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막내에게. +62

짐과 마음

사랑하는 막내에게


회장 선거에 떨어져서 엉엉 우는 널 위로하면서 아빠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단다. 너무 진한 여운이 남아서 그 느낌을 꼭 말해주고 싶어서 편지를 쓴단다.



하교 후 집에 오자마자 아빠를 보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울길래 글을 정리하고 있다가 그냥 너를 안아주기로 했지. 근데 울음이 멈추지 않아서 점퍼를 벗거나 가방을 벗고 진정하라는 말도 못 했어. 그냥 안고 있었지. 한참을 그러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너에게 말했지.


"옷도 갈아입고 가방도 무거운데 내려놓을까?"

"이 가방은 하나도 안 무거워. 다른 무거운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살아야 하고 학교도 가야 하고 친구 때문에 고민도 하는 것들이 더 무거워.... 오늘 회장 선거 떨어진 것도 힘들고... 엉엉...."


전혀 예상치 못한 너의 대답에 아빠는 더 이상 말하기를 포기했단다. 뭔가를 권하기보다는 그냥 너를 더 꼭 안아주기로 했단다. 물론 아빠가 정리하고 있던 글도 밀어놓고 말이야. 네가 가장 소중하더라. 그렇게 너를 안아주고 있는데 아빠에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더라.


'우리 막내가 엄청 힘들었는데 안 힘든 척, 막내라고 언니 오빠한테 져 주느라 모르는 척, 아직 아기인척 했구나. 그렇게 지내면서 학교에서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었는데 실패해서 엄청 속상했구나.'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쪼고맹이 막내, 아무것도 모르고 무법자처럼 구는 막내, 맨날 언니 오빠에게 들이대는 막내가 아니라 마음속에 품고 있는 것들이 많구나 싶었단다. 속상하고 서운한 것들을 모르는 척해주는 게 많은 소녀라고 생각하고 싶어 지더라. 아빠 마음에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네가 무법자 막내가 아니더라.



나의 막내딸은 생각보다 커져 있더라.

생각주머니도 아빠보다 더 커져 있어서 항상 상대방을 배려하고

언니, 오빠와 같이 있고 싶어서 늘 노력하는 소녀,

아빠,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만 모르는 척해주는 소녀,



그렇게 한참을 아무것도 안 하고 너를 안아주고 있었는데 "이제 괜찮아요."라고 말하면서 스스로 안겨있는 품에서 나오더니 정리를 하더라. 회장 선거 떨어진 마음, 서운한 마음, 자존심 상한 마음들을 더 다독이려고 하고 싶은 게임이나 음악 듣기를 하라고 했더니 원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눕더니 어느새 자더라.



그 모습을 보고 아빠는 얼마나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단다.

자는 모습이 아기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생각과 마음은 이미 소녀를 넘어서서 한 명의 숙녀가 되어있더라.


아빠가 노력할 것이 보이더라.

네가 언제나 편안하게 울고 의지하고 힘내도록

항상 네가 원할 때

안아주는 아빠

안길 수 있는 아빠

그렇게 되도록 항상 노력하면서 너의 옆에 있을게.


사랑해.

그리고,

늘 고맙다.

나의 막내




지난번 감동이 여운이 남아서 막내딸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발행글을 마무리하다가 막내딸이 회장선거 떨어져서 오자마자 우는 날이었습니다. 달래주고 며칠을 지났는데도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아서 막내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막내라서 늘 구박받고 엄마 아빠에게 떼쓰는 것 같아 보여서 다스리려고만 했는데 사실은 알면서 하는 행동과 말들이었습니다. 모르는 척해주는 것이 엄청 많았고요. 생각보다 어른스러운 말들도 엄청 많이 했습니다. 늘 눈을 씻고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지만 역부족입니다.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싶습니다.



키다리아저씨는 없습니다. 키다리 XX만 있었습니다.

저는 삼 남매에게 키다리아저씨가 되고 싶은 아빠입니다. 같이 먹고 싶을 때 거부하는 음식이 없고, 같이 하고 싶은 운동, 놀이가 있을 때 무엇이든지 함께 해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고요. 아이들이 필요한 것은 뭐든지 조용히 결제해 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조용히 결제해 주거나 사주는'아빠는 안 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금액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아이들에게 키다리아저씨가 되어주지 못합니다. 그런 서운함을 알아주는 키다리소녀가 저와 살고 있었습니다.

막내딸이 속 깊은 마음씨로 저와 살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키우고 싶지는 않습니다. 마음껏 떼쓰고 엉엉 울고 칭얼거리는 딸로 키우고 싶습니다. 제가 더 열심을 내는 삶을 살려고 다짐해 봅니다.



아이들은 정말 빨리 성장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아이들은 생각지 못하게 정말 빨리 커갑니다. 손을 잡아줘야 걸을 수 있던 아이가 이제는 손을 붙잡고 제발 거기는 가지 말라고 할 정도로 커갑니다. 급기야 손을 잡아주는 것은 민폐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제 삼 남매 손을 잡아 줄 일도 없고 손을 잡아서도 안 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가끔 막내만이 아빠 손을 잡고 걸어줍니다. 그런 것들이 신호였습니다. 키는 작지만 생각주머니가 엄청 커져서 많은 것을 말해주지 않아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황에 맞게 모르는 척해주는 정도로 컸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하지 마라!"보다는 "응! 그래! 해봐!"라고 지긋이 바라봐주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오늘은 속 깊고 모르는 척해주는, 이미 훌쩍 커버린 초5 막내에게 편지를 써 봤습니다. 아이를 보면서 느낀 것을 편지 쓰는 아빠가 창피하기도 하지만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고 안아줬다는 것이 흐뭇하고 뭉클했습니다. 그렇게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아빠에게 안겨서 한참을 우는 막내가 너무 고마웠고요. 이런 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임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살고 있음에 감사합니다.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큰사람(BY 바람 없이 연 날리는 남자 Dd)

출처:사진: UnsplashAna Curc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