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통
제 마음 안에 있는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이 점점 더 무겁긴 합니다. 마치 늪 속에 숨겨진, 숨겨놓은 구슬들을 하나씩 꺼내는 느낌입니다. 꺼내기도 힘들고 막상 꺼내면 색다른 모습이라서 당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멈추고 싶지 않은 것은 이렇게 하면서 저의 숨겨진 마음들과 저도 모르게 자꾸 숨기는 마음들을 자연스럽게 꺼내고 노력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제 감정들을 꺼내고 돌아보기 시작하니까 점점 관계 속에서 솔직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들과의 대화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숨기는 것이 많고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이면에 숨긴, 숨기려고 하는 마음들이 느껴지기 시작하니까 대화가 끝나면 답답하고 불편하기도 하고요.
그 답답함을 느끼면서 저의 아내가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당신과 말하면 늘 답답해요!" "당신은 숨기는게 많은 것같아요." 그 말 뜻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대화가 늘 오고가는 순간들이 스치면서 제 감정을 돌아보는 시간들이 힘들고 버겁지만 알아야 할 것을 제대로 알아가는 것같아서 포기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제 아홉번째 시도인데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를 알아가고 아내 마음을 공감하고 타인의 감정까지도 이해하기 시작하니까 오늘도 정진해봅니다. 이번에는 부정적인 감정에서 단어를 뽑아 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삶에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 또한 중요한 감정입니다. 대표적으로 분노, 혐오, 부러움, 두려움, 질투, 슬픔, 수치, 죄책감이 있습니다.
분통
이 단어를 읽었을때, 당장 드는 생각이 '억울해서 화가 나고 속이 터지고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악한 감정을 터트려야할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뜻이 맞는지 알아보았습니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분통(憤痛)은 본래 분노하여 가슴이 아픔이라는 뜻으로, 한문으로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憤痛
憤(분): 성낼 분, 분노하다
痛(통): 아플 통, 마음의 아픔
이 표현은 단순히 화가 난다는 뜻을 넘어, 억울하거나 분한 마음이 가슴 아프게 느껴지는 상태를 나타냅니다.
일본어로 번역하면
憤痛(ふんつう:훈츠우): 분노하여 가슴이 아픈 상태, 억울하고 분한 감정
彼は不当な扱いに憤痛を覚えた。: 그는 부당한 대우에 분통을 느꼈다.
憤痛のあまり、言葉が出なかった。: 분통이 터져 말이 나오지 않았다.
その事件は市民に憤痛を引き起こした。: 그 사건은 시민들에게 분통을 일으켰다.
스페인어로 번역하면
rabia (라비아: 격한 분노, 울분)
indignación (인데그나시온: 분개, 억울함)
A: La noticia causó gran indignación en la comunidad.
(발음: 라 노띠시아 까우소 그란 인데그나시온 엔 라 꼬무니다드.)
: 그 소식은 공동체에 큰 분통을 일으켰어.
B: Sí, todos están muy molestos.(씨, 또도스 에스딴 무이 몰레스토스.)
:맞아, 모두가 매우 화가 났어.
rabia(라비아)는 감정적으로 “화가 난다”는 느낌에 가깝고, indignación(인데그나시온)은 좀 더 격식 있고 “분개, 억울함”을 표현할 때 쓰입니다.
분통에 대해서 문자그대로 뜻을 찾아서 읽어보고 다른 나라들이 어떤 단어로 그 감정을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알아보다보니 느끼는 것은 역시 나라가 다르더라도 그 감정은 '단어'를 통해 충분히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빵을 먹되 어떤 나라는 구워 먹고 어떤 나라는 스프에 찍어 먹고 어떤 나라는 쪄서 먹으면서 먹는 모양이 다를뿐, 빵을 먹는다는 것은 불변이듯이 단어가 다를뿐이지 그 속에 내포된 감정은 동일한 느낌으로 전해지는 것이 늘 신기합니다.
분통"이라는 감정은 화가 나는데 억울하게 당한 것을 느끼거나 화가 나지만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특히, 화가 나고 억울하지만 제대로 표현하거나 해명하지 못하고 억눌러야했던 상황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지냈던 순간들을 돌아봤습니다.
결혼전에는
수시로 그런 상황들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다니면서 떠들지 않았는데 떠든 무리로 엮여서 벌을 받기도 했고요. 학교 다니면서 가능하면 하지 않아야 할 행동은 안 하는 편이었는데 오해를 사는 일들이 많아서 속상했습니다.
성장과정동안 동생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고 그것때문에 부모님이 속상해하시는 것을 보면서 부모 속을 썩이지 말자는 의미에서 저도 일탈행동을 하고 싶지만 저까지 일탈행동을 하면 부모님이 엄청 힘드실 것같아서 이것저것 '스스로 하지 말자'라고 단속하는 시간들이 '분통'터지기도 했습니다.
"왜? 나는 그렇게 살면 안되는거지? 왜? 나는 착하게 살고 평범하게 살아야 하지?"
라면서 스스로 화를 내고 분통터져가면서 원망하는 삶을 살았던 것같습니다. 억울하고 속상한 일들이 많기도 했지만 주로 가정에서 스스로 느끼는 '스스로 만든 억울한 감정'에 제 자신이 휘청거렸던 것같습니다.
결혼후에는
아내와 아주 사소한 것때문에 다툴때마다 분통터지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양말을 뒤집어서 세탁바구니에 넣지 않고, 치약도 중간부터 짜서 사용하고 늘 사용하기 편하도록 해놓았습니다. 화장실 사용후 변기와 주변 정리를 해서 아내가 사용하기에 불쾌감을 주지 않도록 했고요. 분리수거를 아내가 시키기 않아도 퇴근하고 알아서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도 버려주도록 요청받으면 거부하지않고 버렸습니다. 술 먹고 늦게 들어오거나 밤을 세우고 아침에 들어오는 남편때문에 눈물로 지새우는 아내 모습이 싫어서 술을 가능하면 먹지 않도록 했고요. 담배냄새가 몸에 벤 남편, 그런 남편이 아이들 앞에서 담배를 피고 그런 모습이 그대로 자녀들이 아어가는것을 싫어하는 것같아서 결혼전 담배를 끊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남편, 아빠가 되어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겠다고 보통의 남자들이 하는 불협화음의 작은 씨앗들을 제거하고 사는 남자라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 인정받고 싶었고 실수를 하더라도 '그렇게 노력하는 남편'이니까 작은 실수는 허용되거나 인정받고 싶은 것이 제 마음에 있었나 봅니다.
"이 정도면 괜찮은 남편 아니에요?"
"그 정도의 남자라고 생각해서 결혼을 결정한거에요. 안 그렇다면 아예 결혼하지 않았을 거에요."
그 단 한마디에 분통터지고 억울하고 뭐든지 부수고 싶을만큼 화를 냈습니다. 이정도면 '최고의 남편아닌가?'라는 근거없는 자신감과 노력에 대한 정도도 제 기준에서 만족하면서 당당하게 말하면서 아내를 뜯어보면서 단점을 핀셋으로 집어내듯이 '자기는 하나도 제대로 하는게 없고 실수투성이이고 허점많으면서~'라고 늘 화를 냈던 것같았습니다. 우연히 만나서 짧은 시간에 결혼을 결정하고 삼남매와 살고 있는 자체를 애시당초 '잘못된 선택'이라면서 수시로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트리곤 했고요. 혼자 길을 걸으며 시골길에서 소리지르기도 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지낸니까 삼남매를 키우면서 집에서 모유수유하고 이유식 만들어서 먹이고 집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틈날때마다 가정에 필요한 것을 구매하러 외출하고 매월 결제일을 위해 돈을 준비하고 전전긍긍하는 아내를 보면 힘든 상황에도 악착같이 지내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껴야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시로 제가 발견한 아내의 허점과 실수에 대해 순간적으로 폭발하는 감정을 섞어서 화를 냈습니다. 만족함없는 표정으로 남탓하기가 바빴던 것같고요. 이런 시간이 꽤 긴 시간이어지다보니 아내는 어느새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고 그로인해 몸도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으니 몸도 아프기 시작한 것입니다.그렇게 지낸 시간이 8년입니다. 진짜 분통터지는 사람은 아내였습니다. 이제서야 아내의 마음, 노력, 헌신에 대해서 감사를 생각하면서 아내의 진면목이 크게 보이고 아내의 실수나 허점은 점같이 거의 보이지 않다보니 불만스럽게 순간적으로 화를 내고 그런 일을 줄이고 있습니다.
분통터지는 일은 없어야하고 있더라도 그 분하고 억울함을 잘 표현해서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합니다. 특히 마음이 아픈 아내릉 위해 분통터진다며 걸핏하면 풍선터지듯 화를 내는 일이 없도록 하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도 그런 일을 겪고 그런 감정으로 몸과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분통..그런 감정은 일상 속에서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생각보다 감정단어가 다양합니다.
즐거움, 화남, 행복, 속상함 등등의 단어들만 있고 제 감정은 복잡한 마음이 순간순간 떠오르는 걸로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감정 단어들을 따라서 제 감정을 짚어보다보니 한 사람의 마음 속에 다양한 감정이 다양한 단어들로 정의내릴만큼 복잡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많아서 당황하고 있습니다.
감정단어가 많은만큼 우리는 복잡한 존재였습니다.
제가 복잡한 감정의 사람인 것을 알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사람임을 이제 알았습니다. 웃고 다니는 사람은 늘 웃을 일 밖에 없고 분통 터지는 일은 없는 삶일 줄 알았습니다. 수시로 화를 내는 사람은 그런 삶만 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생각외였습니다. 누구나 수많은 감정 단어들을 지니고 살아가는데 모든 감정을 표현하고 사는게 아니라 나이에 맞게, 성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어떤 것은 표현하고 어떤 것은 절제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것과 달리 저는 수시로 다양한 감정들을 전부 표현하고 살았던 것같습니다. 저만 그런줄 알고 저만 인정받기를 원했던 복잡한 인간이었습니다.
제 마음속, 특히 제가 지나온 시간동안 느낀 것들을 점검하다보니 저를 이해하는만큼 타인도 이해하게 됩니다.
"나도 내 속을 몰러!"라는 옛날 만화나 영화멘트가 생각났습니다. 모르니까 그만큼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거나 공감하는 일도 적은 것입니다. 일방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로 살아가게 되고요.
"나는 화를 내지만 뒤끝이 없어!"라는 말이 이제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뒤끝이 없어서 쿨한 사람이 아니라,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기 감정에만 충실해서 순간적으로 뒤를 생각하지않고 화를 내는 사람인 것이었습니다. 상대방이 그런 행동때문에 받을 상처, 여파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제 감정을 알아가는 매시간마다 시작하는 순간은 버겁습니다. 무겁고 힘들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그 감정을 알아보고 지나온 시간을 점검하는동안 '알아가는 맛'이 있습니다. '그 맛'을 통해 점점 더 세상과 제대로 친해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내에게도 "이제서야 당신의 마음이 이해가 되요!"라고 반성과 후회와 미안함이 섞인 말을 하면서 지냅니다.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Debashis RC Biswa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