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소
당신에게 이렇게 쓰고 있는 시간이 매우 행복합니다.
행복한 마음의 이유는 당신 마음속의 속상한 것들, 억울한 것들 등등 좋은 마음보다 안 좋은 마음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내가 말해줘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 않고, 그냥 남 탓만 하면서 떠밀듯이 당신의 감정을 뭉개는 상황들이 이어진 것 때문에 참고 참아준 마음들을 이제는 내게 말해주고 그것을 듣고 당신의 아프고 속상했던 마음을 알아가고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름대로 뿌듯해서입니다.
그런 상황들을 생각하다 보니 오늘은 사과를 하고 싶어요. 지난번에 아이들이 우리 집은 놀러 안 가고 여름 가을 지낼 거냐는 볼멘소리를 잠재우려고 호기를 부리며 전격적으로 물놀이 예약을 했던 것이 생각났어요.
내가 숙소를 찾다 보면 당신과 두 딸이 편안한 숙소가 되지 못할까 봐 늘 당신에게 마음에 드는 숙소를 찾고 예약도 마음껏 하라고 일임했지요. 그러면 당신이 신나게 찾고 고르고 그러면서 행복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과정이 당신에게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어요. 특히 올해 들어 한 번도 여행가지 않았서 답답하고 힘들다며 해외가 아니더라도 제발 어디라도 좀 가자는 아이들을 잠재우는 전격적인 여행 예약이었는데 새로 하게 된 일이 주야간 교대근무이다 보니 새로운 스케줄이 나왔을 때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요.
미리 예약을 했지만 나의 근무 교대 스케줄이 맞지가 안하서 취소를 해야 하던가 다른 날을 선택해서 빨리 해야만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1일이라도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상화이어어요. 그런 상황을 접하자마자 우리는 빨리 대화를 하게 되었고요.
"남편, 숙소예약한 날짜와 당신 근무 스케줄이 안 맞네요."
"그러게요. 여보. 난감하네요."
"남편, 어떻게 할 거예요?"
"예약한 거 취소하고 빨리 다른 날짜로 숙소 잡읍시다."
"...................................."
"당신이 좀 하지요..... 맨날...."
지금 적어놓고 보니까 당신이 얼마나 먹먹하고 힘들었을지가 느껴지네요. 여행을 가면 우리가 쓸 수 있는 돈의 규모를 아니까 그 범위 내에서 당시과 아이들이 가장 괜찮게 지낼 숙소를 고르도록 전권을 일임했다고 하지만 가서도 좋으면 다행이고 나쁘면 엄마 탓이 되고요. 이번 경우처럼 갑자기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잡아야 하거나 애매한 상황이 되어 관련하여 대화를 해야 할 경우 예약자가 당신 명의라면서 당신에게 카운터 가서 해결하라고 했던 적이 많네요. 지금 생각하니까 당신이 은근히 말 못 하고 엄청 맘고생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행히 그 예약건은 간신히 취소하고 다시 부랴부랴 예약을 잡아서 아이들이 원하는 곳에 아주 짧은 날짜로 다녀오게 되었고요. 아이들이 신나고 신나서 너무 짧게 다녀온다며 한탄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그래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운전하는 내내 졸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뿌듯했어요. 그 뿌듯함보다 더 큰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꼼꼼하게 하나하나 챙겨서 더 큰돈 들여서 놀지 않도록 웬만한 물건은 챙겨서 가방에 담은 당신의 손길, 급하게 예약을 취소하고 다시 예약을 해서 괜찮은 숙소에서 놀도록 노심초사하며 챙겼던 당신의 정성, 도착해서 다시 돌아올 때까지 필요한 것을 중간중간 챙기고 돈이 여력 없는데 무리하게 사거나 즐길까 봐 조마조마하면서 내 눈치를 보느라 힘들었던 당신의 졸아든 마음 등등이 느껴졌어요.
삼 남매는 그저 즐거웠고 짧은 시간이 아쉬웠고 더 맛있는 것 못 사 먹고 더 맘껏 돌아다니지 못해서 아쉬웠지요. 나는 오고 가는 길동안 운전하고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덜 혼내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그래도 몇 번은 아이들을 혼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덜 혼냈다면서 뿌듯해하기만 했고요.
당신은 정작 함께 즐기고 노는 시간이기보다는 힘들고 노심초사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이었음을 인정해요.
"얼마나 또 힘들었을까요? 여보. 미안해요."
편지를 쓰면서 여행 시작의 과정을 되짚어보고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다 보니 제일 고마운 것은 언제나 당신임을 인정해요. 나보다 조금 더 참아주고 조금 더 이해해 주고 곁에 늘 있어주면서 함께 하는 시간들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도록, 가정의 평화를 위해 보이지 않는 손길로 수호자처럼 지켜주는 당신이 고마워요. 그런 당신을 당신의 마음을 알아갈수록 당신이 점점 더 보석같이 이쁘고 당신 손을 잡고 길을 걸을 때면 진짜 영국여왕을 모시고 가는 느낌으로 당신이 귀하게 느껴져요.
오늘도 사랑하고 내일도 사랑하겠습니다.
당신만을 사랑해요.
당신이 함께 해주니 오늘도 가정의 행복이 지켜지네요.
고맙고 사랑해요.
늘 고마워요.
다음부터는 예약하고 애매한 것들은 내가 처리할게요. 자꾸 은근슬쩍 떠 넘기는 일들을 이제는 줄이려고 할게요. 나는 당신에게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일을 해내는 동반자임을 잊지 않을게요. 여보!!
아내가 어쩌다가 화를 내고 달려들면 더 화를 내기만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싸우자고 덤비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에요!! 라면서 대반격을 펼치며 더 화를 내곤 했습니다. 아내가 어느 날인가 제게 말했습니다. 싸우자고 덤비고 대드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남편이 하도 말을 안 듣고 맘대로 해서 너무 억울하고 속상해서 참다 참다 큰소리 내는 것이라고요. 제발 그렇게 말하기 전에 평상시에 자기 말을 좀 들어달라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은근히 아내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좋은 말로 충고를 해줘도 "내가 알아서 할게요."라면서 딴짓을 해서 엉뚱한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습니다. 이제는 아내가 큰소리 내며 화내지 않도록 그전에 귀를 기울이려고 합니다.
늘 떠넘기는 남편이었습니다.
힘든 상황을 해결하여야 할 때 "당신이 좀 말해줘요. 어른들께."
애매한 상황일 때도 "당신이 해결해 줘요."
중요한 상황을 처리하면서 대화하다가 "당신 말은 잘 들었고 내 방법대로 할게요."
늘 떠넘기도 안 듣고 은근히 맘대로 하는 남편이었습니다. 바람피우고 도박하고 집에 돈 안 갖다 주는 엉망징창 남편이 아니라며 고마운 줄 알라고 건방진 말도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매일 매시간 속상하게 하는 제가 더 나쁜 남편이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고치려고 더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내에게 편지 쓰길 잘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속상한 마음을 알 것 같다는 느낌에서 시작했고 사과의 마음을 차분히 전하고 싶어서 적었는데 적다 보니 아내의 매일 속상하고 아픈 마음이 제 마음에 와닿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어찌 그리도 아프고 속상하고 억울한데 참아주고 지내는가. 당신은 이쁜 사람이네....'라면서 되뇌고 되뇌었습니다. 편지 쓰길 잘한 것 같습니다. 아내의 진짜 아픈 마음이 제 마음에 crtl +C , ctrl +V 한 것처럼 와닿았습니다. 그래서, 깊은 반성을 하고 미안한 마음이 진심으로 사과하도록 했습니다.
아내는 이쁜 마음으로 오늘도 저와 함께 해줍니다. 이제는 애매한 상황에서 제가 나서서 처리하고 아내가 좀 쉬도록 해줄 생각입니다. 말이 없다고 안 힘든데 아니라 힘들지만 남편을 위해 말을 줄이고 참아준 그 배려를 알아서 알아줄 필요가 있음을 제대로 느낀 날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Camila Seves Espasand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