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다행이야.+2
사랑하는 아내에게
당신과 오랜만에 지인분의 집에 초대받아 식사하며 일상을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얼마나 감사했는지 몰라요.
예전에는 지인들의 집에 초대받아서 점심이나 저녁을 함께 먹으면서 대화하러 갈 때 가기 전에 차 안에서 하는 루틴 같은 말이 있었어요. 기억나요?
"거기 가면 이런 말은 하지 말아요."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는 차 안에서도 루틴 같은 말이 있었지요. 이것도 기억나지요?
"거기서 왜 그런 말 했어요. 그런 말 안 하기로 했잖아요."
그렇게 두 가지 말을 루틴처럼 하면서 당신과 동행하는 것이 내게는 자랑스러운 시간이었지만 당신에게는 숨 막히고 고통스럽고 무엇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는 시간이었지요. 그런 것을 숱하게 하고 나서야, 아니 부부상담을 하고 나서야 당신이 참아주고 있는 것과 당신이 간신히 버텨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굉장히 미안해하기 시작했지요. 그게 결혼하고 나서 8년이 지나서였지요.
그렇게 8년이 지나서 뒤늦게 알고 나서는 이제 그런 말은 하지 않을 테니 부부동반 모임 때 마음 편하게 다니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곤 했었는데 그 이후로 갑자기 코로나가 오고 부부동반 식사모임은 거의 사라지고요. 친교를 나누는 시간도 거의 있을 수 없고 심지어 가족끼리도 투명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기도 하고요. 집에서도 가능하면 개별그릇에 음식을 놓고 얼른 먹고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하는 시간들이 이어지기도 했어요.
그런 분리의 시간을 거치다 보니 나의 다짐은 희미해지고 함께 부부동반하면서 식사할 자리도 이제는 거의 없어지기도 했지요. 그렇게 뭔가 머쓱 머쓱한 대인관계와 협력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예전에는 편했는데 이제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같이 알게 된 사이, 특히 부부들이라면 같이 차를 한 잔 하고 밥을 같이 먹으면서 서로의 일상을 나누는 자리가 그리워지고 목말라지기까지 했지요.
그런 목마름을 알아주었는지 어느 가정에서 초대를 해줘서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지요. 초대해 준 집에 가서 정성껏 차려준 식사를 같이 먹으면서 가정, 아이들, 일상, 직장, 고민 등등에 대해서 두루두루 나누다 보니 당신이 상기된 얼굴로 테이블에 바싹 다가앉아서 기분 좋게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이 사람! 이렇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과 편하게 대화하는 시간이 엄청 그리웠구나. 대화하는 모습이 너무 이쁘네.'라는 독백을 마음에 품고 당신과 이런저런 대화를 초대해 준 가정과 한참을 나누게 되었지요. 그렇게 점심 식사 후 대화하다가 커피를 마시고 커피를 다 마시고 나서 대추차를 추가해서 같이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지요. 그러다 보니 저녁을 먹을 시간까지 대화를 이어가게 되어 '다음을 기약'하고 서로 헤어지게 되었어요.
그렇게 긴 시간 식사교제와 함께 대화하누는 것이 오랜만이기도 했고요. 당신이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아무런 제재나 눈치도 없어서인지 정말 편안하게 이것저것 서로 통하는 관심사를 나누는 진짜 편한 시간을 가졌나 봐요. 주차해 둔 차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고 내려가는 내내 당신이 빙긋이 웃는 얼굴을 봤어요.
빙긋이 웃으면서 가끔 나를 보고 또 앞을 보다가 주차된 지하층에 도착해서 차를 향해 가는데 당신이 내 손을 잡아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이그!"라고 말하고 콧잔등을 찡그리면서 웃어주는데 그 한마디와 당신이 잡아준 손을 통해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남편! 이제 이렇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네요. 나 오늘 행복해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당신과 함께 동행해서 편하게 대화하 누는 게 얼마만인지 몰라요.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어요. 해방감을 느낄 만큼 우리 삶 속의 고민과 일상대화를 가감 없이 나눌 수 있고 내가 단 한 번도 제재하지 않고 오히려 나의 치부도 드러내놓고 서로 그것을 위해 고쳐가는 노력을 하도록 서로 도와보자는 무언의 하이파이브도 하는 시간이 왔다는 것 같아서 나도 마음속으로 마음껏 웃었어요.
'내 아내가 이런 시간을 원했구나! 이렇게 편하게 먹고 대화하고 대화하고 차를 마시는 이 시간을 그렇게 원했는데 말이야. 나는 모임 전에 하지 말아야 될 말이나 화제를 미리 제한하고, 모임 후에는 약속을 어긴 사람처럼 하지 말아야 될 말들을 했다면서 집으로 가는 내내 차 안에서 당신을 밀어붙였으니 나는 얼마나 한심한 사람인가!!' 마음으로 반성하고 엄청 반성하고 되짚보면서 당신이 그 긴 시간 동안 목구멍이 단춧구멍이 된 것처럼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들게 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미안해요.
당신이 원하는 것은 해주지 않고
원하지 않은 것, 말하지 않은 것들을 당신이 원할 것이라고, 분명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해주려고 전전긍긍하고요.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소소한 행복,
지인들과 부부가 만나서 밥 같이 먹고 차 마시면서 도란도란 숨기는 거 없이 대화하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당신을 몰라주고 늘 몰아붙이고 제한하면서 힘들게 했네요.
"이그"
그 한마디와 콧잔등의 찡그림은 내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는 것 같았어요.
"앞으로도 이런 자리에 많이 함께하면서 우리 일상을 지냅시다."라는 말로
당신에게 다짐하고 약속합니다.
손가락을 걸진 않았지만..
내 마음에 깊숙이 박아놓은 기둥처럼
잊지 않고 늘 함께 하면서 편안한 대화 하며 다른 부부들과 교류하는
건강한 부부가 되도록 늘 노력할게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이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대화하고
당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남편이 될게요.
미안했고
이제 더 사랑해요.
늘 고속도로 속도제한기 같았습니다.
항상 아내와 동행할 때마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미리 제한했고요. 모임이 흥겹고 좋았더라도 돌아오는 길에
하지 말자고 한 말들을 무심코 했다면서 아내에게 잔소리를 하는 남편이었습니다. 늘 제한하는 편이었습니다.
그런 생활에 아내는 얼마나 숨 막히고 힘들었을까요? 그 마음을 늦게 알아챘습니다.
아내는 이번 모임 때 진짜 행복해했습니다.
음식은 맛있게 먹고 대화는 즐겁게 나누고요. 차 한잔을 마시면서도 맛있게 목 넘김 하는 것을 봤습니다. 제가 대화를 하다가 아내로 대화가 넘어가면서 화자를 바라본다고 아내를 바라봤는데 얼굴이 얼마나 밝고 즐거워 보였 던지요. 아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아차린 날 같았습니다. 즐거운 척하는 것이 아니고 진짜 행복하고 즐거운 표정으로 시종일관 대화를 이어가는 것을 보면서 제 마음도 행복했었습니다.
역시!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내는 진짜 솔직하게 대화하고 도움을 주고받고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건강한 대화 모임을 지향합니다. 저는 그런 것들도 부끄럽고 어색하고 제 속마음이 드러나는 것도 쑥스럽고 불편했습니다. 그런데, 아내와 살다 보니 솔직하게 말하고 생각한 것을 나누는 것이 점점 편해지고 있습니다. 꿍꿍이 속을 하고 말을 가려서 하고 속마음을 숨기는 분들과의 대화는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분들과의 모임은 끝나고 나면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했습니다. 이제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내도 포함해서 상대방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알고 대화하거나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자 행복임을 알았습니다.
"이그"라고 찡그리는 아내 얼굴을 보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진짜 행복해하면서 원하는 것도 제대로 알아챈 날이 있었습니다. 그날의 감흥을 함께 나누고 그 마음을 감사를 더해서 아내에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애써서 노력하는 것보다 아내가 원하는 것을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노력한 것보다 더 큰 효과도 있는 것을 보면서 앞으로도 아내를 더 사랑하고 바라보면서 고쳐가려고 합니다. 읽어주시는 손길 덕분에 이런 순간도 포착하는 센스도 생긴 것을 인정합니다. 오늘도 감사드립니다.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의 Taylor He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