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잊사잃 프로젝트 #9

쟁반

오랜만에 탄성을 지른 날이 있습니다. 그래서 깨알프로젝트를 먼저 발행하고 이 글을 발행하려고 추가로 긴급준비하기로 했습니다. 역시나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저로써는 잊어버리거나 사라지거나 잃어버려야만 하는 것들과 함께 추억들이 하나둘씩 사라지는 것이 너무 허전하기에 이번 깨알을 보면서 너무 반가웠습니다.



#1. 양은 꽃쟁반..

은쟁반이 아닌 양은(양철) 쟁반입니다.



어릴 때 이것은 큰 사이즈일 경우 접이식 다리가 있는 앉은뱅이 밥상이었습니다. 어릴 때 타이어를 굴리듯이 거실에서 굴리면서 놀기도 했고요. 친척집에 가면 이 쟁반에 식혜를 담은 컵들을 받아서 방으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TV프로그램에서 '쟁반 노래방'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틀리면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머리에 맞는 게임을 하는 것도 봤습니다. 제일 반가운 것은 역시 쟁반의 역할에 충실히 컵이나 밥, 반찬을 담고 건네받거나 접이식 다리를 펼쳐서 낮은 높이지만 흰쌀밥과 김치를 포함한 반찬들을 젓가락으로 먹으면서 식사하는 것이 제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추억들이 묻어있는 무늬가 담긴 쟁반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그 쟁반을 만난 곳은 무려 컴포즈 커피집이었습니다. 커피 두 잔을 시켰는데 늘 받쳐주는 얌전한 미끄럼방지 쟁반이 아니라 양은 쟁반이었던 것입니다. 너무 반가워서 탄성을 지르면서 커피컵을 꺼낼 생각을 하지 않고 잠시 사진을 찍고 앉아 있었습니다. 마치 50년 만에 만난 친구를 눈앞에 두고 감격에 빠져서 그냥 서서 눈만 바라보고 있는 느낌으로요. 아까 말씀드린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만 마시려다가 피곤한 몸을 달래주려고 티라미스 케이크 1조각을 추가로 주문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원래 받쳐주는 미끄럼방지 쟁반을 주길래 거부하고 아까 받은 양은 꽃쟁반을 가져가서 다시 받아왔습니다. 들고 오면서 너무 행복해서 다시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 모습을 앞에서 계속 지켜보고 있는 아내는 재밌기도 하지만 제가 그러고 있는 모습이 귀여운 듯 바라봐주고 있어서 고맙기도 했습니다. 양은 쟁반과 함께 줄줄이 이어지는 것은 양은 도시락, 노란 양은 냄비, 양재기라고 부르며 개밥그릇으로도 쓰이고 국그릇으로도 쓰이던 그릇들이 떠올랐습니다. 모두 사라지고 있는 물건들에 얽힌 저의 추억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추억들에 너무 감격스러웠던 탓에 커피컵에 빨대를 꽂아놓고도 입에 가까이 가져가서 시원하게 한 입 마시려고 하다가 바지에 잔뜩 쏟고 말았습니다. 줄줄이 떠오른 추억에 감격이 흘러넘쳐서 바지 앞부분을 적셨고 지하철을 타고 가는 내내 가방으로 가리고 다니느라 곤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다행인 건 아직도 에어컨이 강력하게 나오기에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에는 거의 말라서 다행이기도 했습니다.


양은 꽃쟁반

사이즈가 작아서인지 너무 반가웠습니다.

컴포즈 프랜차이즈점에서 만나는 뜬금없는 쟁반이라서 더 감격스러웠습니다.


#1. 첫 번째.. 넌 나의 유년시절 친구였지..



사라지지 말아 다오..

막 감성이 숨 쉴 때마다 뿜뿜 하는 두 딸들, 특히 사춘기가 진행되고 있는 딸, 사춘기의 문턱을 간절히 소망하는 막내와 지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감성과 제 감성 코드가 맞지 않을 때도 있고요. 아이가 원하는 것을 알면서도 맞춰주지 않으면서 못난 모습으로 구는 아빠로 지낼 때도 있습니다. 그런 과정을 사과하고 더 좋은 아빠로 지내기 위해서 떡볶이 회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 글을 즐겨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시는 '루미상지'님께서도 추천해주시기도 했고요. 마침 막내가 맛있는 떡볶이집이 있다면서 자주 말했던 곳을 언급했다가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뜻밖의 친구들을 만나서 또 행복했습니다.



#2. 초록색 분식집 그릇들..



이 그릇들을 볼 때면 초등학교 다닐 때 하교시간만 기다린 날들이 생각납니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아이들과 모여서 축구공을 차거나 오징어다리게임을 했습니다. 흙먼지를 풀풀 풍기고 옷에 흙먼지를 묻히고요. 달리다가 일부러 갑자기 멈춰서 흙먼지를 친구에게 뒤집어 씌우곤 깔깔거리고 목덜미를 붙잡고 뒹글게하고 낄낄거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서로 다른 여학생들을 좋아하다가 그런 바보 같은 모습으로 놀고 있는 것을 보면서 지나갈 때면 얼굴이 빨개져서 운동장 스탠드에 던져놓은 가방을 얼른 들고 교문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달려간 곳은 교문보다 10배나 작은 건너편 문구점이나 분식점이었습니다. 서로 조금씩 돈을 내서 같이 사 먹는 것은 얼음을 손기계로 돌돌돌 돌려서 갈아놓은 얼음에 주황색 불량식품 색소라는 것을 잔뜩 뿌려준 팥빙수와 초록색 플라스틱 그릇에 담아준 떡볶이들이었습니다. 서로 먼저 먹겠다고 포크로 초록색 그릇을 한없이 찔러대면서 웃고 먹고 즐기다 보면 집에 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플라스틱 그릇을 혀로 핥아서 조금이라도 떡볶이 양념을 더 먹고 집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이 있었기에 학교 수업이 지겹더라도 끝나면 길 건너 분식집에 갈 생각만 했습니다. 친구들과 그렇게 어울려 다니는 동안 사실 초록색 그릇은 안주에도 없었습니다. 그 위에 담긴 튀김과 떡볶이만 생각하면서 다녔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만난 초록색 그릇은 특별하게 와닿았습니다.



거기에 담긴 음식은 전혀 다르지만 그때의 느낌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거기에 담긴 음식들은 제가 초등학교 때 먹었던 음식들이고 저는 어느새 초등학교 꼬맹이가 되어서 제 작은 손으로 초록색 분식집 그릇을 잡고 낄낄거리며 걷고 있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떠오르면서 뭉클했는데 "아빠! 여기에 놓아주세요!"라는 말에 풍선껌이 폭~하고 터지듯이 떠올랐던 추억과 초등학생 저는 사라지고 딸 둘앞에 초록색 분식집 그릇 두 개를 받친 흰 쟁반을 들고 서 있는 아빠로 돌아왔습니다.



5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너무 행복하고 즐거웠습니다. 어쩌다 만나는 초록색 그릇이지만 만날 때마다 어릴 때 꼬맹이시절 추억이 떠오르면서 제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고 머릿속은 그때 행복하고 즐거웠던 감흥이 떠올라서 늘 행복합니다. 아이들이 신나게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아까 추억이 떠올랐을 때보다 더 행복했습니다. 사실 두 딸들과 '사랑의 떡볶이 회동'을 하기 위해서 야간근무하고 와서 1시간밖에 잠을 자지 않아서 피곤했지만 전혀 피곤을 느끼지 못할 만큼 행복하고 행복했습니다. 두 딸들이 너무 즐거워하고 맛있어하면서 자기들만의 생각들도 신나게 말해줬고요. 엄마들과 아이들이 와서 먹고 있는 사이에서 두 딸들과 함께 앉아 있는 아빠의 모습이 창피하기도 하지만 뿌듯하고 행복해서 너무 좋았습니다.


1+1처럼 그런 행복한 마음에다가 초록색 그릇에 얽힌 저의 꼬맹이 시절 추억이 떠올라서 너무 좋았습니다.



#2. 두 번째.. 네가 있어서 학교수업을 견뎠지.. 초록색 분식집 그릇..



양은 쟁반과 초록색 분식집 그릇을 만난 날들은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 행복과 즐거움을 혼자 가지고 있기에는 너무 아쉬워서 '잊자잃 프로젝트'를 발행해 보았습니다. 덕분에 예정 스케줄보다 1일 빨리 '깨알 프로젝트 시즌 3'을 발행했습니다.



다른 분들도 양은 쟁반, 식탁 그리고 초록색 분식집 그릇에 얽힌 추억과 에피소드가 많으시겠지요? 그 추억들이 사라지는 날들은 그 물건들이 어느새 우리 주변에서 사라지는 순간들입니다. 그런 날들이 천천히 진행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마치 사명감을 가지고 그런 물건들을 볼 때마다 '잊자잃 프로젝트'를 하고 있습니다.




진짜로 지금과 다른 추억을 느끼게 해 준 물건들은 천천히 사라지면 좋겠습니다.

양은 냄비, 양은 쟁반들은 한때는 특히 저의 꼬맹이 시절에는 엄청나게 친근한 물건들이었습니다. 어느새부터인가 건강, 환경, 편리를 위해 개선되고 보강되다 보니 사용이 줄어들고 더 이상 주변에서 자주 접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라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으며 더불어서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추억의 물건들이 이벤트처럼 계속 만들어지고 있어서 다행입니다.

늘 사용하는 일상용품은 아니지만 이벤트성으로 종종 만들어져서 우리가 접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추억을 잊지 않고 리마인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기분 좋은 것은 그 물건들과 얽힌 추억을 지닌 분들이 저와 비슷한 세대이면서 아직 많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이벤트성으로 종종 만들어지곤 하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물건이 사라질 때마다 추억이 사라지곤 했는데 이벤트성으로나마 만나면서 추억을 잊지 않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아이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추억이 있어서 좋습니다.

물론 '~라테는'이라는 표현과 대화내용은 좋지 않다고 합니다. 그런 말들이 아이들에게는 궁금하지도 않고 들어도 공감되지 않아서 별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추억의 물건들을 만날 때면 지금 보는 자리에서 쓰이는 쓰임새와 달리 쓰였던 과거의 쓰임새와 아빠의 추억을 곁들여서 대화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단절되어 가는 세대를 이어주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물건들을 만날 때면 더 행복하기도 합니다. 이런 물건들이 생길 때마다 잊지 않고 나누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길에서 만나는 깨알들도 소중하지만 이렇게 일상에서 만나는 잊히고 사라지고 잃어버리는 물건들과 얽힌 추억을 나누는 것도 재밌는 프로젝트 같습니다. 물론!! 읽어주시니 제가 가끔 하고 있기도 합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잊사잃 프로젝트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