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
오늘도 늘 그렇듯이 마음속을 들어가는 기분이며 마음이 묵직하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긍정적인 마음
단어들을 챙기는 시간이라서 한결 홀가분하기도 합니다.
단어를 뽑아서 그 뜻을 음미할 때 사실 긍정적인 감정에 관한 단어는 편안합니다. 점점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해서 시작부터 발걸음이 가벼운, 마치 놀러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의 단어를 집어들 때면 밤을 새웠지만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시험 치러 학교를 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을 붙잡고 시작을 하는데 여전히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제 속마음을 꺼내는 것이 창피하고 절대 나누고 싶지 않던 마음은 사라지고 이제는 솔직하게 마음을 드러내놓고 그 마음 때문에 제가 힘들었거나 남을 힘들게 했던 것도 나누는 정도까지 진도가 나갔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을 붙잡고 시작해 봅니다.
긍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행복감을 증진시키는 감정들입니다. 대표적으로 행복과 사랑이 있습니다.
축복
이 단어가 제 인생에 어떤 의미였으며 어떻게 표현하고 지냈는지 나누기 전에 단어의 뜻을 정확하게 짚어보고 시작합니다.
한문으로 번역하면
축복을 한문으로 쓰면 그대로 祝福입니다. 祝(빌 축): 기원하다, 빌다, 축하하다.
福(복 복): 복, 행복, 좋은 운.
"복을 빌다"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문장에서 사용할 때: "祝福你" → "너에게 축복을 빕니다.""祝福大家" → "모두에게 축복을 빕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Blessing: 신이 나 누군가가 베푸는 은혜, 좋은 운, 행복을 의미합니다. 동사로는 to bless → "축복하다"라는 뜻이 됩니다.
예문에서는 "I give you my blessing." → "내가 너에게 축복을 준다.""May you receive many blessings." → "많은 축복을 받기를 바랍니다."
몽골어로 번역하면
몽골어 표기는 ерөөл("예뢰올")입니다. 뜻: 기원, 축복, 좋은 소망을 담은 말
예문에서는
"Танд ерөөл өргөе."(탄드 예뢰올 오르고요) → "당신께 축복을 드립니다."
몽골어에서는 "ерөөл"이 주로 좋은 말을 빌어주는 의미로 쓰여서, 한국어의 "축복"과 아주 가까운 뉘앙스를 갖습니다.
원래 알고 있는 단어이지만 기본적으로 한문을 찾아보고 다른 나라 말로 번역해 보면서 뜻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한국어에서 쓰이는 의미를 한번 더 짚어봤습니다.
한국어에서의 "축복" 정의는, 기본 의미: 다른 사람의 행복과 좋은 운을 빌어주는 행위 또는 그 마음. 종교적 의미: 신이 나 초월적 존재가 인간에게 내리는 은혜와 보호. 사회적 의미: 중요한 순간(결혼, 출산, 새 출발 등)에 좋은 말을 건네며 미래의 평안을 기원하는 것. 감정적 의미: 사랑, 감사, 존중의 마음을 담아 상대에게 선한 바람을 전하는 것.
예문에서는 "당신의 앞길에 축복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 좋은 미래를 기원하는 말."이 결혼을 축복합니다." → 중요한 사건을 기쁘게 인정하고 복을 빌어주는 말."아이의 탄생은 큰 축복이다." → 존재 자체가 은혜롭고 귀한 것임을 강조.
즉, 축복은 단순한 '행운' 이상의 개념으로, 누군가의 삶에 선한 뜻과 은혜가 깃들기를 바라는 마음의 표현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축복'이라는 단어가 구성된 한문을 기본으로 해서 다른 언어들도 번역해 보고 한국어에서 쓰이는 의미들을 다시 확인해 보니까 확실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하면서 제 삶에서 '축복'이라는 의미가 어떻게 느끼는 감정이며 표현을 어떻게 하면서 지내왔는지 점검해 보겠습니다.
결혼 전에는,
가장 많이 들었던 상황은 '출생'에 대한 내용 때마다 종종 들었습니다.
"축복받은 삶이네요. 늘 감사하고 살아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서는 동의합니다. 어머니의 헌신적이고 맹목적인 사랑에 의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첫째 아들, 첫 출산인데 거꾸로 자리 잡은 아기였고 태어날 때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자연분만이 어려운 상황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아버지의 신속한 '배우자 동의'도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수술에 돈을 마련할 여력도 되지 않았고요. 첫째 아이이고 첫 출산이라서 꼭 자연분만하겠다는 어머니의 죽을지도 모를 것을 각오하고 결단 내리신 덕분에 '거꾸로 자리 잡은 아기'는 다리부터 나왔다고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태어났고 바로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한동안 울지도 않아서 죽은 줄 알았다고 하고요. 나중에 간호사분의 손길에 건드려져서 울기에 확인해 보니 팔이 부러져가면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 분만상황에서 엄청난 하혈을 감당하느라 어머니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하시고요.
그런 상황에서 간신히 태어났고 그런 상황을 자기 목숨이 위태로운 것도 감내하신 어머니덕에 이 세상에 살고 있음에 대해서 그 얘기를 듣자마다 다들 "축복받았네요. 그걸 잊지 않으며 잘 살아야 합니다."라고들 말해주십니다. 지금은 무조건 인정하면서 고개를 숙이지만 예전에는 그 '축복'은 듣자마자 거부하고 진짜 어이없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사람들과도 어머니에게도 했던 말입니다.
"이왕이면 멀쩡하게 태어나게 하지. 왼쪽 팔이 완전히 안 펴지는 게 무슨 축복이에요. 어깨도 불균형이고! 칫!"
그런 말을 하면서 '축복받은 삶'이라는 것에 반기를 들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때 생각을 하면 지금 이렇게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고 있는 자체만으로도 '감사'라고 했습니다. 물론 장애등급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완벽한 정상이 아니라면서 군대제대할 때까지 불평, 불만하며 '축복'에 대해 거부했었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고 함부로 불평, 불만한다면서 울컥하신 어머니께 정말 죄송한 마음이 큽니다.
결혼 후에는,
가장 많이 들은 말입니다.
"그런 아내 만난 걸 고맙게 여겨야 합니다. 축복받은 것이네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 중 '강점을 톺아보다. +13 -복수심 편'에서 드러낸 것처럼 아내를 만난 것에 대해서 상당히 불평을 많이 했습니다. 만나자마자 서로 통성명을 하다 보니 서로 혈액형이 같고 같은 스포츠를 좋아하고 똑같은 휴대폰을 색깔만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고 첫 만남에 2시간 30분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하는 것이 신기하고 놀라서 불평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매일 커피 마시면서 대화하다가 집에 배웅해주거나 중간에서 헤어지고 내일을 기약하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몇 개월 만에 결혼했습니다. 그런 과정동안 불평보다는 모든 것이 비슷하다면서 '신기함'만 느끼면서 지냈습니다. 아내의 첫 임신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현실에 드디어 우리 둘의 진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서툰 모습이 드러나고 저는 고집불통쟁이의 본색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러면서 만나는 분들마다 "좋은 사람 만났네. 축복이야!"라는 말을 수시로 해줬지만 저는 동의하지 못했습니다.
절대 동의하지 않는 것은 제 마음과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아내의 서툰 모습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 '축복받은 만남'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알고보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마음보다 몰라서 인정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람은 평생동안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맞는 것같습니다. 그렇게 불평불만하고 고집불통쟁이로 극한의 행동을 하기고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내는 조용히 뚝 뚝, 때로는 주르르 흐르는 눈물만을 머금고 조용히 참아주고 말하기를 멈추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몇 년이 지나고 아내를 위해서 '상담'받고 '아버지학교'같은 곳을 가보라는 '권유'보다 강력한 '권고'를 받고 어쩔 수 없이 참여했습니다.
상담과 다양한 교육 참여 후에 삶 속의 불평, 불만이 사라지고 고집불통 '간뎅이가 부은 남자'로 아내와 사는 삶에서 아내와의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된 삶인지'인정하는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면서 누군가가 "당신 아내 같은 사람을 만난 것은 큰 축복입니다."라고 말하면 "네! 맞습니다. 늘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 중입니다."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삶에 선한 뜻과 은혜가 가득 차서 시작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아무 노력하지 않았는데 받은 행운이자 은혜이니까 감사하는 것도 맞고요.
그렇게 인정하고 감사하기 시작하니까 축복은 점점 커지는 것 같습니다. 아내와 지내는 시간들, 아내가 저를 위해 참아주느라 흘린 눈물들, 아내가 그 와중에도 아이들을 잘 챙겨서 순탄하게 지내고 있는 중3아들, 중1 시작하는 딸, 초등5학년 막내를 보면 그저 감사와 감사가 넘치고 있습니다.
'축복'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결혼 전과 결혼 후를 돌아보면서 저는 '행운아'임도 고백하게 됩니다. 그것을 기억하면서 '늘 감사'하고 '사랑'하려고 합니다.
돈이 없다고 축복받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저는 돈이 없고 여전히 매월 말일을 울며 고개 넘듯이 살고 있습니다. 아내는 제 눈물의 열 배는 더 큰 눈물을 흘리고요. 제가 1리터의 눈물을 흘린다면 아내는 보이는 곳에서 1리터, 보이지 않는 곳에서 9리터의 눈물을 흘리면서 저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아내와 살고 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임을 인정합니다.
아내는 이쁩니다.
'축복받은 만남'에서 시작된 결혼생활임을 인정하기 시작하니까 아내는 그냥 이뻐 보입니다. 이제는 아내가 눈물을 흘릴 때 "흘리지 마요!"라면서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나의 아내가 또 나 때문에 아니면 돈 때문에 '힘들어서 눈물 흘리는가 보다'라면서 미안해하면서 사과하고 안아 줍니다. 조금 더 변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저녁때 출근을 시작하는 저를 아파트 단지 앞까지 동행해 준 날이었습니다. 잘 다녀오라고 손 흔들어주고 뒤돌아서 가는 아내 뒷모습이 그렇게 이뻐 보였습니다. 이뻐 보여서 잠시 서 있다가 출근길을 위해 지하철역으로 달려갔습니다. 제 마음이 달라지고 '축복'을 인정했더니 아내가 '그냥 이쁩니다.'
'축복'을 인정하니까 '감사'가 이어집니다.
제가 잘못 선택해서 샛길로 돌아가는 것 같은 인생여정에 늘 이유 없이 불평하고 투정 부리듯 짜증을 내며 예민하게 구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결혼을 하게 된 시작점부터 지금까지 삶에서 '축복'이라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곰곰이 짚어보다 보니까 자꾸 '감사'가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매사 예민하게 굴면서 아내를 불편하게 했던 것에 대해서도 미안함을 느낍니다.
오늘은 '축복'이 무엇인가? 저의 삶 속에 '축복'은 어떤 의미이며 어떤 감정 표현을 했던가에 대해서 짚어 보았습니다. 다른 때보다 한결 부담 적으면서도 깨닫는 것은 커다란 날이어서 참 행복합니다. 이런 감정을 함께 나눌 만큼 솔직해진 것도 오늘도 여전히 발행하고 있는 것도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임을 잊지 않기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Guillaume de Germain
distancing에서 소개하는 감정단어 참조
코파일럿에서 '축복'에 대한 단어 정의와 뜻을 참조(한문, 영어, 몽골, 한국어 번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