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짝 찬공기를 느낀다 싶었던 게 어제 같습니다. 이제는 손끝이 살살 시려오더니 손이 시린다는 표현이 맞는 날씨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온도 하루동일 한자리 숫자를 유지하곤 합니다. 이럴 때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얘야. 춥다. 돕빠 입고 다녀라! 양말 신고 다녀라. 쫌!" 그런데, 사실은 어른들이 추위를 타는 것이지 아이들은 아직 추위를 탈 때가 아닌 것입니다. 제가 슬슬 그런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오늘 어제만큼 무지 춥단다. 옷 더 챙겨 입고 학교 가라"
"아빠! 어제도 별로 안 춥던대요?"
일상을 살아가면서 대화하는 동안 계절의 변화에 따라 춥고 덥고 눈이 부시 고를 느끼고 살고 있음에 늘 감사합니다. 오늘도 길을 걸으면서 느낀 것들을 찬찬히 적어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도시 속에서 느끼는 "깨알재미"들이 즐겁습니다.
#1. 징검다리
도시 속에 징검다리가 있다는 것이 늘 감동입니다. 인위적인 돌이지만 하나씩 지나가며 걸을 때면 '그 맛'이 참 즐겁습니다. 비가 오게 되면 물이 불어서 늘 통제가 됩니다. 그럴 때면 그 맛을 못 느끼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아쉽기도 합니다. 그 아쉬움을 가득 안고 다리로 건너가다가 문득 묘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가 와서 징검다리를 통제한 덕분에 오히려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통제라인 앞에 놓인 자전거가 마치 '실향민의 아픔'을 느끼게 해 줬습니다. 금세 손에 잡힐 듯이 저 건너편이고 어릴 때 뛰놀던 돌투성이 공터가 코앞인데 전혀 가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다는 아쉬움에 늘 멀리서 바라보시는 실향민들이 느껴졌습니다. 또, 늘 걱정이 앞서는 것이 있습니다. 비가 오면 물이 순식간에 불어서 휩쓸릴 수도 있고, 징검다리 대리석이 미끄러워서 낙상의 위험이 있어서 통제를 합니다. 그런데, 늘 다니던 길이라며 가까운 길로 간다고 통제라인을 비켜서 지나가는 분들을 생각보다 많습니다. '저러다가 일 생기면 안 되는데...'라고 걱정을 합니다. 가끔은 '하지 마세요.'라고 하는 것은 안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2. 전등
비가 며칠째 오는 날이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금세 흠뻑 젖은 운동화를 친구 삼아 터덜터덜 길을 걸었습니다. 젖은 운동화와 함께 젖은 양말이 비비적거리며 느껴지는 착용감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찝찝함 최고였습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카페 벽에 부착된 전등을 보게 되었습니다.
전등갓 속의 노오랑 전구가 길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제는 쉽게 보지 못하는 '백열전구'의 모양인 것도 참 좋았습니다. 또한,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전등의 밟기가 '여기 이런 카페가 있습니다.'라고 작게 소리치는 듯했습니다.
비가 오는 중이라서 노오랑 전구의 밟기는 온기를 느끼게도 합니다. 우산 너머 바라본 전등 덕분에 따뜻한 커피를 한 잔 마시고픈 충동도 생기고요. 오늘은 노오랑 전구들이 천장에 가득하고 푹신하고 보드라운 소파들이 있는 카페를 찾고 싶었습니다. 반듯하고 모던한 카페에서 느끼는 카페 콘 레체보다는 약간은 누르스름하고 어스름한 조명아래 손때 묻은 소파에 쑤욱 빨려 들어가듯 앉고 싶고요. 앉아서 눈을 지그시 감고 싶어 집니다. 보통은 각양각색의 대화 소리, 커피 내리는 소리, 오고 가는 바람소리들이 섞이는 공간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이런 날은 그런 속에서 잠시 눈을 감고 '자기 무음'상태로 즐기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 느낌을 주는 노오랑 전등이었습니다.
#3. 소방차
굵은 빗방울이 괴롭히는 아침이었습니다. 대중교통에서 내리자마자 젖어버린 운동화와 바짓단에 짜증 없이 아무렇지 않게 터덜거리며 길을 걷는 중입니다. 길을 걸어가다가 빗 속에서 건강한 성장을 하려고 힘내고 있는 화분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화분보다 눈에 더 들어오는 '깨알'이 있었습니다.
바로 '소방차 장난감'이었습니다. 주인의 위트로 화분 테두리에 걸쳐놨구나 싶었습니다. 그냥 지나치는 건 예의가 아니다는 생각으로 잠시 음미했습니다.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구출을 위해 출동하는 건가? 아니면 널 구해줘야 하는 건가?'라면서 사진을 찍고 잠시 아이들 애니메이션도 떠올려봤습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저렇게 힘겹게 '아등바등'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면서 남들을 밟고 앞서려고 힘들게 사는 건 아닐까?
그래서, 황혼 녘이 다가오는 인생의 선배들이 너무 각박하게 살지 마라고 조언하는가 싶습니다. 쓸 시간보다 써버린 시간이 더 많아진 선배들이 그렇게도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는 이유는 인생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가 크기 때문이신가 봅니다.
# 4. 난쟁이 군단
길을 걸어다가 어떤 철문사이로 봤습니다. 바닥에 한가득 내려놓은 다양한 꽃들과 각종 사기받침대, 인형들이 시선을 끌었습니다. 처음에는 알록달록한 게 뭔가 싶었습니다.
눈을 크게 하고 다시 찬찬히 보다 보니 나름대로 규칙도 있었습니다. 각종 화병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놓여 있고 사람모양 인형들이 둘레를 보디가드처럼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하회탈 얼굴부터 메인 셰프, 보조셰프, 돌하르방까지 심지어 아령까지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들여다보다 보니 그냥 무심히 쌓아둔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자기만의 원칙으로 작품세계를 펼쳐 놓은 것 같았습니다.
바닥에 늘어놓은 작품은 어르신의 작업 같았습니다. 그분이 정성 들여 모으시면서 느꼈을 만족과 점점 쌓여가는 작품들을 보면서 흐뭇하셨을 상황이 생각나며 저도 빙긋 웃었습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무명작가님의 설치미술을 무료로 감상한 덕분에 아침 출근길이 즐거웠습니다.
#5. 소화전
길을 걸어가다가 멈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환호를 질렀습니다. 그러고 나서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혹여 밤에 몰래 공공기물에 장난친 건 아닐까?라는 생각과 누군가 공공미술을 한 것일까? 그러면서 사진을 얼른 찍고 다시 길을 걸었습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주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대수롭지 않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는 저를 비켜가면서 곱지 않은 시선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피해를 준 것은 아닙니다.
그냥 서 있는 소화전도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만... 저는 뒤이어 본 소화전에 마음속의 '환호'를 질렀습니다.
가로수 조경과 보차도 휀스사이에 의도치 않게 가려져있는 소화전, 그러나 새 옷을 입은 덕분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습니다. 누가 해놓았다는 것보다 중요한 물건이 눈에 띈다는 것에 '마음속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잠시 예전일도 생각나게 했습니다.
오래전 회사 물류창고에서 퇴근 무렵 통근용 스타렉스 앞쪽에서 불이 난 적이 있었습니다. 평상시 물류창고 회색벽 옆에 빨간색 소화기가 있는 것을 늘 보고 다녔습니다. 회색벽에 빨강 소화기는 항상 눈에 띄었는데 중요한 순간에 바로 생각이 났습니다. 소화기를 잡자마자 안전핀을 뽑으면서 바로 호스를 스타렉스 앞쪽에 대고 뿌렸고요. 포말이 한가득 뿌려지면서 일단은 불길이 진압되었습니다. 그때 느낀 것이 소화용 물품들의 색상이 평상시에는 보기 거북할 정도록 도드라지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찾기 쉬웠습니다.
너무 궁금해서 출근하면서 보게 소화전을 인터넷으로 찾으며 길을 걸었습니다. 사실 소화전에 색칠을 하면 어떤 처벌을 받는지 염려되어서 찾았습니다. 봤던 이미지로 구글링 하다가 찾다 보니 알게 된 것입니다.
일단 마음의 안심이 되었습니다. 누군가 처벌받을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위해 기업과 기관이 협업하여 이룬 성과라는 것에 흐뭇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니까 아까 길을 걸으면서 탄성을 질렀던 기쁨이 두 배가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언급했듯이 저는 공공미술에 관심이 많습니다. 공공미술을 통해 의식개선이 되거나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바꾸는 작업이 보람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고요. 사회봉사를 추진한 KCC에도 감사하고 앞으로도 많은 공헌을 부탁드립니다. 참여도 하고 싶기도 합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손이 점점 더 시려지는 상황이지만 마음이 훈훈해집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은 변함없이 할 예정입니다. 바라본 것들에 대해 소감을 적고 어설픈 상상을 시로 적어놓은 것이 별로라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깨알 프로젝트 2탄은 조금 다르게 이어갈 예정입니다. 어설픈 시는 제외하고 본 소감과 "깨알재미"를 공유하는데 더 노력해 보겠습니다.
저의 글을 보시는 작가님들이 날씨 덕분에 영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소재가 고갈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추워질수록 더 섬세해진 오감을 통해 다양한 소재들로 자극받으시길 소원합니다. 어쩌다 읽으시는 구독자님들은 더 좋은 글을 많이 읽으시고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새로운 도전도 해보시는 계기가 되시길 소원해 봅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끝까지 읽고 공감해 주신 것에 대해 미리 감사드립니다.
깨알프로젝트 # 20 --끝--