손을 잡아줘야 아장아장 걸을 수 있는 아기들을 보면서 '우리 막내도 저런 시간을 보냈는데 언니, 오빠 걷기, 뛰기, 자전거 타기'를 봐주느라 제대로 못 봐준 것이 생각나서 길에서 혼자 운 적도 있습니다. 후회하고 후회하며 반성하느라 길을 걷지 못했습니다. 자꾸 귀를 열어 들어주면 속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주는 막내가 기특하기도 하고요. 늘 속상하고 서운한 막내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이 글을 쓰면서 막내를 더 챙기기로 다짐해 봅니다.
오늘은 막내를 챙겨봅니다. 막내를 더사랑하고 막내에게 더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 노력을 다짐하며 막내에게 편지를 써봤습니다. 오늘도 이런 노력을 할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의 편지
출처:사진: Unsplash의drtondons dentalclin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