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심
오늘도 이 시간을 시작하면서 드는 묵직함은 제가 짊어질 몫으로 생각하고 시작합니다.
이제는 마음을 꺼내놓고 알아가는 시간이 익숙해져 갑니다. 다만 긍정적인 마음에는 기분이 좋고 덜 힘든데 부정적인 마음을 꺼낼 때는 마음이 무겁고요. 일부러 숨긴 것은 아닌데 숨겨져 있던 마음을 꺼내놓는 것 같아서 돌아보고 적는 내내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런 시간을 힘겹게 견디고 나면 저의 마음이 점점 더 투명해지는 것 같아서 묵직한 것을 조금씩 내려놓는 기분도 듭니다.
열한 번째 시도를 하는 자체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더 나은 가정과 관계를 위해서 하고 있는 노력 익니 하지만 저의 각고의 노력만으로 해내고 있다면 몇 번 하다가 못하겠다고 접었을 수도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오늘, 다음 주, 그다음 주를 이어가면서 해내고 있습니다.
작성하면서 자칫하면 맨홀에 빠지듯 헤어 나오지 못하는 감정에 빠져들까 봐 저 또는 저의 가족과 관련 있는 나라들의 언어들로도 번역해 보면서 그 감정 단어의 맛을 느끼는 부수적인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는 아쉽게도 부정적인 감정으로 저를 돌아보겠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우리의 삶에 스트레스와 불안을 가져올 수 있지만, 이 또한 중요한 감정입니다. 대표적으로 분노, 혐오, 부러움, 두려움, 질투, 슬픔, 수치, 죄책감이 있습니다.
복수심
이 단어를 접하자마자 제게 드는 생각은 '올드보이'가 바로 생각나는 아니러니 한 느낌도 있었습니다. 묵직한 마음이기에 쉽지는 않지만 이런 감정도 느꼈던 시간들도 점검해 보겠습니다. 먼저 이 단어의 뜻을 찾아봅니다.
한문으로 번역해 보면
복수심(復讐心)"을 한문으로 옮기면 그대로 復讐心이라고 씁니다.
復(복): 다시, 되갚다
讐(수): 원수, 원한
心(심): 마음
즉, "원한을 갚고자 하는 마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비슷한 표현으로는:
報仇心(보구심): 원수를 갚으려는 마음
雪恥心(설치심): 치욕을 씻으려는 마음
영어로 번역해 보면
보통 "vengeful mind", "spirit of revenge", 또는 "desire for revenge"라고 합니다.
復讐心 (복수심) → revengeful heart / vengeful spirit
좀 더 문학적으로는 "a heart burning with vengeance"
심리학적·일상적 맥락에서는 "resentment"이나 "grudge"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예문으로 보면: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 He was consumed by a desire for revenge.
복수심을 버려야 한다 → You must let go of your vengeful spirit.
덴마크어로 번역하면,
"hævnlyst -자연스럽게 헤븐뤼스트
"hævntrang - 헤븐트랑
hævn → 복수, 원수 갚음
lyst → 욕망, 열망
trang → 충동, 강한 욕구
덴마크어에서 "desire for revenge"라는 의미로 hævnlyst가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예문:
그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었다 → Han var grebet af hævnlyst.
복수심을 버려야 한다 → Du må give slip på hævntrange
덴마크어의 æ는 영어의 "애"와 비슷하지만 한국어 표기에서는 보통 "에"로 옮깁니다.
hv는 덴마크어에서 "v" 소리로 발음되므로 "헤븐"처럼 들립니다.
lyst는 "뤼스트"에 가까운 소리, trang은 "트랑"으로 들립니다.
단어를 찾아보면서 복수심이라는 것은 지워지지 않는, 마음속에 심어둔 총알 하나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언제든지 꺼내서 장전 후 쏘면 되는 총알 같았습니다. 복수심은 분노를 유발하고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다가 응축된 에너지를 뿜어내서 언젠가는 해결되야 하는 숙제 같은 감정 같았습니다.
우리의 감정단어들은 보통 한문으로 풀어보면 그 의미가 정확하게 와닿기는 합니다. 더불어서 저나 우리 아이들과 관계있는 나라들 언어로 번역해 보면 또 색다른 재미가 있어서 조금은 무거운 마음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덴마크로 일시 유학 갔던 지인을 생각하면서 해당국가 언어로 번역해 봤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진학할 중간 시점에 자기의 진로를 위해 잠시 원하는 공부를 하는 기간을 두는 것이 부러웠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그렇게 했다가는 '학교를 한 학년 꿇었다.'라는 좋지 않은 표현으로 더 힘든 학교 생활을 하게 되어서 엄두를 내지 못했던 생각이 나서 부럽기도 했습니다.
다시 감정으로 돌아와서 제가 이런 복수심을 느꼈던 시간들을 짚어보려고 합니다.
결혼 전에는,
주로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경우는 일을 할 때마다였던 것 같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영업개선안으로 제시하려고 했는데 먼저 가로채서 사용한 동료를 보면서 미운 정도를 넘어서서 언젠가는 코가 비뚤어질 만큼 복수해 줄 실적을 찾느라 몸이 고달픈 적도 있었습니다. 괜한 질투심이었지만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제시해야 하는 때에 대화할 때는 별거 없어 보였는데 막상 결과물을 제출할 때 보니 엄청 화려하고 정말 엄지 척할 수밖에 없는 아이디어로 매끈한 자료를 제출한 동료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던 앞모습과 실제 뒷모습이 다르다면서 저런 이중적인 태도에 대해서 언젠가는 '복수해 줄 거야!'라는 마음으로 이를 갈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군대에서도 잘못한 것이 없는데 지역차이! 그냥! 조금 실수했다고 지속적으로 괴롭히고 약 올리는 선임을 생각하면서 '언젠가는 갚아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선임은 선임인지라 제대로 되갚아주지는 못하고 전역하는 날 도열하는 자리에서 전역날의 감흥에 악수를 해주면서 사회에 다시 잘 적응해서 행복하게 지내도록 빌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결혼 전 복수심은 수시로 발작했고 그 복수심을 제대로 되갚아주기 도전에 기회도 사라지고 그 마음도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결혼을 해서는,
아내와 살기 시작하면서 복수심이 불타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와 살면서 너무 안 맞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이었고 만날 기회도 전혀 없던 사람이었습니다. 회사 근처 순대 파는 사장님이 순간적으로 건넨 말이 아니었으면 망설이지도, 고민하지도, 주말에 강남역에 약속 잡아서 만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 3시간의 만남 이후 우리 둘은 서로 예상도 못한 타이밍과 속도로 결혼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처음 몇 달은 정말 '소꿉놀이'같은 시간을 보내면서 생각지 못한 날들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부담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임신 소식을 아내로부터 듣고 어머니와 자꾸 틈이 벌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혼란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복수심이 들었습니다. 정말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결혼을 했지만
'너무 안 맞다!' '왜 이런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을까?'
솔직히 그런 마음으로 하늘을 바라봤습니다. 그리고, 삿대질도 했습니다.
"왜 이런 사람을 만나게 했습니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조금만 지혜로우면 모두 잘 풀릴 건데 왜 이렇습니까?"
라고 삿대질하고 혼자 길을 걸으면서 화를 삭이지 못하고 분노했습니다. 그렇게 속상함과 분노를 응축시켜서 복수할 대상을 찾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가 한 명, 두 명, 세 명 태어날수록!! 제가 회사를 자존심 때문에 관두고 박차고 나올 때마다!! 우리 둘이 만나서 살고 있고 그것 때문에 자꾸 다투기 시작하고 우리 집도 여지없이 시댁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힘들어져서 더 복수심이 불타올랐습니다.
"왜 만나게 했습니까?" "누가 이렇게 만나게 했고 시작하게 했습니까?"
"알고 싶고 복수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복수심에, 아무 대상 없는 복수심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아내가 흘리는 눈물이 매 순간 싫기도 했고요. 때로는 아내가 마음대로 퇴사하고 실직자로 지내는 저를 위해 참아주느라 힘들어서 흘리는 눈물들이 미안하기보다는 아내가 감당해야 할 눈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을 시간 보내며 복수심에 불타오르고 복수심을 되갚아줄 대상을 찾아 헤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흘러 대상이 없는 복수심이 극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어느 날, 아내가 그동안 힘들게 견뎌준, 감내해 준 고통의 시간들을 토해내듯 모임에서 꺼내는 날이었습니다. 그날! 복수심은 사라졌습니다. 복수심의 대상도 사라졌고요. 복수심이 생겼던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미움도 사실은 내 생각과 달랐던 아내를 바라보면서 서로 맞춰가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안 맞고 다르다는 생각만으로 불평했습니다. 그 불평은 미움을 만들고 미움은 급기야 우리 둘이 연애한 것도 아니고 계획한 만남도 아니었는데 만나서 결혼까지 하게 된 것도 불평하게 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평은 우리 둘을 누가 만나게 했으면 그 근원을 찾아서 복수하고 싶은 마음도 만들었고요.
아내가 눈물을 흘리고 그동안의 기다려주고 참아주면서 '그래도 사랑하니까!'라는 마음으로 그간의 힘든 마음들을 토해내는 것을 들으면서 아내를 향한, 아내 너머 복수하고 싶은 실체 없는 대상에 대한 복수심은 사라지고 대신에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진짜 사랑'이 자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복수심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소소하게 미워하는 대상, 상처를 준 대상, 거짓 없이 일하고 정확한 방법으로 지내는 저에게 피해를 준 계산적인 수많은 대상들에 대해서 한 번도 되갚아주거나 복수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복수심이 없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새 슬며시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진짜 믿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대상 없는 복수심에 지내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결혼상대자가 없어서 결혼을 못하는데 결혼상대자가 갑자기 생기고 결혼을 하고 나서 서서히 맞는 부분이 10%이고 안 맞는 부분이 90%인 아내를 정말 불평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대상 없는 복수심에 불타오르는 때도 많았습니다. 길을 걸으면서도 발에 차이는 것들을 차는 것에 쾌감을 느끼기도 했고요. 대상 없는 복수심이 제일 힘들었습니다.
복수심.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대상 없는 복수심을 늘 달고 지내면서 마음이 맞지 않는 아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내를 생각하면서 미워했던 것을 제일 후회합니다. 그것은 정말 무쓸모의 생각이었습니다. 계획 없이 만나서 결혼한 축복을 축복이라고 인정하고 나서도 매 순간 맞지 않는 아내라고 불평했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제가 '콩알만큼 작은 안경알'을 통해서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좁은 저의 마음으로 아내를 이해하기보다는 판단하고 마음을 편협하게 먹고 지내기만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지낸 시간은 '대상 없는 복수심-왜 우리가 만나게 했나요?"라는 말로 지내면서 미움, 불평, 짜증을 일삼고 무책임한 말과 행동까지 하기도 했지요. 복수심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도 맞고요. 결혼 후 가졌던 '대상 없는 복수심'은 정말 쓸모없었습니다.
이제는 '대상 없는 복수심'은 사라지고 '대상 있는 사랑'이 자리 잡았습니다.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의 단점은 작아 보이고요. 장점은 커 보입니다. 아내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누구나 겪는 시댁문제는 또 주어지는 지혜로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아내가 감내해 주면서 참아주고 기다려주면서 저를 사랑해 준 시간들을 '되갚아주는'것을 목표로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복수심이라는 단어를 붙잡고 풀어내기 어려워서 마무리 못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잘 마무리해서 '대상 없는 복수심'이 '대상 있는 사랑'으로 변하기까지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이렇게 솔직하게 저의 속마음을 꺼내놓고 함께 나누면서 더 건강한 내일을 준비할 수 있어서 감사드립니다. 읽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감사를 잊지 않고 다음을 또 준비하겠습니다.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 사진: Unsplash의 Anand Thakur
distancing에서 소개하는 감정단어 참조
코파일럿에서 '복수심'에 대한 단어 정의와 뜻을 참조(한문, 영어, 덴마크어 번역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