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삼 남매에게. +63

바지

사랑하는 너희들에게


요 며칠 너희들이 새 학기라서 힘들었는지 감정기복도 심하더라. 그러다 보니 해야 할 일은 미루고 하고 싶은 일들을 먼저 하려고 고집부리는 것을 고쳐주고 싶은 마음에 자꾸 감정적으로 대한 것이 마음 불편하고 있단다.



그렇게 지내다가 우연히 퇴근길에 본 옷이 엄마가 입으면 일할 때나 일상생활에서 편안할 것 같아서 사도록 제안했던 옷에 대한 이야기란다. 아빠는 이 얘기를 하면서 지금도 행복하고 뿌듯하단다. 이해가 안 되겠지. 지금부터 얘기해 볼게 잘 들어봐.



엄마가 아빠 제안을 듣고 저렴하면서도 편안한 바지를 2개 샀단다. 물론 브랜드 옷이지. 엄마가 입고 일상생활을 하거나 아빠랑 공식자리에 동행하였는데 너무 좋아 보였어. 그래서, 아빠도 동일한 스타일 바지로 사이즈만 다르게 해서 샀지. 그리고, 너희들 앞에서 입고는 자랑했지. 가성비 바지를 샀다면서 말이야.



그 가성비 바지를 보더니 오빠가 "오. 좋은 대요"라고 하길래 "너도 입어볼래?" 했더니 얼른 입어보더니 좋다면서 사고 싶다고 하더라. "사줄게!"라고 아빠 바지를 보고 좋아 보인다면서 입고 싶어 하는 게 기특해서 사준다고 했었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둘째 딸도 "나도 입어 보고 싶어."라고 하더라.


그런 상황에서 둘째 딸의 말도 재밌다면서 "너는 엄마 바지 입어봐!"라고 했는데 입고 나온 모습에 깜짝 놀랐단다. 중1 딸이 엄마 바지를 입었는데 생각 외로 사이즈, 스타일이 잘 맞는 거야. "나도 사고 싶어요."라는 말에 "그래. 너도 사줄게라고 대답해 주면서 아빠는 웃음이 나오더라.



아빠가 웃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빠 시선에서 괜찮은 가성비 브랜드 바지라고 제안했더니 엄마가 샀고 아빠도 샀지. 그걸 본 아들이 아빠 바지랑 똑같은 걸 사고 딸도 그걸 보고 사이즈만 다르게 사고 말았지. 결국 아직 어리고 체구가 작은 막내 빼고 엄마, 아빠. 큰아들, 딸이 모두 같은 브랜드, 같은 바지를 입게 되었지.



아빠가 너희들이랑 30년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데 아빠가 고른 바지를 보고 이쁘다면서 너희들이 사고 싶다고 하니까 아빠가 너희들에게 인정받은 것 같아서 엄청 신나더라. 자존감도 올라가고 말이야. 아빠도 아기 같다. 그런 걸로 기분 좋아하고 자존감이 올라가다니.



자존감이 올라간 아빠가 너무 기분이 좋아서 너희에게 물었지.

"야! 왜 엄마 아빠 바지 따라 사니?"

"힙해서요."

더 이상 말을 못 하겠더라. 엄마, 아빠가 똑같은 바지를 사이즈만 다르게 산 것도 재밌는데 '힙해요'라는 말까지 하면서 큰아들, 둘째 딸이 똑같은 바지를 또 산 것이 너무 재밌고 신나는 해프닝인 거야. 빨래를 했는데 똑같은 바지가 4장이 돌고 있는데 아빠는 자꾸만 웃음이 나더라.



고맙다. 너희들이 아빠 따라 산 바지 때문에 아빠는 오랜만에 진짜 기분이 너무 좋아. 너희가 덩치가 커가면서 이제 이런 일도 생기는구나 싶기도 하고 색다른 감성으로 살고 있는 너희들이 아빠 감성을 인정해 준 것 같아서 날아갈 것같이 즐겁단다.



고맙다. 너희랑 살고 있는 자체가 감사이자 행복이다.

막내도 얼른 커서 이런 재미를 함께 느끼면 좋을 텐데.

아! 안될 것 같다.


막내가 지금 이런 것을 나누면서 즐길 시간이면

큰아들, 둘째 딸은 엄마 아빠 곁은 떠나서 멀리서 공부하고 일하고 있을 거 같네.

지금이 행복하다. 지금이!!


고맙다. 이런 재미도 느끼게 해 줘서.





아내에게 추천한 가성비 브랜드 바지를 4명이 같이 입습니다.

가격도 저렴하고 청바지 재질에 가볍고 펑퍼짐한 고무줄바지입니다. 그러나, 입었을 때 전혀 허접하지 않고 은근히 멋 부린 것 같은 디자인입니다. 아내와 저, 큰아들과 둘 때 딸이 똑같은 것을 입게 되었지만 은근 뿌듯합니다. 아이들이 제 안목을 인정해 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중학생들이 기성세대 아저씨 감성을 인정해 준 것 같은 느낌이라서 신났던 날이었습니다.



똑같은 바지인데 같이 입고 나와도 전혀 웃기지 않습니다.

각자 체형에 맞게 핏이 다르게 나오다 보니 아내와 딸은 이쁘고요. 아들과 저는 은근히 멋스럽고 클래식합니다. 바지가 고무줄인데도 말입니다. 이런 재미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삼 남매 중 첫째, 둘째가 훌쩍 커가는 것이 뿌듯하면서도 허전합니다.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아빠! 저 4년만 있으면 군대 가요!!" 아내는 그 순간이 오면 눈물이 나고 못 보낼 것 같다고 합니다.



막내는 아직 멀었습니다.

막내는 초5인데 아직은 주니어 옷을 입습니다. 덩치도 작고 키도 작고 바싹 말랐습니다. 큰아들과 딸은 이제 제법 키와 몸매가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이 커가는 것을 보면 하루 만에 또는 일주일 만에도 다른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하룻밤새에도 몇 센티 크는 날도 있는 것 같고요. 그 와중에 막내는 아직 쪼꼬맹이입니다. 그러다가도 어느 날 훌쩍 커서 숙녀가 되겠지요. 마냥 아기일 것만 같은 아이들이 자꾸! 훌쩍 커갑니다.



이런 날도 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특히, 아이들이 제 안목을 어느 정도 인정해 준다는 것이 굉장히 뿌듯합니다. 아이들이 유전자 영향으로 키가 안 클 줄 알았는데 날로달로 훌쩍 커주니까 다행이다 싶기도 합니다. 이미 아내는 큰아들 운동화를 물려 신기도 하고요. 이제 제 운동화도 큰아들은 못 신고 제가 물려받아야 합니다. 둘째 딸은 아내의 옷과 신발을 물려받기 시작했습니다. 막내는 아직 언니, 오빠 옷만 물려받고 있습니다. 이런 일상도 재미로 받아들여주는 아이들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날이었습니다.



정말 일상 속 아무렇지 않게 여길만한 소소한 것에 감사와 재미를 경험하고 삼 남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별거 아니지만 생각해 보면 뿌듯하고 재밌어서 그 느낌을 꼭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소소한 행복도 나눌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입니다.


항상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Dwayne jo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