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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사잃 프로젝트 #8

오렌지

무더운 날 아이의 간식을 사려고 들어간 '무인 간식가게'에서 놀라서 쓰러질 만큼 반가운 간식을 만났습니다.


'반가운 간식'을 만나자마자 두 마디 외쳤습니다.


"와! 오랜만이다."
"여기는 아빠의 성지다!"


다름 아닌 '쌕쌕 오렌지'였습니다.



둘째 딸과 함께 들어갔었는데 아이도 익히 알고 있는 캔음료이다 보니 같이 환호를 질러줬습니다.


"아빠! 좋겠네. 오랜만에 사서.."
"응"




출처: 직접 찍어봤습니다.


쌕쌕 오렌지..


저에게 있어서는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소울푸드정도되는 캔음료입니다. 몇 번이나 바뀌는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늘 컸습니다. 특히나 과립이 사라지고 어느 날부터인가 코코넛 젤리가 들어간 날은 거의 '절망'에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캔을 보고 반가웠던 마음에 사서 얼른 마셨는데 입에 닿아서 목을 타고 넘는 음료와 함께 '조르륵'들어가야 할 과립은 사라지고 몽글거리는 코코넛 젤리가 넘어갈 때의 '아쉬움'은 말할 수 없이 속상했습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아직 팔리고 있어서요. 다만 아무 데서나 살 수가 없었는데 익숙지 않은 동네에서 아이들 '무인 간식 가게'에서 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엄청 반갑고 즐거웠습니다.


사진에서 쌕쌕 오렌지가 왜 2개일까요?

제가 즐겨 먹는 것을 큰아들이 마셔보더니 '오호~'하면서 맛있는 음료라고 엄지 척했습니다. 그때부터 쌕쌕 오렌지를 만나면 늘 2개를 사곤 합니다. 큰아들은 진짜 맛있다기보다는 아빠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해주느라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마음이 고마워서 종종 사긴 합니다.



쌕쌕 오렌지에 얽혀있던 추억을 떠올려 보고 싶어 집니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갈 때마다 꼭 전날 음료수를 얼려서 가져가곤 했습니다.

음료수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엄마는 늘 꽁꽁 잘 얼려가라는 의미에서 일찍 넣어두시곤 했습니다. 그런 사랑에 힘입어 음료수는 종종 '꽁꽁 얼려져서' 소풍이 끝나갈 때까지 '녹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꼭 소풍은 걸어서 인근으로 갔는데 소풍지에 도착해서 바닥이나 풀숲에 앉게 되면 목이 말라서 마셔야 했습니다. 비가 부슬거리는데 억지로 진행된 소풍이거나 너무 일찍 냉장고에 넣어둔 음료수일 때는 전혀 마시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면 마음에 고민을 하기 시작합니다.


'일단 목이 마르니까 친구 거 얻어먹자. 가져온 거 녹으면 준다고 약속하자.' 아무 죄가 없는 엄마에게는 '에이! 마시지도 못하게 꽝꽝 얼리면 어떡해! 엄마 미워!!'라고 짜증을 내고요.


소풍이 본격 시작되고 반대항 놀이, 반 자체 술래잡기, 보물찾기 등이 끝나갈 즈음 목이 말라서 다시 가방을 열어봅니다. 아직도 음료수는 녹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희망으로 함께 가져온 물병을 열어봅니다. 빨대를 뽑아서 힘껏 빨아봅니다. ' 아!!! 물병도 녹지 않습니다. 너무 화가 납니다. ' 물병을 열어보니 빨대에 매달려서 얼음덩어리가 데롱거립니다. 점점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엄마! 미워!! 에이!!'급기야 화를 내고선 큰 결단을 합니다.


'가방이 무거우니까 버려 버리자!'


녹지 않은 음료수와 녹지 않은 물병의 얼음덩어리를 버려 버립니다. 그리고 나머지 프로그램을 함께 하면서 마지막 장기자랑으로 선물을 타고 기분 좋게 소풍이 막바지에 다다릅니다.


"주변을 돌아보면서 쓰레기들은 모두 줍도록 하세요."


선생님의 말씀에 주변을 돌아보다가 또 한 번 화를 냅니다. 아까 버린 얼음덩어리를 깔고 앉아서 바지가 젖었습니다. 얼굴을 보면 설레는 반 여자친구들 앞에서 오줌 싼 것 같은 바지를 입게 되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습니다. 주변에 버린 음료수를 제 손으로 집어서 버려야 하고요. 즐거운 소풍이 마음 한구석이 짜증폭발로 슬픈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 해프닝에서 가장 슬프게 만든 것이 쌕쌕 오렌지였습니다.


다른 음료수들은 천천히 녹아가더라도 흔들면 얼음덩어리가 입에 들어오면서 재미도 있고 목마름도 해결되었는데, 쌕쌕 오렌지는 정반대입니다. 제대로 녹지 않은 음료는 정말 먹고 싶지 않은 얼린 오렌지 과립을 목 넘김 해야 해서 정말 안 좋았습니다.


쌕쌕 오렌지는 한달음에 마셔야 남자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쌕쌕 오렌지는 과시욕을 위한 물건이었습니다. 쌕쌕 오렌지의 캔을 열어서 음료와 함께 과립을 한방에 털어 넣는 것이 상당히 터프한 남자 같다는 과욕을 부릴 때가 있었습니다. 친구들과 학교가 끝나고 동네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서 내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캔을 따고, 숫자를 세고 음료를 털어 넣기 시작하는데 아무리 잘 먹어도 한방에 털어 넣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의욕이 과다하면서 그만 티셔츠에 주르륵 흘리고 맙니다. 오렌지 주스와 알갱이들이 덕지덕지 붙어서 정말 흉한 모습으로 집에 가야 할 판이었습니다. 승부에 진 것도 억울하지만 옷이 엉망징창으로 젖어서 창피한 마음이 더 컸습니다.


쌕쌕 오렌지는 쑥스럽다.

초등학교 사춘기 때는 조금만 연관되어도 쑥스럽고 부끄럽고 놀리기 십상이었습니다. 특히 여학생들과 같이 놀다가 조그만 말 한마디, 행동하나에 부끄러워지고 괜스레 묘한 분위기가 되면 서로 부끄럽다면서 낄낄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소리가 귀를 막아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릴 때였습니다. 단어의 어감 때문에 누군가 한번 부끄러워했던 것을 생각해서 한동안 내내 서로 약 올리면서 놀았던 기억도 있습니다.


쌕쌕~~

하지 마~~~


보리텐~

하지 마잉...


남자애들은 신나서 소리치고, 여학생애들은 '어머 어머'라면서 빨개진 얼굴로 '그만해!' '하지 마!~~~ㅇ'하느라 서로 옥신각신하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 장난과 해프닝보다도 앞서는 것은 역시 쌕쌕 오렌지의 식감과 목 넘김이었습니다. 단연 최고 중의 최고였습니다. 마실 때 입으로 '호로록'넘어가는 과립의 느낌이 재밌고요. 과립과 함께 넘어가는 오렌지 주스의 달콤 쌉싸름한 음료는 더운 날, 추운 날 언제 마셔도 즐거움 그 자체였습니다.


오늘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난 쌕쌕 오렌지.

너무 반가웠습니다.



오징어땅콩과 함께 쌕쌕 오렌지는 보이기만 하면 일단 먹고 봅니다.


아이들이 아빠가 엄청 좋아하는 간식이라면서 보이기만 하면 꼭 사다 줍니다. 그저 감사하지요. 쌕쌕 오렌지는 3년 만에 본 것이라서 너무 반가웠던 게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인 80년도에 부모님이 보시는 신문의 광고, 텔레비전에 나오는 쌕쌕 오렌지 광고 '쌸라랄랄라~~ 쌕쌕 오렌지"광고만 나오면 저도 모르게 훌라춤을 추던 때도 있었습니다.


간절히 바라기도 합니다.

없어지지 말아 다오. 캔 디자인이 조금씩만 빠뀐다면 좋겠습니다. 똥똥하고 작았던 캔이 길어진 것은 지금 현시대의 음용량을 맞추기 위한 전략이겠지요. 과립이 어느샌가 사라지고 코코넛 젤리가 들어간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쌕쌕 오렌지를 전혀 모르는 세대에게 권하거나 설명할 생각은 없습니다. 과거의 사람들이 즐기는 것이 반드시 현재의 사람들에게 즐거운 물품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영화에서 본 광경이 생각납니다.


선임이 끓여준 라면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하니까 선임이 라면을 끓여줍니다. 그런데, 예전에 느꼈던 그 맛이 아닌 것입니다. '왜 그럴까?'라고 생각해 보니까 군대에서는 꼭 얼차려를 받고 나서 먹었기 때문에 그 맛이 엄청 맛있고 잊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냅니다. 그리곤 이제는 제대했는데도 얼차려를 잠깐 받고 나서 먹으니까 그 맛이 난다면서 웃는 영화 장면이 떠오릅니다.


쌕쌕 오렌지는 그런 환경적 요인을 채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맛을 알 수는 없고요. 세대차이로 인해서 서로 공감 안 되는 부분은 그 자체로 인정해 주는 노력도 해야 한다고 깨달았습니다. 둘째 딸 간식을 사러 들어간 무인 간식 가게에서 너무 재밌고 반가운 간식을 만났습니다.


잊히는 것도 어쩔 수 없고 사라지는 것도 어쩔 수 없지만 잃어버리지는 않도록 종종 가게에서 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전부 마시는 내내 너무 행복했습니다.



잊혀야 하는 것들이 쉽게 사라지지 말았으면 하는 소원이 간절해집니다.



오늘도 읽어주신 것에 미리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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